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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년 9월 13일 토요일 명지산
고인돌, 사니조은 님과 함께
교통편 : 전철 09:10 가평역 – 09:40 목동터미널 – 택시로 이동 10:10 익근리 명지산 들머리 도착
11:30 명지폭포 – 15:30 명지 1봉 정상 – 17:20 사향봉 도착 – 18:20 익근리 도착
18:20 버스탑승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347544
거리14.2 km
소요 시간8h 10m 31s
이동 시간6h 55m 18s
휴식 시간1h 15m 13s
평균 속도2.1 km/h
최고점1,264 m
총 획득고도890 m
난이도보통
유례가 없다는 긴 장마에 이어 일 주일 간격으로 지나가는 태풍으로 온 나라가 긴장한다. 태풍 바비(Bavi – 베트남 산 이름)가 8월 26일(수요일) 밤 황해를 통과하여 북한 황해도로 상륙하여 지나간데 이어 마이삭(Mysak – 캄보디아 나무 이름)이 9월 3일(수요일) 동해안을 지나 북한 함경북도 청진을 지나갔다. 태풍의 발생 빈도도 잦아졌을뿐더러 위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최대풍속 40m/s 정도의 위력으로 왠만한 바위도 날릴 정도였다고 한다.
마이삭에 이어 제10호 태풍 하이선(海神)은 처음에는 일본을 지나서 한반도로 접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가 일본은 그냥 스치고 부산으로 상륙하여 한반도를 관통하고 지나갈 것이라고 경로가 점점 바뀌었다. 위력도 역대 태풍 중에서 가장 강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행히 하이선은 9월 7일 월요일 아침 부산을 스쳐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북한 땅을 지나갔다. 이렇게 지난 2주간 세 개의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 주변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그렇게 매스컴에서는 난리를 쳤지만 막상 태풍의 피해현황이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불과 1주일도 안된 사건인데도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일인 듯 뇌리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생명체의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 식으로 생겨난 인간의 기억능력은 꼭 필요한 것만 저장해 두도록 조절되는가 보다.
태풍 하이선이 예보와 달리 한반도를 비켜간 것은 한반도 상공을 차지한 찬 고기압의 영향이라고 한다. 실제로 태풍이 오기 전부터 밤에 이불을 끌어 덮어야 할 만큼 기온이 선선해졌다. 이제 여름은 그렇게 지나 가나보다.
코로나 (COVID 19)
8월 15일 광화문 집회 이전만 해도 하루 확진자 수가 20~30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질병본부에서는 경로추적이 안되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언제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날 지 모른다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리고 8.15 광복절날 전국에서 버스를 동원하여 광화문에 모인 보수집회로 인해 코로나 바이러스도 급격히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하루 확진자가 갑자기 400 명에서 600 명 수준까지 올라갔고 질병본부에서는 대응단계를 2.5로 상향조정하였다. 행동수칙으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밤 9시 이후 모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없도록 한 조치였다. 물론 실내에서의 모임도 자제되었다. 낮에도 식당에 가면 개인정보를 남겨야 하고 좌석도 마주 앉지 못하고 대각선으로 앉게 배치하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확진자 수가 100 명 안팎으로 내려갔고 질본에서는 9월 13일까지 추이를 보고 대응단계를 내릴지 아니면 계속 유지할 지 결정한다고 한다. 당장의 현안은 벌초행사였다. 추석을 3주 앞두고 전국적으로 주말에 벌초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할 것이고 자칫 전염병도 다시 한 번 대폭발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정부에서는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권장하였지만 그런 것도 돈과 연관이 되어 있고 또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산소를 살펴야 한다는 효도의식 때문에 완전한 통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일요일에 벌초를 하기로 정했고 하루 전인 토요일에 내려가서 큰 누나 집에서 자고 벌초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려가는 김에 엄니를 요양원에서 모시고 나와 영양제 주사를 놔 드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요양원에서는 외출이나 면회를 금지하지만 치료 목적으로 영양제 주사를 맞는 것은 허용한다고 배려해주었다.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11시쯤 유구에 도착하니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니 영양제 주사만 맞고 다른데 들르지 말고 바로 요양원으로 복귀해야 한대.”
원래 계획은 큰 누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영양제 주사를 맞은 다음 형은 엄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나는 쟁이내로 올라가서 벌초를 하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계획이 유동적이었지만.
11시 15분 엄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니 병원에서도 조금 난감해한다. 영양제 주사를 맞으려면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토요일 병원은 오후 1시까지 근무한다는 것이다. 원래 오후 3시까지 진료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 일단 주사를 맞고 시간이 모자라면 중지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시작하였다. 그 사이 형은 쟁이내 작은 성네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내려왔다. 작은 성이 밤나무 밑 제초작업을 하면서 산소 주변도 다 깍았기 때문에 산소 벌초작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빨리 끝내고 올라가자고 한다.
영양제 주사를 맞는데 한 시간 조금 더 걸려서 12시 30분에 마칠 수 있었다. 큰 누나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형이 엄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간 사이 나는 작은 성네 집으로 올라갔다. 장비만 빌려 가려고 했는데 예초기가 너무 커서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작은 성이 트럭에 장비를 싣고 동행해야 했다. 아버지 산소에 올라가는 중에 형도 도착해서 세 명이 벌초 작업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토요일에 벌초를 마치니 마음이 홀가분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를 공짜로 번 느낌이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설산에게 연락하여 산행계획을 세우자고 했다. 나는 진고개 ~ 대관령 구간을 걷고 싶은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으니 다른 코스도 검색해 보라고 부탁했다. 명지산에 간다던 고인돌 형님은 반응이 없다. 설악산에 마음이 꽂힌 설산은 마장터 – 대간령 - 신선봉 – 상봉 – 미시령 코스를 가면 어떨까 물어본다. 모두 가고 싶은 곳인데 대중교통 연결편을 알지 못하니 그냥 등 가려운데 다리 긁는 격이다. 설왕설래하다가 명지산으로 낙점했다. 작년 이맘때 명지산에서 보았던 금강초롱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 있다. 뒤늦게 카톡 대화창에 들어온 소산 님도 함께 가기로 하여 모처럼 세 명이 함산하게 되었다.
전철로 가평역을 거쳐 가는 긴 여정
명지산에 가는 대중 교통도 만만치 않다. 전철과 버스를 연계해야 하는데 최종 연결 구간인 목동 터미널에서 용수동으로 가는 버스가 관건이다. 시간을 거꾸로 맞춰야 한다. 3월 1일에 개편된 버스 시간표에 따라 9시 50분 목동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9시 20분 가평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우리는 9시 10분 가평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상봉역에서 가평역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집에서 7시쯤 나서면 된다. 모처럼 여유 있는 아침이다. 그런데 새벽 5시에 갑자기 소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카톡 대화창을 보라고 한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데 도봉산으로 가면 어때요?” 전혀 뜻 밖의 제안이다.
날씨가 좋으면 더욱 명지산에 가야지요. 날씨가 좋을 때 명지산에서 주변 산세를 바라보는 느낌을 기대하는 나와 달리 소산 형님은 선명하게 비치는 도봉산의 암봉을 그리는 모양이다.
“그럼 원안대로 명지산에 갑시다.” 그렇게 원안대로 어렵게 명지산행이 추진되었다.
일찍 집을 나선 소산 형님은 나보다 조금 이른 7시 45분에 상봉역을 출발하는 전철을 탔고 설산과 나는 8시 10분 차를 탔다. 먼저 도착한 소산 님은 가평 터미널 근처 떡집에 들러 아침 요기를 간단히 하고 우리와 같은 버스로 목동 터미널에 9시 40분에 도착하였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 간다. 9시 50분에 출발하는 용수동행 버스 시간표가 바뀌어서 9시 20분에 이미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9시 5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버스 시간표가 의아하여 가평역에서 타고 온 버스 기사에게 물으니 대답이 퉁명스럽다. “시간 되면 오겄지유~” 터미널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시간표가 변경되었다며 유리창에 붙여 놓은 버스 시간표를 가리킨다. 9월 14일부터 시행되는 버스 시간표에는 용수동행 버스가 9시 20분에 출발한다고 써 있다. 그리고 그 옆에 9월 1일 시행되는 버스 시간표도 있는데 역시 똑 같았다. 우리는 새로 바뀐 버스 시간표를 알지 못했고 거기서부터 하루의 스케쥴이 실타래처럼 엉킬 뻔했다.
마지막 퍼즐을 버스 대신 택시로 채워 넣었다. 목동 터미널에는 우리처럼 버스 시간을 잘 못 알거나 다음 차편을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급한 사람들을 위해 늘 택시 2대가 대기중이다.
명지산 계곡
익근리 명지산 들머리부터 명지1봉 정상까지 약 6 km 로 꽤 긴 거리다. 그 중 계곡이 끝나고 명지 2봉과 명지 1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4.5 km인데 이 구간이 계곡길이다. 산길은 계곡을 따라서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다.
십 리가 넘는 거리를 흘러내리는 명지 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고 깊고 낮은 여울을 지난다. 곳곳에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담(潭)과 소(沼)가 있어 가을철 단풍들 때 찾아오면 얼굴이 활활 타버릴 것 같다.
길 가에는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물을 좋아하는 물봉선과 노랑물봉선, 고마리와 미꾸리낚시 그리고 여뀌풀이 무리 지어 피어 있고 바위 벽 습진 곳에는 금강초롱 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특히 명지폭포 위 바위틈에 자라는 금강초롱은 자태가 무척 고와 귀부인의 풍모를 풍긴다. 금강초롱꽃과 함께 어어루져 피어 있는 바위떡풀은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하얀 꽃잎이 밑에 두 개는 길게 그리고 나머지 세 개는 짧게 달렸고 가운데 암술을 둘러싸고 7~9개의 수술이 달려 있다. 어두운 계곡 바위에 피어 있는 바위떡풀과 김강초롱 꽃으로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명지산(明智山 1,267 m)
익근리에서 꽃을 보며 계곡을 보며 또 간식을 먹으면서 쉬엄쉬엄 걸으니 세 갈래길까지 4.5 km 걷는데 3시간 걸렸다. 앞으로 남은 1.5 km 는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다. 통나무 계단이 툭툭 튀어 나와 걷기도 불편하다. 겨울철 이 길을 내려올 때는 눈이 얼어 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져 다칠 수도 있는 위험 구간이다.
오르막 길 가에 생각지도 않았던 참배암차즈기 꽃이 피어 있다. 전에 설악산에 갔을 때 겨우 한 송이 피기 시작한 이후 이 꽃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끝물이나마 제법 많이 남아 있어 반갑다. 잎 모양이 코스모스 잎처럼 얼기설기 그물 모양인 고본 꽃도 여럿 보인다. 고도가 해발 1,000 미터가 넘는 산이다 보니 왠만한 고산식물은 다 있는 것 같다. 투구꽃도 이제 피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끝나고 안부에 도착하여 좌측에 조망처가 있어 잠시 들러 본다. 바위에 피어 있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긴다. 발 아래 펼쳐진 숲도 약간 붉은 빛을 내면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겨울이 끝나자 마자 이른 봄부터 코로나로 그리고 긴 장마와 태풍으로 험난했던 시간이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어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 인류사를 코로나 이전 ( Before Covid 19 )과 코로나 이후 (After Covid 19 )으로 구분해서 써야 할 거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은 신의 섭리에 따라 변함없이 적응해간다.
오후 3시 30분 명지산(明智山 1,267 m) 정상에 올랐다. 어제 내린 비에 깨끗해진 공기 덕에 주변 산들이 멀리까지 잘 보인다. 맞은 편 약간 북동쪽에 위치한 화악산의 중봉과 그 너머 응봉이 우뚝 서 있다. 명지산을 둘러싸고 동북쪽으로는 화악산 석룡산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귀목봉 그 옆에 청계산 그리고 남쪽으로 연인산이 모두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정상석 주변에는 날개미들이 암캐미와의 윤무(輪舞)를 마친건지 잔뜩 내려앉아 정신없이 달라붙는다.
사향봉(麝香峰 1013)
가평군에서는 명지산의 봉우리 이름에 번호를 매겨 명지 1, 2, 3봉으로 부른다. 작년에는 정상을 찍고 명지 2, 3봉을 거쳐 아재비고개에서 백둔리로 하산하였는데 오늘은 사향봉을 거쳐서 내려가기로 했다. 하산 거리는 약 7 km 이다.
하산길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후 3시 40분이니 6시 10분에 용수동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익근리를 지나가는 시간이 대략 6시 20분이라고 치면 2시간 반쯤 남았다. 그런데도 소산 님은 여유만만이다.
하산길 능선따라 피어 있는 금강초롱과 진범 그리고 투구꽃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는다. 사향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 광덕산과 백운산이 조망되는 한적한 곳에 앉아 떡과 계란 그리고 맥주와 커피로 요기를 한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 세 명 모두 느긋하다. 과일까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4시 30분이다.
그때부터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초반 내리막 경사가 있고 나서 사향봉까지는 높낮이가 크지 않은 고만고만한 봉우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5시 20분 사향봉에 도착했다. 높이는 1013 미터로 높지만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 아무런 조망이 없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도 모두 사라졌다.
내리막 비탈 경사가 심하다.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발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최대한 걸음을 빨리한다. 급경사에서 내려서니 평탄한 흙길이다. 잣나무 숲이 나오고 잡풀 우거진 노지를 지나니 발 아래 계곡 길이 보인다. 이제 다 왔다. 그래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버스시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내 오후 6시 20분 아침에 출발했던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저 앞 버스 정류장에 배낭을 맨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제서야 우리는 안도한다. 우리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마자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마스크 속에서 하얀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 바뀐 버스 노선은 목동 터미널에서 갈아타지 않고 직접 가평역까지 가는 것이라 시간도 많이 단축되고 편리하다. 익근리에서 6시 20분에 출발하여 가평역에 6시 50분 도착하였고 7시 10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타고 상봉역을 거쳐 8시 40분에 귀가하였다. 여러가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야생화로 점철된 행복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