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종류의 양심
(막6:14~29)
목동 출신이었던 다윗이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비결이 열왕기上3:6에 나옵니다.
“성실과 공의와 정직”으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링컨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왜 많이 나올까요?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이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당(黨)에서는 그에게 선거자금으로 200달러를
주었습니다. 하루는 링컨이 선거운동을 하다가 길에 앉아 있는 한 불쌍한 노인을 보고는
그에게 음료수를 사주었는데 그때 75센트를 사용했습니다. 이후 그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일절 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링컨은 나머지 199달러 25센트를 모두
당에 반납했습니다. 동료 의원들과 당원들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 또 있느냐? 이런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러면서 당원들이 링컨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밀기 시작했습니다.
링컨이 청년시절 가게 일을 하다가 하루는 손님에게 거스름 돈 몇 푼을 못 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뭐 몇 푼도 아닌데” 그리고는 그냥 넘겨버립니다.
그러나 링컨은 곧바로 20리를 걸어가 거스름돈을 손님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손님이 감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링컨을 ‘정직한 링컨’이라고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링컨의 가장 큰 특징은 양심이 깨끗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헤롯 왕의 반응이 묘하게 나타납니다. 14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헤롯 왕은 예수님의 활동에 관한 소문을 듣자 “내가 죽였던 세례 요한이 예수란 사람
속에서 다시 활동하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거예요.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성경에는 헤롯 이란 이름을 가진 왕들이 여러 명 나옵니다. 예수님 탄생 때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부르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은 그의 아들 헤롯 안디바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은 거예요.
그러니 강직했던 세례 요한이 가만있겠습니까? “왕이시여!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적하고 나온 거예요.
그런데 ‘헤로디아’라는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여보! 당신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거예요! 만일 당신이 그런 비난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당신은 신하들
앞에서 똥 되는 거예요!” 이래서 헤롯은 아내의 말을 듣고는 세례 요한을 감옥에 투옥시켰습니다.
19절~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롯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잘 못을 지적할 때 비록 마음이 괴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달갑게
들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그의 양심이 살아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양심에 대해 공부하려고
합니다.
첫째, 일반적인 양심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양심입니다. 안중근의 아버지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벼루가 있었는데
어린 안중근이가 이 벼루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하인이 말했습니다.
“도련님. 제가 깨뜨렸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라고
했습니다.
벼루가 깨진 사실을 안 아버지는 대노하여 안중근의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하인은 종아리의 피를 닦아주며 “도련님 제가 깨뜨렸다고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련님이 왜 이런 아픔을 겪습니까?” 그러자 안중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긴 하지만 내 마음은 편안하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이것이 정직이
주는 대가(代價)입니다.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 중에 <고자질하는 양심>란 글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인 후에 그 시체를 자기 집 지하실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은 사람의 심장 고동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리는 거예요. “둥! 둥! 둥!...” 그때마다 그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둥! 둥! 둥!” 들리는 소리는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잠을 자는 중에도 그 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결국은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그 고동소리가 지하실의 시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 고동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람이 타인은 죽일 수 있어도 자신의 양심만큼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둘째, 법률적인 양심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를 거닐다가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헤엄칠 줄 몰랐던 그는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때마침
그 근처에 한 젊은이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는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도
일광욕을 계속 즐겼습니다. 결국 바다에 빠진 사람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유족들은 그 젊은이를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판사는 어떻게 판결을 내렸을까요? 법률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률적인 양심은 좀 치사하고 더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무죄 판결을 내려 석방하는 정치가들이나 재벌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10kg의 체중을 빼면 벤츠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정말 독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10kg을 뺐습니다. 남편은 약속대로 벤츠를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용 벤츠를 사주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좀 치사하지 않습니까?
셋째, 긍정적인 양심이 있습니다.
좋은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칭찬’이 얼마나 효과 있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A, B 두 반(班)으로 나눈 후 A반은 ‘칭찬 반’으로 설정하고 아이들에게
“잘한다. 잘해”라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실재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점수가 떨어진 아이에게는 “괜찮아. 괜찮아. 다른 애들도 다 점수가 떨어졌어”라며 거짓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B반은 ‘꾸중 반’으로 설정하고 야단만 쳤습니다. “야! 이것도 몰라?
이걸 공부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쉬운 문제도 못 풀어?”하며 주눅이 들게 만들어주었습니다.
5일이 지난 후부터 두 반의 수업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칭찬을 들으면서 수업을
했던 반에서는 수업분위기가 활기 넘쳤지만 꾸중을 들으며 수업을 했던 반에서는 모두
쥐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수학시험을 치렀는데 꾸중을 들었던 반은 변화가
없었지만 칭찬을 들었던 반은 평균점수가 상승했습니다. 심지어는 평소 72점을 받던
아이가 88점으로 올라가고, 65점을 받던 아이는 78점으로 올라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학자들은 아이들의 뇌파를 검사했는데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집중력에서 13%,
인지속도에서 28%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록 거짓말은 했지만, 칭찬과
격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긍정적인 양심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신앙적인 양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런 양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일을 해도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갖고 했습니다. 이러니 만사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요셉은 어딜 가나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양심이 무너지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헤롯이 생일을 맞아 잔치를 배설하고
문무백관들을 초청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나와서 배꼽춤을 기가 막히게 추었던
모양이에요. 헤롯과 문무백관들이 그 춤에 그만 넋이 나간 거예요. 우쭐해진 헤롯이
딸에게 “얘야. 네 소원이 뭐냐? 이 나라의 절반도 달라면 내가 주겠다”고 한 거예요.
이게 뻥이지요. 남자들은 이 뻥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딸아이가 어머니에게 쫓아가 “엄마. 아빠에게 뭘 달라고 하면 되?”하고 물은 거예요.
그러자 헤로디아는 “얘야.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고 그런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세례 요한이 자신의 결혼이 불법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한 거예요.
성경에서는 이런 양심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합니다. 26절~28절을 보십시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왜 근심하게 되었을까요? 자신의 쓸데없는 뻥 때문이었지요. 그다음 보십시오.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헤로디아는 나쁜 여자입니다. 그럴지라도 남편들은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일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아내를 눈물짓게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엄마를
눈물짓게 만드는 아버지를 보게 되면 반드시 그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아버지에게 등을
돌립니다. 저는 심방을 다니면서 그런 가정을 많이 보았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어머니가 헌옷상점에서 외투 한 벌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외투 안에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얼씨구 지화자” 좋아서 춤을
추었을까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랍비에게 찾아갔습니다. “랍비님. 어떻게 할까요?”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산 것은 외투이지 보석이 아닙니다. 상점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그러나 돌려주러 갈 때 자녀를 꼭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면 보석을 내놓는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그 보석보다 몇 배나 귀중한 것을 자녀들에게 선물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정직이지요!
정직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하는 산업이 바로 금융산업입니다. 세계 금융산업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조차 미국의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직이란 힘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회개를 하면 양심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양심이 회복되면 천국이 옵니다. 그래서 인류 최고의 축복은
양심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로 가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