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하나님 나라는 가장 큰 우상을 죽일 때 옵니다.
07/15월(月)고후 5:13-17 / 고전 6:17-21 / 눅 17:20-21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그의 저서 기도에서 ‘거듭나서 영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 나라 출입구에 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우상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지옥은 속는 사람이 가는 곳이고,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 8:44).
내 속에 있는 우상이 무엇인가?
우리가 속고 있는 우상은 바로 ‘나’라는 자아입니다. 사단은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자는 요한의 때까지다. 그 뒤로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기쁜 소식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모두 거기에 억지로 밀고 들어간다”(눅 16:16). 하나님 나라는 율법을 넘어서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침입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마귀보다 무섭고 교황보다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 자아이다.”-마르틴 루터-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 3:4-5). 1인칭은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되어서’라는 것은 1인칭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 세상에 단 한 분 창조주이십니다. 나는 1인칭이고 내가 주인입니다. 옛사람, 겉 사람, 거짓 자아는 1인칭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내가 ~을 했다’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하게 하셨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수동태가 되어야 합니다. 1인칭인 ‘나’를 이기면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1인칭 주체가 되는 행동은 하나님을 제치고 내가 주인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단한 것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나’라는 우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1인칭이 살아나지 않도록 수시로 인식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1인칭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나는 없고 예수가 주인입니다. ‘나’라는 말은 마귀가 만든 말입니다. ‘나’를 죽일 때 예수가 주인으로 계십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인칭을 죽임)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행 3:15-16). 베드로의 1인칭이 죽자 베드로 안에 주님이 나타납니다. 내가 1인칭이 될 때 마귀가 심어 놓은 죄악의 세력이 작동합니다.
죄는 인격, 악한 인격입니다. 몸 밖에서는 마귀, 사단이 역사하고, 몸 안에서는 죄가 나를 속여서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합니다. 죄의 세력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롬 6:6).
‘나는 죽었다’라고 고백할 때, 나는 죽고 예수가 사십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 2:2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없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거듭난 영적 존재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면 영생, 나를 위해 살면 사망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이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1인칭이 죽고, 그때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And...
우리의 싸움은 내가 주인인가? 주님이 주인인가? 그 싸움입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일이 훅~하고 들어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왜 이런 일이 내 삶에 들어왔을까? 생각합니다. 이럴 때는 그냥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을 묵상하고 있을 때 순간 하나님께서 제 복잡한 머리를 단순하게 해주십니다.
상황으로 들어온 일은 평소에 저의 성향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런 생각을 주셨습니다. “복잡한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이런 일은 안 하고 싶어, 이렇게 생각하는 네 자아를 죽음에 넘겨라.” 저는 상황이 너무도 싫었는데, 그 상황이 싫다 보니 상황을 만들어준 당사자도 자꾸만 미워지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늘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나를 죽음에 넘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아 죽음을 훈련하십니다. ‘주님, 그렇네요. 이것만은 안돼요. 라는 생각에서 죽겠습니다.’ 하고 기쁨으로 순종하겠다고 고백하고 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자아를 죽음에 넘기고, 마음 지킴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는 부정적 긍정적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 안에 있다고 입술로 고백합니다. 지난 토요일 골다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내원하였습니다. 김주영 원장님은 제 갑상선 암을 발견해주신 분이고, 모든 진행 절차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6개월 만에 내원했는데 골밀도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자고 했습니다. 골밀도 검사를 받는데 갑자기 오셔서 오후 시간이 되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습니다. 검사를 진행했는데 지난해 검사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 지켜보자 했던 부위를 재검사한 것입니다. 상복부 초음파에 심장 검사까지 평소에 받아본 적이 없던 검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검사받는 동안 두 가지의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만일 또 다른 질병이 발견된다면?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해졌다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감사히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지난번 수술할 때도 주님은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을 왜 하나님은 이토록 챙겨주실까? 그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원장님과 저는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분에게 감동을 주셔서 ‘너, 지금 주눅 들지마, 지금 내가 너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위로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사람을 통해 흘러옵니다. 누군가가 내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 사인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원장님을 만났는데 감사하게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료비 계산은 zero였습니다. 원장님의 재능을 저에게 기부하신 것입니다. 세밀하게 저를 살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님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치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은 늘 언제나 나에게 1인칭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가끔 나를 테스트하십니다. 죽지 못한 내가 반응할 때 상대의 반응을 주님께 넘기고 반응하지 말라 하십니다. 나도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테스트에 통과하면 늘 보상해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테스트에 통과하는 것이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넘기면 주님이 싸우십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나는 그분의 통로일 뿐입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바로 1인칭,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이 복종 되면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눈앞에 나타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사탄이 주는 시험 거리가 되고, 하나님에게는 테스트에 통과할 관문이 기다립니다. 테스트에 통과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고, 그 상황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가장 큰 우상을 죽음에 넘겨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https://youtu.be/ns2WAViFQ8Y?si=P—Si-u7ehknYmW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