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 김석수
내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흉터가 있다. 크기는 2센티가 넘는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도 흉터가 있다. 왼손 흉터보다 작다. 둘 다 최근에 생긴 흉터다. 비가 내리려고 날씨가 흐리면 왼손 흉터 자국이 있는 곳이 가끔 욱신거린다. 내 손등 위에 크고 작은 흉터가 많지만 지금은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예전 이맘때쯤이면 가을걷이하면서 낫질을 실수할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그 자국은 나중엔 이리저리 이어지고 뒤얽히며 풀려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있다가 희미해졌다.
왼손 흉터는 작년 봄에 습사(習射)하던 중에 화살이 부러진 사고로 상처가 나서 생긴 것이다. 원인은 불량 화살이거나 몰촉(활을 세게 당겨서 살촉이 줌통을 지나 들어오는 것)이다. 불량 화살보다 화살을 놓을 때 깍지를 세게 당겨서 몰촉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에 피가 많이 나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같이 활을 쏘던 사람 차로 인근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내 손을 보자마자 응급처치하고 수술해야 한다면서 예약 시간을 잡아 주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와 초음파로 상처 부위를 검사했다. 피검사를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 수술대에 올랐다. 왼쪽 겨드랑이에 마취 주사를 맞으니 어깨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잠깐 한다던 수술은 30여 분이 넘어서 끝났다. 수술실에서 간호사와 의사 다섯 명이 수술에 참여했다. 주치의는 렌즈가 긴 수술용 돋보기를 끼고 있다. 화살이 카본으로 만들어져서 파편이 손바닥 깊숙이 들어가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회복실에서 한 시간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서 나왔다. 인근 약국에서 처방 약을 사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아픈 증세가 느껴졌다.
마취가 풀리자 왼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아내는 활쏘기를 그만해야 한다고 불평한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수영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당분간 자전거도 탈 수 없다. 운전도 걱정이다. 왼손을 못 쓰니 장애인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수술하고 이후부터 하루걸러 병원에 갔다. 3주쯤 지나자 실을 뺄 수 있다. 손에 붕대를 감지 않고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만 붙여도 된다. 하지만, 활쏘기와 수영은 하지 말라고 한다.
실을 빼고 나서 검지 밑이 딱딱하다고 했더니 의사는 다시 초음파 검사하자고 한다. 그는 컴퓨터 화면으로 영상을 내게 보여 주며 큰 파편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며 재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시, 3주를 고생하고 다른 운동도 할 수 없다니 난감했다. 다음날 수술대에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어깨 마취는 안 하고 손목 마취만 하고 수술했다. 의사는 1센티쯤 되는 검은 파편을 찾아내서 내게 보여준다. 그 후 계속해서 한 달 병원에 다녔다. 두 달 동안 수영과 활쏘기를 하지 못했다.
오른손 흉터는 금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입은 상처로 생긴 것이다. ‘전문 상담사’ 자격시험 공부를 하려고 자전거로 동네 도서관에 다녔다. 걸어서 다닐 수도 있지만 일찍 가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빨리 가려고 자전거로 갔다. 그날도 아침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한 시간쯤 책을 보다가 집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 문을 나와서 울퉁불퉁한 보도 블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빨리 가려고 페달을 세게 밟았더니 앞으로 넘어졌다.
코 밑과 오른손 등 위에서 피가 났다. 헬멧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다행히 눈은 다치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려다가 집으로 갔다. 그날은 의사 파업으로 병원에 가봐야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어서다. 아내 모르게 화장실로 들어가서 피를 닦았다. 입술 안에서 피가 계속 흘러 나와서 화장지로 한참 동안 누르고 있다. 거실에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응급처치 약을 서재로 가지고 가서 치료했다. 아내는 내가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 시간쯤 지나니 입술이 부어올랐다. 열흘 뒤 입술의 부기가 빠졌고 오른손 등 위의 상처도 아물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서 집에서 치료할 수 있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그 흔적을 ‘흉터’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으면서 그 자리에서 아무는 듯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처는 흉터를 찢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상처가 처음 났을 때보다 아프고 화가 난다. 아물었던 상처도 가끔 곪아 터진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흉터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첫댓글 흉터보다 활쏘기, 아침 수영, 자전거, 이런 단어가 눈에 들어오네요.
너무 멋지게 사시는군요. 다치지 마시고 건강하게 즐기십시오.
송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아서.
마지막 문장에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네, 그렇습니다. 황 선생님 고맙습니다.
어렸을 때 상처와 지금의 상처는 다를 거라 생각해 봤습니다. 아내 앞에서 "나 다쳤다" 말 못하는 남자, 사는 게 다 비슷한가 봅니다. 저도 그렀습니다.
네, 그래요. 고맙습니다.
활쏘는 것도 위험하네요. 큰일날 뻔 했어요. 사모님한테 소리들어도 할 말 없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활쏘기와 수영, 거기다 자전거 타기까지. 모두 부러운 취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