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2. .
나는 누구의 요나단인가?
삼상 18:1~5
I. 다요지교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고 함석헌 선생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건 세상의 가장 귀중한 보석을 얻는 것입니다.
“금란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이나 난초같이 서로에게 귀하고 향기로운 친구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마치 물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뗄 수 없는 친구관계를 “수어지교”라고 합니다.
잠언 27:17에서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다요지교”란 말을 아십니까?
아신다면 거짓말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만들어 낸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관계,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제가 표현해 보는 말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들어 억지로 제가 만든 말이 다요지교”입니다.
그 외에도 “천만매린”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금이라도 주고 친구 곁을 산다는 뜻입니다.
옛 중국 송계아가 은퇴 후 살 집을 찾는데
친구 여승진 옆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백만 금밖에 안되는 집을 천만금을 주고 삽니다.
왜 그렇게 비싸게 지불했느냐 물었더니
집값 1백만금, 친구값 9백만금
그래서 천만금을 주고 샀다는 겁니다.
친구대신 목숨이라도 내어주고 행복해하는 우정을 “문경지교”가
오늘 본문 “다교지교”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입니다.
장기려박사와 함께 의료보험 운동을 펼치던 사회운동가 채규철선생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농촌운동, 대안학교운동을 함께 펼치던 분입니다.
김해에 있는 양계장을 탐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파른 벼랑으로 차가 굴러 떨어집니다.
마침 차 뒤에 신나 통이 실려있었는데 펑 터지는 바람에 온몸
에 3도 화상을 입고 수 없이 수술을 하는데 자신의 몸은 온몸이 불에 타 떼어낼 살이 더이상 없습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자기 엉덩이 살을 잘라 수술을 합니다.
남편을 살려놓고 아내는 심장쇼크로 피를 토하고 죽습니다.
아내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얘기가 그의 저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보,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피보다 진했소”피보다 진한 사랑, 믿음, 의리 –이것이 바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입니다.
II. 시기, 질투 자는 망한다.
오늘 본문의 앞장 사무엘상 17장은 성경의 가장 유명한 장이요, 가장 위대한 장 가운데 한 장입니다.
소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장입니다.
블레셋과의 여러 번 전쟁에서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거인 골리앗의 등장으로 이스라엘과 사울 왕은 위기와 혼란에 빠집
니다.
이때 등장하는 영웅이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그가 토해내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지나도 듣는 이들의 심장에 믿음의 불을 지릅니다.
그의드라마틱한 승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인생역대급입니다.
다윗은 하루아침에 국민영웅, 하나님이 세운 왕으로 등극하기 시작합니다.
아뿔사! 이 위대한 순간부터 다윗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고, 청천벼랑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풍전등화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승전환영 퍼레이드가 열립니다.
이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노래를 만들어 합동공연을 펼칩니다.
노래의 가사가 가관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시18:7)
이 노래소리를 사울 왕은 심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왕권의 위협을 느낍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을 돌리는구나.
이제 다윗이 얻을 것은 나라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시18:8)고 노를 발합니다.
사울은 내심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두려워했다는 말이 18장에서 반복되어 있습니다.
12절, 15절 “두려워했다”
29절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했다고 기록합니다.
사울은 급기야 악신이 내리고 미치광이 폭군이 됩니다.
18장에서 20장 사이 6번씩이나 다윗을 죽이고자 시도합니다.
① 처음 두 번은 자기 병을 치유하기 위해 치료연주를 하는 다윗을 아예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창을 던집니다.
② 또 두 번은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내보내고, 블레셋과 싸움을 붙여 전사하도록 다윗을 내몰지요.
③ 다섯 번째는 다시 다윗이 수금을 탈 때 단창을 던져 죽이게 합니다. 마침내 다윗은 도망자의 길에 오릅니다.
④ 마지막 여섯 번째는 다윗의 집으로 암살단을 보내 포위하고 기다렸다가 죽이고자 합니다.
사울은 아예 다윗을 침상채로 묶어 오너라. 내가 직접 죽이겠다고 합니다. 아내 미갈이 다윗을 창으로 달아내려 피신케 합니다.
그리고 사람모양 우산인형에 옷을 입혀 이불을 덮어둡니다.
사울이 이불을 걷었을 때 우상 인형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러나 보십시오. 정작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은 도망자 다윗이 아니라 영혼도 내면도 모든 것도 잃어버리고 망가진 사람은 사울 왕 자신이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며 상대가 망가지기를 시대하는 것은 자신이 독약을 마시고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요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지혜와 민첩함을 주어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요 하나님을 대신한 멘토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다윗의 수호천사였습니다.
III. 위대하도다! 요나단.
오늘 본문 사무엘상 18:1-5은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이 싹트게 되는 짤막한 서론입니다.
1절에서는 다윗이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에게 하는 말을 듣고 곧바로 ①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말을 아주 강한 밧줄로 꽁꽁 묶어서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②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한 말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장 17장에서 골리앗 앞에 서며 다윗이 토해내는 그 위대한 말들을 들은 것이 아마 결정적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이 골리앗의 목을 칼에 꽂아 번쩍 들고 돌아올 때에 고압선에 감전된 것처럼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이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요나단은 왕위를 계승할 세자입니다.
당연히 아버지 사울의 왕위를 계승할 사람입니다.
이때 다윗이 왕이 될 사람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시기를 하고 질투를 할 한 사람이 있다면 요나단입니다.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던 다윗을 견제하는 건 오히려 전당
한 일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다윗이 임금과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저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곰과 사자를 이기게 하셨듯이 저 골리앗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어서 내가 사자의 입을 찢고 새끼양들을 지켰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골리앗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믿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하나님,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보라!
그리고 물맷돌 다섯 개 가운데 단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의 목을 잘라 들고 옵니다.
이때 요나단은 이스라엘 구원자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미래, 국가적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누가 내 편인가?
내게 유익한 길이 무엇인가?
확정적 편향이 없습니다.
여기에 시기, 질투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요나단입니다.
인격자 중에 인격자입니다.
신앙인 중에 신앙인입니다.
영웅 중에 영웅입니다.
요나단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없습니다.
나라는 요나단 여당과 다윗 야당으로 나뉘어져 풍비박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피의 복수의 칼이 온 나라를 더럽혔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18:3절에서 다시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습니다.
그 언약이 무엇인지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흘러가면서 그 언약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권싸움하지 말자.
누가 정권을 잡든 서로의 우의를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너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대대로 이어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서 자녀들을 보호하자.
오직 나라를 세우는 일,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 하나님의 왕궁을 건설하는 일에 하나가 되자고 하는 언약이었습니다.
후에 보면 요나단의 장애인 아들 므비보셋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 친구의 아들과 한 상에 같이 앉아 밥을 먹습니다.
자기 친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도 이 아들을 지켜냅니다.
친아들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다.
요나단의 모든 재산을 장애인 아들 므비보셋에게 그대로 넘겨
줍니다.
이게 바로 오늘 말하는 언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 말씀입니다.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18:4)
한 나라의 왕자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세자 옷을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왕자가 입고 있던 옷과 모든 무기를 다윗에게 넘겨줍니다.
5절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다윗은 참모총장이 되어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보내옵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온 백성이 이것을 합당히 여겼더라.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입니다.
만인 앞에서 요나단은 왕위 계승권을 다윗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요나단이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처럼 위기의 자리 때 마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지켜냅니다.
요나단의 신앙과 품성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만큼 위대하고 감동스럽습니다.
세자 요나단은 당시 사회적 위치에서 목동 다윗과 비교할 인물이 아닙니다.
나이도 10살은 아마 더 많았을 겁니다.
이런 다윗과 언약을 맺어 친구가 되고 영원한 멘토가 되고 후원자가 되어 줍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고 끊임없이 격려합니다.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그를 지켜냅니다.
다윗을 변호하기 위해 금식하며 통곡합니다.
울며 매달려 다윗이 무슨 잘못
을 했습니까? 이렇게 선한 다윗을 해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엔 때를 기다리자!
다윗을 망명길 광야로 보냅니다.
이때부터 10년세월 다윗은 광야를 헤매게 됩니다.
이때의 마지막 이별의 장면을 사무엘상 20:41-42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이후 요나단의 모습, 품성은 더욱 빛이 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을 보호하지만, 한 나라의 왕이요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을 떠나지 않습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악령에 시달리는 아버지 곁을 끝까지 지킵니다.
요나단은 끝까지 아버지 곁을 지키다가 사무엘상 마지막장 31장에 아버지 사울과 함께 장렬히 전사합니다.
다윗과의 우정도 지켜냅니다.
아버지의 아들, 왕의 신하로서의 도리에도 추호의 변질이 없는 의리의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향기로운 인품입니까?
요나단이 멘토가 되어 다윗에게 불러준 노래가 있었다면 이런 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때
내가 너의 벗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윤항기 목사님과 윤복희 권사님의 노래이신데 여기 친구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IV. 당신은 누구의 요나단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다윗의 요나단 같은 친구, 생명으로 날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요15:15) “너희는 나의 친구다”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창기와 세리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왕궁으로 초대하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 왕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오너라 나와함께 영원히 살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여기 친구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짐을 담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 모두에겐 요나단 같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 맡겨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의 요나단이 되어야 하느니라.
이게 네가 이세상에 살아가야 할 이유다.
잘 살아야 되는 이유다.
좀 더 건강하게 살아야 될 이유다.
좀 더 오래 살아야 될 이유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그리스도의 품성에 다다를 때까지, 성장하기 위해서, 내 영혼이 변하고 내 언어가 변하고 품성이 변하고 신앙이 변하고 인생의 삶이 변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변하고 성장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배하고 은혜받고 성장해서 뭘 하게?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내게 맡겨진 다윗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요나단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요나단이 되어야 하느니라.
우리의 관심은 나의 요나단이 누구일까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오늘 누구의 요나단이 되어라 말씀하시는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방황하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속 썩이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바로 당신이 그 자녀의 요나단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그 시간은 당신이 그 아내의 요나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받고 살던 남편이 상처받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어려움을 겪습니까?
눈물의 기도로 그 남편의 요나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친구들 가운데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찾아가 그의 요나단이 되어라 말씀하십니다.
늙어가는 부모님, 누군가 도움없이 살 수 없는 내 어버지가 계십니까?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요나단이 되어야 하느니라.
목장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요나단이 되어라 말씀하십니다.
「2020 트렌드」라는 책이 금년 초에 나왔습니다.
2020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트렌드가 무엇이냐?
작년 재작년까지 나홀로가 트렌드였습니다.
2020 트렌드는 외로움입니다.
둘이 앉아 있어도 문자를 주고받으며 핸드폰을 들고 야단을 떨어봅니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SNS을 뒤지고
친구 요나단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외롭기 짝이 없습니다.
요나단 없이 살 수없는 인생인데 요나단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020년 한 해동안 살아가는 가운데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고통도 있을 것이고 실패도 있을 것이고 몸도 마음도 아플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무너지고 공동체도 무너지는 것을 보는 고통의 시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요나단이 되어서 너는 나를 붙들고 나는 너를 붙들어 주면 이 험한 세상 우리는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 여러분을 통하여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을 세우고 내가 일어서는 멋진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2019년 작년 T.V.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는 “미스트롯”입니다.
송가인이라는 트롯영웅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열기가 식기전 “미스터트롯”이 출발했습니다.
첫 방송부터 단연 화제를 모은 인물은 독일유학까지 마친 성악가 출신 김호중이라는 29살 청년입니다.
2012년 상영된 한석규, 이제훈 주연 고교생 깡패 성악가 “파파로티”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2013년 스타킹에 출연하고 그해 가을 교회 감사특밤 강
사로 간증과 함께 찬양을 했던 청년입니다.
스타킹 출연을 본 독일의 한 테너 가수가 김호중을 독일로 초청하여 유학을 마쳤습니다.
나오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아픈 시대, 내가 아픔과 고난과 고통을 겪었듯이 나처럼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노래로 치료하는 치료의 사역자가 되겠다. 힐링사역자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웁니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가까이 가자. 성악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도구를 통하여 이 시대에 우리민족에 정서가 담겨지는 트롯가수가 되어서 대중에게 다가가자.
미스트롯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호중씨가 끝까지 살아남아 우승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할머니 마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할머니의 말씀, 할머니 유언을 지키기위해 성악가가 되기 위해 생각을 합니다.
교회를 찾아가 지휘자 밑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그 와중에 싸움을 잘 한다는 이유로 폭력불량써클로 끌려갑니다. 싸움질을 잘해 울산에서 서울로 원정싸움장까지 몰려다닙니다.
김천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 한석규역 김수용선생님을 만납니다. 김수용 선생님은 자기 집에서 호중이를 키우며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워줍니다.
그러나 깡패들은 호중이를 끌고 소굴로 들어갑니다.
김수용선생님이 김호중을 깡패단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온갖 몸부림하며 깡패 소굴을 찾아갑니다.
두목은 앞을 가로막으며 호중이 데려가려면 두 발목 자른 다음 업고 나가라고 협박합니다.
이때 김수용선생님은 무릎을 꿇고 깡패두목 앞에 애원합니다.
기어이 발목을 잘라야 한다면 내 발목을 자르고 호중이를 내보내주십시오.
여기서 두목도 눈물을 흘리며 영화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 씨, 내게는 왜 이런 쌤이 없었을까?”
여러분, 내게는 왜 이런 쌤이 없었을까?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내게 이런 선생님이 왜 없었을까?
아니라 나도 이 아이들의 요나단이 되고 쌤이 될수는 없었을까? 질문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맺으며 묻습니다.
“나는 누구의 요나단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곁에 보내준 다윗이 보입니까?
내 눈에 그 다윗이 보이지 않으면 그 다윗은 현실에 절망하고 왕의 자리가 아니라 양치기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울의 칼에 피흘리며 쓰러졌을 것입니다.
요나단이 없었다면 다윗은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 곁에 당신이 요나단이 될 수 없다면, 당신의 남편, 아내 곁에 당신이 요나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 곁에 당신이 요나단이 될 수 없다면 그 인생 쓰러져도 몇 번이고 쓰러졌을 것이고, 넘어지고 깨지고 망가져도 몇 번은 망가졌을 것입니다.
썩은 세상을 비관하며 주정뱅이 낙오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당신의 요나단 사명에 불이 붙으면, 당신 곁에 다윗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윗이 다시 인생의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가정이 살고 공동체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물어보십시다.
나는 누구의 요나단인가? 나의 다윗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요나단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