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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강. 조선문명의 미래
1. 대화
오늘은 마지막 강의가 돼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거 같다. 화면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저 뒤편에 앉아 있었다.
이 강의는 전 국민적인 호응 속에 진행돼 왔고, 이렇게 6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그것도 우리 역사가 격동하는 시기에, 강의를 통해서 국민들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늘 저의 종강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하객들도 나와 있다. 제가 좋아하는 ‘락 음악의 황제’라 할 수 있는 국민가수 전인권씨가 나왔다.
@ 전인권:
록의 국민가수, 그룹 들국화의 보컬. 1985년 1집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저항적 언더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오늘까지 격 높은 뮤직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도올 : 강의를 열심히 보았냐? 어떤 소감이 들었나?
전 :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다.
도올 : 최수운 선생이 처형을 당하시면서, 그때 전인권의 이런 가사를 생각하셨을 것 같다.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회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동학”
2. 갑오동학민주항쟁
동학을 생각할 적에, 최수운 선생은 물론 동학을 창도한 대단한 분이지만, 수운의 일생에서 보면, 2년 반만 공적인 활동을 했다. 예수님도 공적인 활동은 2년 반밖에 안 했다.
수운선생은 1864년에 돌아가시고, 1894년에 갑오동학민주항쟁이 일어났다.
북한 학자들이 ‘갑오농민전쟁’이라고 하니깐, 남한 학자들이 모르고 그것을 본받아서 ‘갑오농민전쟁’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동학에 참가한 사람이 농민만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지식인들을 망라한 것이기 때문에 갑오농민전쟁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
북한 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무산 계급 혁명 이전에 혁명의식이 저열한 농민들의 반란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해서, ‘갑오농민전쟁’이라고 쓰는 것이다. 이러한 비하된 용어를 우리나라 학자들이 의식이 있는 체 하면서 그대로 쓰고 있다. 나는 ‘갑오동학민주항쟁’이라고 부른다.
갑오농민전쟁 → 갑오동학민주항쟁
3. 해월 최시형
갑오동학민주항쟁이 1894년에 일어나기까지, 그 30여년의 공백을 메운 사람이 누구냐? 수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물론 도통을 해월에게 전수했다.
수운의 처형(1864)에서 갑오동학민주항쟁(1894)까지의 30년 역사를 한 몸으로 이끌면서 포접 활동을 한 인물이 바로 해월 최시형(1827~98)이다.
수운 선생 돌아가시고, 30년 동안 핍박 받으면서 아무도 없는 이 조선 반도에서 30년 후에 그 방대한 조직 운동으로서, 민주항쟁운동이 일어나게 한 분이 바로 해월 최시형이다.
해월 최시형이라는 분은 수운 선생을 이해하는 것과 똑같이, 같은 무게로 취급해야할 또 다른 인물이다.
우리는 영국과의 기나긴 싸움을 해낸 사람으로 마하트마 간디를 기억한다. 옷을 벗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물레를 돌리는 성자의 모습으로 마하트마 간디를 기억하는데, 나는 해월이 마하트마 간디보다 훨씬 더 성스럽고 민중적이고 소박하고 자기 직무에 투철한 그런 위대한 성자였다고 생각한다.
해월이라는 분은 항상 관원들을 피해 다닌 최장기 도바리꾼이었다. 30년동안 도바리를 치면서 다닌 사람인데, 그렇게 맨날 쫓겨 다니면서도 몸에 베어 있는 게 새끼 꼬는 것이었다. 설법을 하시면서도 새끼를 꼬았다고 한다.
이 양반은 어려서부터 무척 고생을 하며 자란 사람이었다. 6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최시형은 1827년 경주시내 황오리(皇吾里)에서 태어났다. 경주 최씨, 이름은 경상(慶翔), 자는 경오(敬悟), 호는 해월(海月)
해월 선생은 경주 최 씨이며, 경주 황오리 출생이다. 지금도 황오리가 경주 시내에 있다. 어려서 천애의 고아가 되어 아주 비참하게 크신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피압박자의 설움을 안다.
그런데 그렇게 압박을 받고 큰 사람들은 커서 콤플렉스가 있다. 세상에 대한 원한이 있는데, 해월선생은 그런 압박을 받고 큰 분인데도, 일체 그런 것이 없었다. 세상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겸손한 그런 분이었다. 해월이라는 분은 사진도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모습까지 알 수 있는데, 나는 정말 해월(海月)이라는 분을 존경한다.
1896년 6월 2일 동학괴수로서 현 단성사 뒤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사진. 72세.
이 분은 어디 가서 세포 조직을 하거나, 포접 활동을 하면서도, 설법을 할 때, 앉아서 새끼를 계속 꼬았다. 간디가 물레질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궁하게 컸기 때문에 시간이 있으면 항상 지푸라기로 멍석을 만들었다. 멍석 만드는데 도사였다고 한다. 그렇게 멍석을 아름답게 잘 만드셨다고 한다. 항상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꼬을 게 없으면, 다시 풀었다고 한다. 풀고, 다시 꼬고, 한 시도 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깐 주변에서 ‘선생님, 새끼를 그만 꼬시고, 쉬시지요.’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하늘님은 쉬시는 적이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하늘님은 쉬시는 적이 없으시다 -해월 天主不休動 설법
이 양반은 빈집에 들어가서 몰래 숨어 살 때도, 그 집 담에다가 과수 같은 것을 심어서 과일이 열리게 하고, 지푸라기를 얻어다가 멍석을 만들어 놓고, 정갈하게 청소를 하고 지내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관원이 덮친다고 하면, 모두 남겨두고 도망가셨다고 한다. 그 다음에 오는 사람이 그걸 잘 쓰라는 것이었다. 과일도 따먹을 수 있고, 멍석 도 깔아 쓸 수 있게 해주고 떠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는 도인들이 관하에 잡혀가면, 고문을 당할테니, 자신도 같이 고통을 당하겠다면서 엄동설한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알몸으로 주무셨다고 한다. 이 분의 인생 역정을 보면 아주 놀랍다. 해월의 살아 있는 성자적인 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눈물겨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 해월과 수운
이 양반이 황오리에서 17살 때 장가를 든다. 마북동에 살다가 검등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
검등골 = 검곡(劍谷)
영일군 신광면 마북동 웟골짜기
가보니깐 화전민들이 사는 완전 산속이었다. 화전 몇 마지기해서 살았던 거 같다.
61년 6월에 수운 선생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니깐, 바로 찾아갔다. 찾아가서 뵙자마자 ‘아! 이 분이 내 선생님이다.’라고 하고 자기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나서는 일편단심으로 수운을 모셨다. 지식인들이라는 게 나불거리고, 변절 잘하고, 자기 머리 잘 굴리고 그러는데, 이 양반은 우직한 분이었다.
영일군 기계면 오덕동 한지 제지소에서 일하다.
이 양반은 제지공장에서 인부노릇을 하신 분이다. 어려서부터 제지공장에서 일하면서 종이, 인쇄 관계 일을 하신 분이라서, 나중에 동경대전(東經大全)을 펴냈던 것이다.
수운 선생한테 갔는데, 모인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다들 용담골에 와서 수 십 명이 앉아서, 다들 천어(天語)를 듣는다는 거였다.
@ 천어(天語)
하늘님 소리
그래서 자신도 좀 하늘님 소리를 좀 들어볼 수 없냐고 물으니깐, 수운 선생은 용맹정진하고 수심정기(修心定氣)를 하면 하늘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에 해월은 검등골에서 용담까지 80여리의 산길을 주기적으로 오고 가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5. 해월의 득도
해월 선생은 하늘님 소리가 듣고 싶어서, 검등골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멍석을 문에 치고 껌껌하게 해 놓고, 토굴에 앉아서 도 닦는 거처럼 하고,주문을 외우면서 겨울내내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 때 수운 선생은 용담에서 몸을 피해서, 남원에 가 계셨다.
교행산성 은적암(남원)
최수운이 1861년 12월부터 7개월간 은거한 곳
해월은 7개월 동안 수운 선생을 못 뵙고 있으면서 내내 앉아서 수심정기를 했지만, 하늘님 소리는커녕 아무 것도 못 들었다고 한다. 이것도 동학을 이끌어간 사람들의 정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월은 하늘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 너무도 갑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있다가 갑갑해서 바깥으로 나와서, 계곡의 얼음을 깨고 풍덩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 들려온 소리는, ‘찬 물에 들어가는 건, 몸에 해롭나리라!’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한다.
時値隆冬夜深(시치융동야심), 人寂出往(인적출왕), 門前沼上(문전소상), 破氷沐浴(파빙목욕), 每夜數次(매야수차), 幾至二朔(기지이삭)
[때는 엄동 깊은 밤, 인적이 드물 때 밖에 나가 문전의 웅덩이 위의 얼음을 깨고 두 달 동안 매일 밤 목욕을 했다.]
聞空中諄諄之語(문공중순순지어), 曰陽身所害(왈양신소해), 乃寒泉之急坐(내한천지급좌), 心甚怪訝(심심괴아):
[(얼음을 깨고 찬물에 들어갔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몸으로 차가운 샘에 급하게 들어앉으면 몸에 해로우니라”]
그렇게 선생님 말씀을 따라서 수신정기를 하면서 7개월을 지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겨우 들은 게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는 소리뿐이었다. 그건 하늘님 소리라고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해월은 수운 선생을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괜히 박대여(朴大汝)네 집을 가고 싶어졌다고 한다.
최수운은 전라도 남원에서 7개월을 피신한 후, 1862년 7월 경주로 돌아와 용담으로 못가고, 박대여 집에 몰래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경주까지 몇 십리 길을 걸어서 박대여 집에 갔는데, 거기 수운이 딱 계셨다. 정말 그것은 기적적이고 눈물겨운 상봉이었다. 이건 한 치의 거짓말이 없는 사실이다. 뭔가 박대여 집에 있을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다. 누구한테 편지가 올 거 같으면 딱 편지가 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을 7개월 동안 못 뵈었는데, 정말로 선생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하면서 얼싸안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수운 선생이 “하늘님 소리를 들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해월은 하늘님 소리는 들은 게 없고, 어느 날인가 하도 답답해서 찬물에 들어갔는데, 하늘에서 우렁차게 ‘찬 물에 들어가는 건 몸에 나쁘다.’라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것 한번 밖에 솔직히 말해서 없다고 한다.
그러자 수운 선생은 눈물을 주루룩 흘리면서 감격해서 ‘아! 맞다, 맞다. 그거 언제였냐?’고 물으셨고, ‘그게 작년 동지 섯달 언제언제 였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수운 선생은 자신이 도인들한테 뒷짐을 지지 말고, 길거리에서 가면서 먹지 말고, 개고기는 삼가고, 바람 피지 말고, 들어 누워서 주문 외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를 쭉 썼다고 한다.
路食手後 賤夫之事 道家不食 一四足之惡肉 陽身所害 又寒泉之急坐 有夫女之防塞
國大典之所禁 臥高聲之誦呪 我誠道之太慢
[길바닥에서 먹고, 뒷짐 지는 것은 천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도를 닦는 집에서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네 발 달린 짐승의 악육이다. 건강한 몸에 해로운 것은 거듭해서 찬물이 솟는 샘에 급히 앉는 것이다. 유부녀의 방색은 나랏법에서 금하는 바이다.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는 것은 나의 정성된 도에 태만한 것이다.]
@ 陽身所害(양신소해), 又寒泉之急坐(우한천지급좌) -수덕문-
따뜻한 몸으로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해롭다고 썼다.
그 중에는 요즘 도인들이 찬물에 들어가서 도 닦는다고 해서 ‘陽身所害, 又寒泉之急坐’라는 말도 썼다고 한다. 이런 것을 쓰고 나서 밖에 나가서 한 번 읊었다고 하면서, 그 소리를 네가 들은 거라고 한다.
그 순간 해월은 득도를 한다. 해월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선생님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라고 하면서 ‘저는 하늘님의 소리가 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줄 알았는데, 바로 사람의 소리가 하늘님의 소리였군요!” 라고 한다.
"Man's voice is God's Voice"
이 깨달음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의 핵심이고, 하늘님 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수운과의 극적인 해후장면이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핵심을 전해주는 순간이었다. 인내천사상은 수운의 사상이라기보다는 해월의 실천적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간절하면, 이 우주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수운은 남원에 있고, 해월은 검등골에 있었지만, 수운이 하는 말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우주 생명이 하나(Global Oneness)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해월의 천어(天語)에 관한 깨달음의 성스러운 측면은 우주생명의 하나됨(Oneness of Global Life)이다.
오늘 이 시간이 끝나면 강의는 끝난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항상 내 소리가 들릴 것이다.
우주생명이 하나라는 깨달음, 그리고 사람의 소리가 곧 하느님의 소리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해월이라는 분은 평생 어린이의 소리든 아녀자의 소리든, 그들의 사심 없이 우러나오는 소리는 하늘님의 소리라 했다.
God's Voice - Oneness of Global Life
- Dignity of Man
그래서 동학에서는 어린이를 존경하고, 어린이를 절대 못 때리게 했다.
“아희를 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늘님을 때리는 것입니다. 하늘님은 맞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해월 물타아(勿打兒) 설법>
그래서 해월을 따라 다닌 손병희 선생의 사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운동을 하게 된다. 동학은 전도를 하지 않았다. 어린이날이 거저 있는 것이 아니다. 해월 사상을 소파 방정환이 받아서 오늘의 어린이날도 제정되었고, 오늘날 어린이가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6. 우리 민족의 미래
오늘은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몇 말씀 드리겠다. 앞으로 이런 기회로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어려울 것 같다. 저의 말을 잘 새겨듣고, 우리 민족의 운명에 공동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최근에 불행하게도 김선일 군이 이라크에서 피살된 소식이 있었다. 국가정책으로 인해서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개인이, 단지 국가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희생을 당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다.
우리는 이제 국가정책이 우리 삶의 직접적인 안위와 관련이 있는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문제가 세계의 국제역학관계에 걸려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적에도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 하면, 오늘날 이런 문제가 파생되게 된 것은 결국 미국이 무리하게 패권주의를 조장해 가면서, 이 세계를 무리하게 지배하려는 현재의 권력구조에서 파생된 문제이다.
지금 우리가 미국이라는 문명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류가 5만년 전 개벽이래, 미국이라는 나라처럼 지구 전체를 지배한 문명은 없었다. 과거의 로마제국도 대영제국도 지구상의 일부만을 관장했다. 미국은 오늘까지 끊임없이 패권주의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6%를 차지하지만, 미국의 인구가 이 지구 자원의 40%를 쓰고 있다. 이렇게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구조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인구의 21%를 차지한다. 4.6%가 지구 자원의 40%를 쓰고 있는데, 미국 사람이 세계 자원을 쓰는 방식으로 중국의 21%가 자원을 쓴다면 지구가 하나 더 있어도 모자란다. 그러니깐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온 세계는 지금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을 못 따라가서 애쓰고 있는 꼴이다.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한가? 한 번 심각하게 고민 할 때가 왔다.
1960년대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75%였다. 현재는 9%이다. 중국의 현재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75%다. 앞으로 이 75%가 도시로 이동할 것이다. 지금 북경 텐친(天津)으로 해서 쾅뚱(廣東)까지, 중국 황해연안에 4억5천의 인구가 몰려 있다. 그런데 30년 안에 9억으로 변한다. 그러면 이 30년 동안에 분당 같은 신도시가 1년에 100개 생겨난다. 1년에 아파트를 1,000만동 지어야 한다.
앞으로 세계가 변해가는 모습은 황당하다. 세계가 모두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미국이 4.6%의 인구를 가지고 40%의 자원을 쓰는데, 10%는 쉽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만 줄이면 이라크를 침공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40%에서 50%로 늘리고 싶어서 이라크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이러한 비극적인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는 지금 희생을 당하고 있고, 우리는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안 갈 수가 없다.
내가 왜 여기서 애절하게 유교를 말하고 모든 것을 말하느냐? 지금 중국 문명의 미래가,
지금 세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눈을 밝히고 보아야 한다. 내가 오늘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 우리 민족의 미래에 관한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국민들이 깨달아야 한다.
유럽문명에서 미국문명이 새로 생기는데 200년밖에 안 걸렸다. 유럽에서 보면, 미국은 상놈의 나라이다. 아주 새 문명이다. 미국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불과 200년 만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인류사상 있어 본적이 없는 강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탄생은 거저 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종교도 카톨릭 중심에서 장로교회로 바꾸었다. 도시의 문명도, 런던이나 파리의 모습에서 New York, Washington, Boston, LA, 등의 완전히 새로운 문명의 도시를 만들었다. 민주제도도 새롭게 만들었다. 이러면서 미국은 유럽의 정신문명을 능가하는 새로운 정신문명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날 미국의 모습을 흉내 내고, 따라가기만 하면,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자원을 낭비해도 되는 시절에 용감하게 오늘의 미국을 만든 것이다. Brave New World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미국의 모습을 이제 인류가 따라가면 다 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생각할 적에, 이라크 문제를 생각하든, 우리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든, 미국말을 듣는 것이 미국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나는 절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에 가면 얼마든지 대접받는 훌륭한 지식인이다. 미국은 절대로 부시(Bush) 행정부가 가는 방향으로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엄청나게 복잡한 나라이다.
이러한 강대국은 그 나름대로 허점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교섭을 할 적에, 그들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면서 잘 교섭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절대 미국을 떠날 수도 없고, 미국의 우방이라고 하는 입장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을 항상 지도해주고, 미국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러면서 현명하게 인류사회를 같이 이끌어가자고 하는 차원에서 버텨야한다. 미국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인류평화를 위하는 길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길이 아니다. 미국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자멸할 수도 있다.
미국은 사상적, 문화적, 정책적 복합체이다. 현 부시정권의 정책노선을 따라가는 것만을 친미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7. 남북 문제
아주 긴박한 문제 하나를 이야기 하겠다. 이것을 말하면 사실 안 된다. 군사 비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대만 전문가이다. 대만을 잘 안다. 대만은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 했다. 미국으로서는 대만을 포기할 수 없다. 지난 5월 20일 천슈이벤이 취임식을 했다. 중국 본토에서 이 사람을 거부하고 있다.
오는 12월에 민진당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2006년에 대만독립선언을 하려고 한다. 미국으로부터 182억불의 무기를 사려고 한다. 미국은 팔아야 한다. 미국은 군수물자 팔아서 강국이 된 나라이므로 당연히 무기를 팔 것이다. 미국은 찌질하게 옷감장사해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대만을 포기 안 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은 작은 나라 같지만, 대만은 워낙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이 대만하고 싸운다 해도 대만을 함부로 제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미국이 배후에 있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 전에 대만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대만은 2006년까지 독립을 하고 싶어 한다. 중국은 두 개의 전선을 원하지 않는다. 대만에 군사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한반도에 평화를 원한다. 그래서 김정일과 남북문제를 협상할 적에 중국이 고분고분하게 북한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두 개의 전선이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는데, 한반도에서 긴장관계가 풀리면 불리하다. 미국은 어떻게 하든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동아시아는 새로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한다.
이런 것은 군사기밀의 ABC이다. 과거엔 이런 것을 국민들이 몰랐다. 과거 같으면 나는 정보국에 끌려가서 죽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국민들이 깨여나서 이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올해 안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조선반도는 무력 대결의 장이 아니라, 평화공존의 장이며, 경제협력의 장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이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또다시 전쟁으로 몰아가는 그러한 사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굉장히 긴박한 문제이다.
여러분은 김정일을 나쁜 놈이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대국적으로 우리가 살려면, ‘김정일! 당신도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달래면서, 당신도 정신 차려야 하고, 당신이 서울에 오면 따뜻하게 대해주겠다고 해야 한다. 얼른 평화협정을 해서, 미국이 원하는 대결 구도에서 우리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
너무도 생각할 일이 많다. 너무도 우리 주변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여러분은 참혹한 6.25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참혹한 6.25가 일어나기 3년 전부터 국제정세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어김없이 시계처럼 찰칵, 찰칵 돌아가고 있었다. 전쟁은 필연적 결과이다.
그렇게 명백하게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우리 국민 단 한 사람도 그런 명백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 땅의 무력적 대결을 획책하는 간악한 무리들에 대해서 눈을 부릅뜨고 경계하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해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좌우익의 이념, 종교 간의 분쟁이나 이데올로기, 보수 진보의 문제와 같은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우리 역사는 너무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공동 대처를 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만 해도 그렇다.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다. 분명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미국이라는 강대한 입김이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온갖 문제가 있다.
8. 한국 문명
우리 한국 사람은 20세기를 통해서 너무 기독교라는 종교 문명 일색으로 되어 왔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이라는 저 거대 문명은 종교 문명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교문명은 인간의 상식을 기초로 한 문명이며, 거기는 기독교도 지배 못하고, 이슬람교도 지배 못하고 있다. 지구상에 종교를 갖지 않은 저렇게 거대한 문명은 중국문명 뿐이다. 중국 문명이 보다 건강한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중국문명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공자, 맹자로부터 하나님을 제외하고 인간의 도덕성을 가지고 사회질서를 유지하자는 건전한 상식주의를 가지고 굉장히 일찍이 황하문명은 개화했다. 이것이 내려오다가 여기에 최초로 도전을 한 것이 바로 인도 문명인 불교였다. 결국 외래문명인 불교문명을 받으면서, 찬란한 수당(隨唐)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그리고 수당문명 속에 우리나라의 신라 문명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수당(隨唐)의 불교문명은 주체적 문명이 아니고 외래문명이라는 풍조가 나오면서 불교문명을 다시 거부하고 자기들의 유교적 문명을 회복한 것이 바로 주자학이었다.
선진 유학 → 송명 유학
공자, 맹자 →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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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문명의 도전
그리고 그 주자학을 우리가 조선조를 통해 500년 동안 공부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주자학이 위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자학은 700년을 지속하다가 구라파에서 온 기독교와 과학의 도전을 받게 되고, 맥을 잃어 버렸다.
이제는 중국 문명이 이러한 도전을 흡수해서, 자기들의 사회주의적인 문명을 더 업그레이드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유교문명을 주자가 새롭게 만들었듯이 새로운 유교문명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 유학 → 주자학 → 새로운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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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서양문명
지금까지 중국대륙과 한국 사이의 황해는 죽은 바다였다. 앞으로 황해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동북아 경제공동체는 상당히 어렵다. 미국이 자꾸만 자기를 고립화시켜가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은 아시아인끼리 단합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문명은 유교복덕방을 해야 한다.
한국문명은 유교복덕방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산파역할을 해야 한다.
반미, 친미 이런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다. 반미, 친미는 없다. 얼마나 옳은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외교전략, 국방전략 모든 것을 정확하게 수를 놓아가느냐 하는 그런 정석(定石)의 문제만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결국 우리로 인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올 것이다. 미국도거기에 참여하는 것만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이룩할 수 있고, 자기들의 미래에 본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견해가 나와야 한다.
지금 부시는 이렇게 하고 있지만, 클린턴이 바로 사퇴하기 직전까지, 그들의 결론은 이북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정책도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클린턴은 북한에 가서, 김정일이랑 협상을 해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 민주당은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걸 이렇게 형편없이 후퇴시켜놓고, 그 죄업을 우리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형편없는 논리에 우리 언론이 휘말리고, 우리 국민이 들뜨고, 보수니 진보니,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면서 바보 같은 짓들을 하면서 나라를 망치는가?
저는 제 인생을 던져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후학들에게, 이 시대, 도올 같은 미치광이 하나가 있어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광막한 인류의 정신세계를 헤매면서 인류의 평화를 외치면서 고고히 살다 갔노라고 전하고 싶다.
너무도 감사하다.
9. 마침말
한민족은 세계역사상 유래를 보기 힘들 정도로, 일찍이 단일한 언어와 풍습과 혈통의식과 정체(政體)를 확립했으며, 일정한 영토 내에서 자기들의 삶의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가꾸어 왔습니다.
본 강의는 이 땅의 최후 왕조였던 조선(朝鮮)의 사상 흐름을 삼봉 정도전으로부터 수운 최제우에 이르는 기나긴 사조를 통하여 훑어본 매우 학구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삼봉은 맹자의 민본사상과 <주례>의 이상적 제도를 창조적으로 결합하여 왕권을 제약하는 신권(臣權) 체제를 확립하였고, 이 신권의신은 결국 사림(士林)으로 발전하여 주리(主理)의 도덕성을 인간의 심성 속에 확보하는 성리학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조선의 역사는 왕권과 신권의 균형과 긴장 속에서 민권이 확대되어간 역사입니다. 그 확대의 정점에 동학이 있습니다. 이전의 민란은 지배세력 판도의 변화에 자극만을 던지는데 그친 좌절의 이벤트였지만 동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파악하였고 다시개벽의 사관을 통해 새로이 유입된 기독교 그리고 전통적 유교, 불교를 모두 초극하는 새로운 신관과 인간관을 확립하였습니다.
신관의 변화 없이는 새로운 민주적 인간이 탄생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적 인간이란 사단과 칠정이 조화된 인간이며 신을 포함한 모든 수직적 권위에 불복하면서도 자율적 규제와 사회적 협동을 사랑하는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학의 과제는 서양의 어떤 역사보다도 이 조선의 역사가 인류사의 전위로서 구현해왔습니다. 조선의 역사는 인류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남북통일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많은 무리들이 겉으로는 통일을 뇌까리면서도 속으로는 분열과 이간을 획책하며 통일의 자주적 노력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질서는 개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역사의 모델을 우리 자신 속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이 땅의 지식인은 새롭게 깨어나야 합니다. 학문적 개념이 살아있는 현실의 바탕이 없으면 악취 나는 송장보다 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통일은 정치적 통일일 뿐만 아니라 사상과 문화와 습관과 언어의 통일입니다. 조선의 통일은 곧 20세기 모든 인류의 분단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하는 세계사의 쾌거입니다. 우리 조선민족은 통일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의 새로운 비전을 구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 도올은 이 민족의 영원한 방랑자. 광대한 인간의 사유영역을 헤매는 고독한 사색인.
한민족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충시키는 고매한 영혼으로서 항상 여러분의 곁에 있기를 희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