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 幽
참 좋은 사람.
세상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다는 마음이 될 때도 있다.
그 주관적 생각은 결국,
상대방이 내게 어떻게 대했느냐로 결정되어 지는게 아닐까.
가을이 흥건하게 배어 난 팔봉산을 다녀온 언니가,
그 고운 단풍에 떨구고 온 마음 한자락을 찾으러 가야한다는 성화에 못이겨
얼마전 따라 나섰던 팔봉산은, 이미 잎내림이 끝난 빈가지 뿐이었다.
텅빈 나무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한가로이 흐르는 강줄기 또한 아름다움이었다.
많은 산을 다니진 않았지만 내가 갔던 산중에서 바위가 제일 많고,
삐끗 발 한번 잘못 디뎠다간
산아래까지 굴러 떨어지고 말것 같은 가장 위험한 산인거 같았다.
그날 저녁 홈쇼핑에 호두를 주문했다.
주문이 완료되면 바로 문자메시지 신호음이 들리는데 안들린다.
그제서야 휴대폰이 없어 졌다는 것을 알았다.
입고 갔던 옷의 주머니를 다 뒤지고
메고 갔던 배낭까지 거꾸로 흔들어 보았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유선전화기로 휴대폰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집안 어느곳에서도 들리지 않는 벨소리.
계속 보내지는 신호음을 들으며 자동차 문을 열어 보았지만 조용하다.
대체 어디서 빠졌단 말인가.
황당하면서도 이상스레 마음은 편안하다.
물건을 잃어 버린 후 찾을 수 있을때면 들던,
그런 편안함이 느껴져 느긋해 지기까지 했다. 어디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내 휴대폰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참 후에 받는다.
느닷없는 남자 목소리에 갑자기 가슴이 후당당거린다.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심호흡을 한번하고 최대한 아주 이쁜 목소리를 냈다.
"네, 휴대폰 주인인데요, 하여튼 제가 잃어버렸거든요"
"집사람이 팔봉산 갔었는데 주워 왔더라구요"
"저는 춘천인데 지금 계신곳이 어디신지요"
오래되어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한거라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려 주는건 당연한거라며 가장 편하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란다.
우체국을 통해서 보내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직장가까이에 우체국이 있으니 월요일 출근해서 보내주겠단다.
고맙다는 인사와 작은 사례를 하겠다고 했더니 돌려 주는게 당연한데
사례는 가당치도 않다며 오히려 빨리 못보내 줘서 불편하게 해 미안하다나.
내 휴대폰이 얼마나, 얼마나 서울이 그리웠으면 나 몰래
서울사람 손은 잡고 따라 나섰단 말인가.
어쨌든 소지품 관리가 소홀했음이 증명이 된거다.
크게 필요치 않아 가끔 잊고 외출하기도 하고 며칠씩 캔디폰일 때도 있고,
휴대폰이 있다는걸 잊지 않을만큼씩 필요로 하면서 살기는 하지만 없으니 왠지 서운했다.
며칠후 우체부아저씨 손에 잡혀 상처 하나 없이 휴대폰이 돌아 왔다.
기록해 놓은 전화번호, 아파트 동 호수 하나도 없었는데,
고스란히 돌려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에 또 감사할밖에.
휴대폰 넣어 보내준 플라스틱 통속에 고맙다는 메모와 작은 성의를 넣고
양쪽에 호두 한봉지씩을 붙여 보냈다.
전화가 왔다. 지나친 답례에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안그래도 되는데 왜 그랬냐며 배달료 선불로하면 부담스러워 할까봐 착불로 한건데
오히려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한다.
며칠후 또 전화가 왔다.
사례비를 받은것이 마음에 걸려 영양제를 보내주겠단다.
아니라고, 돌려 받은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러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별거 아닌 영양제니까 부담갖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생각끝에 누구한테 얘길했더니 그사람 소위 말하는 작업성인데 못느끼냐며
날보고 생긴건 그리 안생겼는데 어찌 그리 둔하냐고 한다.
전화번호 입력 돼 있는거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일거라는 짐작이 되고
가끔 춘천에 와서 차 한잔하며 선입견 없이 얘기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겠냐.
그런 눈치도 못차리느냐 졸지에 아둔한 여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말을 듣고 보니 습득한건 서울댁인데 처리는 남정네가 한다는게 좀 의아하긴 했지만,
우리집은 몽땅 안팍 일을 내가 하는지라
서로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가 아니냐니까 그렇지 않단다. 틀림없는 작업이란다.
남편한테 얘길 했더니 좋은 사람 만난거 보니까 내가 인복이 있는거 같다나.
그래도 언니한테 또 물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보란다. 그사람이 직업상 영양제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면 사례비를 받았다는게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을거라고.
다음날 아이 베개만한 크기의 택배가 왔다.
받았다는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입닦고 있어야하나 얼마를 망설이다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보내주신 것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로 답장이 왔다.
'네 감사합니다 약이 아니고 영양제니까 부담없이 드셔도 되고요... 건강하세요'.
영양제라는게 3종류나 들어 있다.
휴대폰에 내 나이는 어디에도 안 적혀 있는데, 어찌 알았을까.
갱년기 증상 개선제와 체력저하, 혈행장해 또 하나는 어린이 성장 발육제다.
내 아무리 이쁜 목소리를 냈지만 그 속에서 손주도 있을 법 한 나이가 보였나 보다.
책상위에 주욱 늘어 놓았다. 퇴근한 남편이 힐끗 쳐다 보더니 한다는 말
"거 이상한 사람 아냐?"
"누구 줄까?"
"주긴 누굴 줘 그냥 먹어"
"근데 어째 그래"
"뭐가?"
"당신 표정이, 꼭 내가 뭘 엄청 잘못한거 같잖아"
"그러게 왜 칠칠맞게 흘리고 다녀"
"내가 흘렸나 갸가 빠져 나갔지..."
그 어느것도 아닌,
바른 마음의 착하고 좋은사람을 만나서 고맙게 돌려 받은거라 생각하기로 했지만,
문득문득 '작업'이라는 말이 거슬려 또다른 사람한테 얘길 했다.
휴대폰을 달라더니 이것저것 한참을 눌러 보곤 어이 없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한다는 말.
"잠자는 호수에 따발총 갈긴건 언니잖어"
문장보관함을 보란다. 거기엔 2년전 교통사고로 늑골 3개가 골절되어 입원해 있던 날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종일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들던 생각들.
여명과 늦은밤의 고통스러움이 아직도 그 속에서 신음 소릴 내고 있고,
보낼 수 없었던 마음,
보낼곳 없었던 마음,
버려지지 않던 마음들이 지금껏 거기에 남아 내 무심함을 탓하고 있었다.
문장보관함에 들어 있는 그 많은것 중에 하나.
'가을 끝자락이 매달린 푸른 하늘에, 빨간장미를 한송이 만 그렸습니다.
향기는 그리움으로...'
첫댓글문화원에서 재미 있게 들었고....글로 또 대하니 좋습니다. 핸드폰속에 있었던 삶의 편린들이 남에게 고스란히 들켜버린 마음.... 그래서 그가 그렇게 다가서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데.... 그러고 보면 사람은 그 속을 다 알고나면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댓글 문화원에서 재미 있게 들었고....글로 또 대하니 좋습니다. 핸드폰속에 있었던 삶의 편린들이 남에게 고스란히 들켜버린 마음.... 그래서 그가 그렇게 다가서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데.... 그러고 보면 사람은 그 속을 다 알고나면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해 진다는건 상대가 마음을 보이길 바라기 전에 내가 마음을 보이는게 더 빨리 쉽게 친해 질 수 있는 방법이지요
하여튼 마지막 수업까지도 주책을 떨었습니다 ㅋㅋ.....
주책은 무슨 주책이라 하시나이까? 웃음을 주니 좋기만 한데요.
ㅋㅋ.....계속 망가져 드리리다
형식을 갖추어 올리려다가 읽기 편하게 하려고 행간을 내 맘대로 해 놓았습니다. 첫날, 둘째날은 솔직히 무식해서 그렇게 썼었던거고 이건 그래도 조금 유식해 졌지만 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니 너무 무식하다 탓하지 말아 주옵소서!
남월언니 좋아요 화이팅
수필을 시 처럼 상큼하게 소설처럼 재미있게 써야한다고 배웠지만 쉽지가 않은데 한선생님의 글은 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이렇게 뚝뚝 끊어 놓으니 훨씬 읽기도 편하고요. 사진 , 컴퓨터, 시 수필 아무튼 못 하는 게 뭐래유...^^
지대루 하는건 뭐래유?... 읍씨유 ㅋㅋ.......
남월언니수업시간에 재미있게 들었어요 역시 마지막 수업 멋지게 장식하셨어요 .....호호호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보니 기가막힌 사연에 멋 있는 글입니다. 역시 멋쟁이 향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