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부르며 부르트며 바람이 거리를 휘감는다 어둔 밤 얼룩처럼 드문드문 가로등이 번지고 막차를 가다리는 내 등 뒤에서 멀어져라 뒤돌아보지 마라 바람은 쉰 목소리로 다그치듯 나를 자꾸 떠민다 그는 저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 자울대다 눈을 거푸 치켜뜨는 길모퉁이 가게 불빛 사이로 밤은 더욱 자우룩해지고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게 떨리겠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하던 그 눈빛이 내 가슴에 단단히 말둑을 박고는 녹작지근한 해질녘이면 어지러이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
―〈라훌라-길모퉁이에서〉 전반부
제7행에 이르러 ‘그’가 등장합니다.
그는 저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게 떨릴 것입니다.
그의 눈빛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한 그 눈빛”이었습니다.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처럼 빛의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처럼 빛의 눈물 자국 다 떠메고 차마 못다 한 말 되새김질하듯 그리움도 순하게 견뎌야 한다는 것 오랜 후에야 그 눈의 얼룩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한여름 소낙비가 얼룩져 시린 겨울 강 핥는 여울이 되고 사랑은 얼룩져 돌이킬 수 없는 그러나 돌이킬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은 아니지 이제서야 나는 나를 다독여준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 아버지가 끝내 저기 서 있다 세상없어도.
―〈라훌라―길모퉁이에서〉 후반부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 같은 얼룩은 그의 눈에서 본 얼룩이기도 했는데,
오랜 후에야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돌이킬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기쁨과 슬픔은 엇갈리면서 들이닥치지 않던가요.
그런데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인 아버지가 끝내(!) 거기 서 있습니다.
아, ‘그’는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로군요. 눈빛도 아버지의 눈빛이었고,
얼룩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얼룩이었습니다.
28행의 긴 시의 비밀이 25행째에 와서 밝혀지는 추리소설적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장애를 저는 육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로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아닙니까.
시가 지나치게 자의적인 내용이라 보편성을 띠기 어렵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의 운용이 남다른 이 시인의 앞날을 오래 지켜보고 싶습니다.
김형!
2005년 신춘문예 당선자들 가운데 자기 목소리를 지니고서 꾸준히 시단에서 활동할 시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예년의 당선자들 생각을 하면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선을 꿈꾸며 습작하던 시절보다 더욱 살벌한 세계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이분들 모두 초발심을 잃지 말고 더욱더 치열하게 자신의 시밭을 걸어나간다면
살아남기 혹은 문명(文名) 얻기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와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2005년을 막강한 신인 몇을 배출한 해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형이나 저나
긴장감을 한순간이라도 잃어버리면 패기 있는 후배 시인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한 해 지은 농사로 평생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도 부지런한 농부처럼 날마다 시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시를 위해 순교할 마음으로 펜을 꺼내드는 것입니다.
< ‘이승하 교수의 시쓰기 수업, 시(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승하, 도서출판 kim, 2017)’에서 옮겨 적음. (2022. 4.30.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