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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강 3장 1절 ~ 4장 13절 신실하신 대제사장 참된 안식 ~ 3장 모세 생각 4장 참 안식 약속
26.07.01(수)
히브리서 4장 1절에서 5절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오늘은 히브리서 세 번째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세 번째 강의는 히브리서 3장 1절부터 4장 13절까지 본문을 중심으로 신실하신 대제사장과 참된 안식 이 제목으로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필 포인트는
첫 번째 신실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라는 포인트를 좀 주목할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들어가는 데 실패한 안식 왜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는데 실패했는가 그들이 들어가는 데 실패한 안식은 어떤 안식인가
세 번째는 그리스도인이 들어갔고 또 들어가야 할 안식 그 안식은 어떤 안식이고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주제를 우리들이 집중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본문을 들어가기에 앞서서 히브리서 전체 구조 속에서 오늘 우리가 다루는 본문이 어디에 있는가부터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는 1장과 2장이 모든 교리적 논의의 기초를 형성합니다.
1장은 하나님의 아들 신성 그리고
2장은 완전한 인간 예수님의 인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기초로부터 예수님께서는 자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 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이제 이 결론을 3장 1절부터 4장 16절에서는 확장 설명하는데요.
먼저 3장 1절부터 6절에서는 신실하신 대제사장 그리고 4장 14절부터 16절은 자비하신 대제사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경고단락이 들어있는데요.
경고단락 여기까지 3장 1절부터 4장 13절까지를 오늘 우리가 살피게 됩니다.
자 그러면 대 제사장 주제를 다루는 2부 전체의 논점을 우리가 여기서 한번 간단히 정리하면요
첫 번째는 3장 1절부터 4장 16절까지 신실하고 자비로운 대제사장 주제를 다루구요.
두 번째는 히브리서 5장 1절부터 10절까지 대제사장의 자격에 대해서 논의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장에서는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대제사장 주제가 다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는 5장 11절부터 6장 절까지 길다란 권면 단원이 들어가 있다는 점 우리가 살피게 되고요.
이것은 두 주 후에 우리가 보다 더 자세하게 살피게 될 내용입니다.
자 그러면 그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3장 1절부터 4장 16절의 신실하고 자비로우신 대제사상 내용은 이렇게 세 단락으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3장 1절부터 6절에서는 신실한 대제사장
2장 17절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을 소개했었는데 이제 그중에서 먼저 신실한 대제사장 주제를 다루고요.
그리고 4장 14절부터 16절에서는 자비로운 대제사장 주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길게 3장 7절부터 4장 13절까지 권면 단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은 신실힌 대제사장과 권면 단원까지 다시 저희들이 살피게 됩니다. 신실한 대제사장 그 내용은 모세와 비교가 됩니다.
대제사장은 모세보다 더 뛰어나시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모세는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죠.
율법을 제공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데 실제로 3장부터 10장까지의 논의를 보면 거기에 중요한 핵심 논제들이 대제사장 장막 언약 희생 제사 이런 것들이 중요한 논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논제들이 다 모세 율법에 들어있는 내용들입니다.
이 모든 논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앞서서 먼저 모세율법을 기록한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함으로써 모세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내용들이 사실상은 예수님을 내다보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모세보다 뛰어나시다 우월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먼저 신실한 대제사장 주제와 더불어서 모세를 비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장 7절부터 4장 13절에서는 적용적인 권면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이 권면 단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3장 7절부터 11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인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57편 7절부터 11절인데요.
이 말씀을 인용하고 가운데 있는 3장 12절부터 4장 11절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합니다.
그런 다음에 4장 12절부터 13절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속성을 얘기하며 결론적 선언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독자들에게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그러한 전개를 진행합니다.
자 그러면 이 가운데 있는 부분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 부분을 우리가 살펴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3장 12절부터 19절은 불신앙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고요.
4장 1절부터 11절은 하나님의 안식과 우리의 안식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한 가지 히브리서의 문학 양식을 좀 생각해 보는데요.
히브리서는 달락을 이렇게 시작하고 끝날 때 자주 인클루지오 구조를 사용합니다.
인클루지오 구조란 처음과 끝에 동일한 단어나 표현이나 문장을 반복함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내용의 주제를 부각하는 방법인데요.
히브리서는 이러한 인클루지오 구조를 단락달락마다 거의 사용하고 있다.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보면 3장 12절부터 19절을 불신앙의 위험을 지적하는 단락으로 우리가 구분을 했는데요.
보면 처음 시작할 때 3장 12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믿지 아니한다는 게 불신앙이죠.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떨어져 갈까 조심할 것이다. 불신앙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19절 보면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역시 믿지 아니함 불신앙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장 12절부터 19절은 신앙의 인클루지오 구조가 있고요.
그러면 4장 1절부터 1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장 1절부터 11절의 인클루지오 구조는 1절에 그러므로,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그리고 11절도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이렇게 해서 안식에 들어가는 문제로 1절과 11절을 감쌈으로써 예 히브리서 4장 1절부터 11절이 안식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안식에 들어가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 시대에 상관없이 순례자로 보고요 있습니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그들의 여행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될 안식을 고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1세대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 안식에 들어가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출애굽 2세대들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안식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보았을 때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된 안식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안식을 주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궁극적인 안식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원히 안식할 때는 아직 미래의 일로 남아있다는 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전제합니다. 그런데 그 안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미 주어져 있는 현재적 특권이다 라고 3절은 선언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 이미 그 안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는 아직 들어가야 할 안식이 남아 있다는 점도 9절에서 얘기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현재적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 사이의 긴장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은 이미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완성될 안식을 기대하며 그것을 위해 믿음을 지키고 순종해 나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완성된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안식은 당신 백성을 향한 구속의 목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구속의 목표가 이제 끝까지 순종한 성도들에게 완성된 모습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서 4장 1절부터 11절의 모든 논의의 최종적 결론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의 주된 관심은 안식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하여서 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도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고를 통해서 그의 독자들 중 그 누구도 순례의 길에서 낙오되지 않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주된 관심사라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4장 1절부터 11절은 창조시에 일곱째날 하나님의 안식과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이스라엘이 누린 안식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고요.
그리고 이 안식 개념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안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안식 개념들 사이의 관계 즉 하나님의 창조시에 일곱째 날 안식과 이스라엘의 가나안 안식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는 구원의 안식 이 세 안식 사이의 개념들을 우리가 잘 정리하면 또 한 가지 부차적으로 우리는 구약성경의 안식일 계명이 예수님의 구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해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3~2강
안식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의 내용이 소개가 됩니다.
제가 3절 본문을 먼저 좀 읽어보겠습니다.
4장 3절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논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서 수신자들을 우리 믿는 자들 믿는자라고 규정을 합니다. 수신자들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믿음으로 반응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수신자들은 출애굽 세대와 달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들어간다 라는 동사 현재형 동사입니다.
따라서 수신자들이 현재 그 안식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를 갖습니다.
저자는 바로 앞에서 1절에서 안식의 미래적인 요소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미래로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안식이 그리스도인 수신자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 현재적인 실체로 주어져 있다 라고 3절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보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 안식의 완성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완성된 안식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러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들어가는 안식은 과연 무엇인가를 우리가 여기서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안식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3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좀 달리 번역하면 사실은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뭐냐를 히브리서 저자는 4절에서 확장 설명을 합니다.
4절을 보면요
제 7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저자는 3절 하반절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창세기 2장 2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서 저자는 출애굽 세대에게 약속되었던 안식이 하나님의 창조 당시에 그분의 안식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 뿌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여기서 저자는 3절 중반절에서 인용된 시편 95편 11절의 나의 안식 내 안식이라고 했는데요. 이 나의 안식을 창세기 2장 2절의 하나님께서 쉬셨다 또는 완결하셨다 라는 사실과 일치를 시킵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안식은 안식일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일곱째 날과 안식일은 같은 날이 아닙니다.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의 의미와 범위는 후일에 이스라엘에게 제도로 주어진 안식일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한 일곱째 날과 함께 사용되는 동사 샤바트라는 이 히브리어 동사는 무활동을 의미하는 쉬다라는 의미보다는 끝내다 멈추다 완결하다 이런 의미가 더 강합니다.
세계가 더는 창조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완결되었다.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사역의 목표인 전창조의 완결을 함의한다 라고 볼 수 있겠죠. 한편, 일곱째 날은 다른 여섯째 날과 좀 다른 특이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창세기 1장에서 소개되는 제6일의 여섯째 날의 창조는 끝날 때마다 이런 어구가 반복이 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다. 둘째, 날이다. 쭉 해서 여섯째 날이다. 까지 반복이 됩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이러한 마무리가 있지를 않습니다. 이 말은 무엇일까요?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은 영원한 것이다 끝이 없다.
마무리되는 때가 없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일곱 번째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은 영원하다 라는 그 영속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서 이제 히브리서 저자가 제시하는 안식 개념들의 상호 관계를 우리가 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먼저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 보십시다. 창세기 2장 2절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얘기하는데요.
이 하나님의 안식은 이후에 도입될 모든 안식 개념들 그 안식 개념들의 근원이자 원형으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점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 안에 그분의 모든 피조물들의 안식이 예견되고 있었다 라고 우리가 얘기할수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렸던 안식 그리고 안식일에 그들이 누리는 안식 개념이 어떠한 것인가를 좀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시편 95편 11절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게 될 안식의 장소로 규정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은 출애굽 세대가 가나안 땅에서 주어질 것으로 약속된 안식의 원형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요.
따라서 그들이 누리는 가나안 땅의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의 그림자다 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가나안 땅은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이 내다봤던 궁극적 안식이 아닙니다.
그 궁극적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심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그리고 안식일에 그들이 누렸던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궁극적 안식의 모형의 역할을 한다.
그거를 내다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 그러면 끝으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종말론적 안식 곧 구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 모든 안식 개념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안식의 궁극적 목표가 이 안식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 이스라엘이 누렸던 안식의 실체이기도 하다 가나안 땅의 안식은 하나의 모형이었다면 예수님의 안식은 실체다 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표를 좀 만들어보면요 자 여기 세 개의 안식 개념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개념이 여기에 부차적으로 있습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 위에 거를 보면요 창조 시의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안식 개념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됐던 안식은 뭐냐 하나님의 이 안식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그림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의 안식이 궁극적으로 내다왔던 그 안식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안식이 어떨 것이라는 모형의 역할을 합니다.
내다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뒤로 돌아보는 그림자의 역할 내다보는 모형의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의 안식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안식일 계명도 역시 하나님의 안식의 그림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모형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가나안 땅의 안식과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안식은 서로 그 기능이 겹친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이 안식의 모형에 들어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궁극적 안식에 들어가는 것도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이 안식의 실체를 그 성취된 형태로 이미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실체의 완성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며 내다보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자
6절부터 11절의 내용을 우리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8절을 우리가 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라고 합니다.
출애굽 세대와 그리스도인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동일한 약속과 복음을 들은 자들입니다.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2절에서 아주 분명하게 얘기를 하죠.
하지만 이 두 세대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진정한 안식을 얻었다면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오늘 곧 다른 날을 얘기하고 다른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는 권면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95편에서요 물론 여호수아 21장 4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주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대 라고 말하죠.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므로 안식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보기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제공한 안식은 하나의 모형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형이 내다보는 안식의 실체는 다른 날 예수님에 의해서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헬라어 표기가 동일합니다.
여호수아도 예수스 예수님도 예수스 입니다.
이러한 이름의 일치는 여호수아의 안식과 예수님의 안식 사이의 모형론적 관계를 시사합니다.
여호수아의 안식은 하나의 모형이었고 예수님의 안식이 그 궁극적 목표인 실체다 하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죠.
11절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자 라고 권면합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 수신자들이 들어가야 할 안식을 저 안식이라고 합니다.
수신자들은 이 종말론적 안식을 이미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안식은 아직 미래의 완성을 내다보고 있는 안식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완성된 안식에 들어가도록 지금 힘써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저자가 이러한 권면을 하는 이유는 만일 독자들이 힘쓰지 않으면 완성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위험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데스 바네아의 출애굽 세대는 불순종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는 데 실패하였던 자들입니다.
저자는 그들의 실패가 수신자들에게도 부정적인 본이 된다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실패해서 못 들어갔는데 수신자들은 실패해도 들어간다 이런 원리가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패해서 못 들어갔다면 너희도 실패하면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저자는 수신자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4장 12절부터 13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리함을 얘기하므로 이 시편 95편에 있는 말씀이 우리를 위한 말씀이다.
우리가 그 말씀에서 교훈을 얻어야 된다. 라는 그러한 말씀으로 모든 권면의 논의를 마무리합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가 다루었던 본문의 적용점들을 좀 정리해 보면요
우리는 이미 참된 안식을 누리고 있는 자들인데 우리는 그것을 정말 인식하고 있는가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그걸 어떻게 확인하는가? 우리가 한번 깊이 점검해 봐야 할 문제이고요.
두 번째 우리는 완성될 참된 안식을 갈망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리고 있는데 이 안식은 완성되어야 할 미래적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는 우리가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참된 안식을 갈망하며 순례자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끝으로 완성될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이 순종으로 입증되도록 간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니아에서 가나안 땅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완성된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들과는 달리 불신앙 대신 믿음으로 불순종 대신 순종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오늘 세 번째 강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네 번째 강의는 자비로우신 대제사장 주제에 대해서 다음 주에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강의 들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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