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安東 太師廟 三功臣 遺物 一括. 보물.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1번지 태사묘)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安東 太師廟 三功臣 遺物 一括)은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토벌할 때, 활약한 공로로 대광태사란 벼슬을 받은 권행, 김선평, 장정필 3인의 위패가 있는 사당인 태사묘의 유물들이다.
이 사당은 조선 중종 37년(1542)에 세워진 것으로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1958년 다시 복원하였다. 현재 총 12종 22점에 달하는 유물들이 보물각에 보관되어 있다.
유물에는 붉은 칠을 한 1개의 잔, 꽃무늬를 수 놓은 비단 1점, 꽃무늬가 있는 비단 6점, 검은색 관모 1개, 목이 긴 가죽신발 1켤레, 비단으로 만든 부채 1개, 구리로 만든 육면체 도장 2개, 놋쇠로 만든 뚜껑이 달린 합 1개, 옥으로 만든 관자 1개, 손상이 심한 허리띠 4개, 공민왕의 친필로 보이는 교지 1개, 동으로 만든 숟가락 1개와 젓가락 3개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3공신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분별하기 힘들며, 또한 공민왕의 친필로 쓰여진 교지와 숟가락 등은 고려 후기의 것으로 고려 초기의 것과 상당수 섞여 있다. 하지만 태사묘 소장 유물들은 고려시대 관제와 복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국가유산청)
여지는 남방에서 자라는 과일인 리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과일로 쉽게 접항 수 없기에 여지는 이국적이고 진귀한 것으로 생각했다. 조선시대엔 이품과 정삼품의 공복에 착용하는 금대에 여지무늬를 새겼다.
동인은 윗면에 상上이라는 글자를 새겨 상하를 구별하였고, 아랫면에는 성화星火라 양각하였는데, 이는 '빠르게 전달하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의 인장에는 "엄히 위조를 방지한다.'는 뜻을 새겼다.
관자는 망건에 부착하여 당줄을 당겨 고정할 때 쓰는 것으로 공민왕이 하사한 것이다. 옥에 매화를 조각하였다. 관자를 보관하는 관자통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소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신으로 코는 위로 뾰족하게 솟았다. 바닥은 두꺼운 가죽을 여러 겁 대어 꿰매었고 안은 밀도가 성근 베를 한 겹 붙였다. 윗부분에는 청색 무명으로 장식한 선을 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