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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구약(舊約) ☆ (詩歌書)
약1:2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감당하라)
욥15:1-35절) 믿는 자의 패배
기업하는 사람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때는 완전히 경영에 실패해 그 기업에서 두 손을 들 때입니다. 이때 경영에 실패한 기업인은 대단히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 자신의 패배를 완전히 인정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 간단하게 한마디로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크리스천이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그는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사람이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그는 완전히 실패한 것일까?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크리스천은 실패와 동시에 다시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1.칠전팔기(七顚八起)(상) 차이점 : 지혜(知慧) ☞ (智惠) 지식(知識) ☞ (智識)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核心)이 그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과연 어떤 순간이 완전히 실패한 순간이냐? 는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욥과 친구들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일차 토론으로 모두 만족하지 못해 이제 다시 이차 토론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모두 비슷비슷한 말 같은데, 왜 빨리 토론을 끝내지 않고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의아(疑訝)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욥과 세 친구들 사이에 생각하는 것이 그만큼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환란을 당했고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같이 울고 위로하며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세 친구들의 위로와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처음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엘리바스가 이차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친구들이 그냥 욥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친구들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욥을 도울 생각을 갖고 왔던 것입니다.즉 비록 전 같지는 않다하더라도 욥이 다시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농장을 마련해 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위로나 동정은 필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직접 대답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치셨으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므로 굳이 사람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아직도 자존심이 덜 깨졌고, 오만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제 너는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겠느냐? 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욥기를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되지 않지만 문맥을 잘 이해하면서 보면 그것이 우리가 많이 겪었던 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사람들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또 사람의 힘으로는 도울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을 주위 가족들은 아직 내 자존심이 강해서 큰소리를 치고 있으며,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패배가 없습니다. 패배한 순간이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실패했다 생각하는 그 인생 밑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엘리바스 다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현실적인 사람이고, 오래된 경험을 중요시하며, 여전히 운명론적이요, 숙명론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Ⅱ.엘리바스의 안타까움(중) 차이점 : 육(肉)에 속한 사람 ☞ 영(靈)에 속한 사람
잘못 생각하면 세 친구들이 할일 없이 욥을 찾아와 이런 저런 말로 그를 못살게 굴고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은 결코 할일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정(情)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모두 그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의 고난에 대해 너무나도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15:1-3절)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엘리바스는 자신을‘지혜로운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바스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대안(代案)도 없으면서 말로만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남을 괴롭히는 사람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그 특징이 아무 대안 없이 헛된 지식만 가지고 말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갖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런 대안이 없으면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나름대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동풍(東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바람이었습니다. 농사짓는데 필요한 바람은 비를 몰고 오는 비바람입니다. 동풍(東風)은 건조한 바람이고 농작물을 타 죽게 만드는 바람이었습니다.
물론 엘리바스라고 해서 비구름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여기까지 찾아와서 욥에게 무슨 말인가 할 때는 나름대로 대안을 갖고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욥이 나름대로 자립(自立)할 수 있도록‘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친구들끼리 조금씩 모아 작은 농장이라도 하나 차릴 수 있는 돈을 준비해 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5:3절)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이 욥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런 마음이 완전히 들어가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친구들이 그를 찾아갔을 때는 욥이 죽는 소리라도 하면서‘제발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나는 이제 아무 말 할 자격도 없다’라고 했으면, 모든 문제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즉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면서 준비해 간 돈으로 조금이라도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를 만나보니까 기가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가 펄펄 살아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의 신앙을 꾸짖으면서 자기 신앙이 더 옳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친구들은 점잖게 훈계하러 갔다가 오히려 긴 설교를 듣게 되었고, 도우러 갔다가 오히려 그 돕는 손길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욥의 친구들은 화가 나게 되었습니다.
15:4-6절)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게 불리하게 증거하느니라”
욥의 친구들은 모두 점잖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조용히 욥을 위로하고 도우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묵상하면서 돌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할 말이 많았고, 너무나도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친구들은 조용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묵상하면서 돌아가려고 했던 계획을 모두 망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욥)가 너무 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너무나도 화가 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한 사람을 찾아갔을 때, 두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고난 때문에 너무나도 슬퍼, 사람도 만나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고난을 제대로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위로할 길이 없어서 그냥‘힘을 내라’면서 준비한 금 일봉을 전달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그래도 마음속에는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을 당했다 해서 찾아갔는데 얼마나 말이 많은지, 도대체 내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하는데, 과연 이 사람이 고난당한 사람인지? 기쁜 일을 당한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오직 이 사람은 성령(聖靈)으로 미친 것입니다.
이 사람도 처음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너무 슬프고 기가 막혀 눈물만 나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만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성령이 부어지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기뻐서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고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자기가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되고 또 장시간 설교를 듣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요, 신앙에 있어서 가강 소중한 축복입니다.
엘리바스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말이 많은 것을 보고 미쳤다 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진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아직 욥에게 자존심이 남아서 실패하고 망한 것을 회피하려고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려서 궤변을 토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보면, 남북 전쟁이 끝난 직후에 스칼렛이 아무것도 없는 집에 다시 목화 농사를 짓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 이 농장을 빼앗으려는 백인 뜨내기들 때문에 3백 달러라는 엄청난 세금을 맞게 됩니다.
이때 스칼렛은 그 돈을 레트 버틀러에게 빌리기 위해 커튼을 뜯어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그를 찾아가 수다를 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레트 버툴러는 스칼렛의 손이 엉망이 된 것을 보고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를 챕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왔느냐? 고 하니까 세금 3백 달러를 빌리러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잘 살다가 갑자기 폭삭 망하게 되면 전에 잘 살던 시절 친구들에게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오히려 더 엉뚱한 수다를 떨면서 전혀 가난하지 않고 너무나도 행복하게 산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직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그런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다 죽고 재산도 다 날리고 몸에는 병까지 걸려 있는 주제에‘하나님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욥에게‘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자의 혀를 택하였구나’라고 책망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너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거짓되며 허풍만 늘었느냐?’는 뜻입니다.
사실 환란 중에 기뻐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미쳐서 이러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미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미친 것입니다. 즉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고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진정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떠드는 것입니다.
약1:2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즉 (감당하라)고 했습니다.
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는데 온전히 기뻐할까? 우리가 시험당하기 전에는 시험이 올까봐 부들부들 떱니다. 너무나도 시험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막상 시험을 당해보니까 시험이 생각만큼 그렇게 고통스럽지가 않습니다.
그 대신 나 자신의 허물과 교만을 모두 벗어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게 됩니다. 이때는 굉장히 말이 많아지게 됩니다. 왜냐면 이런 고난을 통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신앙의 친구들에게 이런 간증을 꼭 들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이 너무나도 대단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잃어버리면 죽을 것 같습니다. 막상 어려움을 당해 보면, 붙들고 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불어버리면 모두 날아갈 수밖에 없는 안개 같은 것들.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아-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세대와 다음세대,소중한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마28:18-20) ◑멸망할 영혼救靈과 避難處설립할 특별기도와 특별기부동역자 찾습니다. 온라인 헌금 농협중앙회 주거래 우대통장 302-8772-0191-01 이름 옆에 헌금종류-6자(예 : 착한이 십일조) ☆네 재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인정(認定)과 순종(順從) 💖진리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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