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강의실
봄비 그치자 하늘이 파랗게 빛났다. 산은 산이라고 외치던 무설전(無說殿) 뒤 봉의산에는 오월의 꽃이 만발했다. 하얀 꽃송이가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청정(淸靜)이요, 소리를 들어도 무구(無垢)했다. 때 없이 맑고 고요한 오월 오전, 맑은 눈망울을 가진 보살과 거사들이 귀를 열었다.
교수는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을 범어로 쓰고 풀이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사실을 다섯 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한 사성제 이야기였다.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라 했다.
인간이 사는 현실은 괴로움의 세계라는 고(苦), 욕망과 애착과 쾌락의 모음으로 괴로움이 생긴다는 집(集), 괴로움이 소멸되어 평온의 경지에 이른 멸(滅),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8가지 바른 방법인 도(道)가 사성제(四聖諦)이다. 부처가 되는 네 가지 성스러운 깨우침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고(苦)는 모두 무지와 무명에서 온다. 원래 생로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괴롭다. 세상 만물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당장의 고통을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니 성스러운 깨우침이라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살면서 나 자체의 존귀함을 모르고, 옆 사람과 비교한다. 비교하는 그 순간 바로 고통이 따른다.
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게 태어나 나와는 태생 자체가 달라. 아이, 속상해. 왜 우리 부모는 부자가 아니었을까. 저 사람은 늙지도 않아. 어찌 피부가 저리 고울까. 정말, 짜증나. 나는 이리 쭈글쭈글한데. 저 사람은 처음부터 건강한 몸을 타고 났는데, 나는 왜 이리 비실비실할까. 아파 죽겠네. 저 사람은 자다가 곱게 아프지도 않고 죽었는데, 나는 왜 이리 아프기만 하고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하나.
이 세상 만물은 모두 다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생로병사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평상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 존재 그대로, 내 팔자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편안하다.
둘째, 집(集)은 욕망과 애착과 쾌락의 끝없는 모음이다. 불교에서는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를 경계하라 한다. 분수 밖의 탐욕, 이뤄지지 못함을 참지 못하고 성냄, 자신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사람은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마치 천년 살 것처럼 탐내고 준비한다. 그런 욕심은 화를 불러온다. 평생 모으다가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 있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존중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이 역시 무명과 무지로부터 시작한다.
셋째, 멸(滅)은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이다. 생로병사도 탐진치도 모두 알고 밝게 분별할 수 있는 단계이다. 모든 번뇌를 벗어나 해탈(解脫)을 이루었다. 우리 삶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잘 관찰해서 나온 단계이다.
넷째, 도(道)는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8가지 길이다. 이를 8정도(八正道)라 한다. 해탈에 이르게 하는 8가지 수행 방법이다. 8정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생각(正念), 바른 선정(正定)이다. 사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바름은 곧 자비(慈悲)라 할 수 있다. 지혜로움을 가지고 온갖 사물을 사랑하면 깨우침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강의가 끝나자 무설전 강의실에는 말하지 않아도 향기가 가득했다. 산사에 풍기는 그윽한 꽃향기였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6.5.13. 석왕사 강원불교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