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쿤과 마야족 (여행기)
올라!(Good Morning!)
씬뉴어리 씬뉴어라! (신사 숙녀들 웰캄!)
그라씨에스! (Thank you!)
캔쿤(깐꾼, Cancun) 공항에 내리니 작으마한 키에 구리 빛 얼굴의 안내하는 남자 멕시칸들이 계속 웃으면서 맞이한다. 14년 전 일이지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10월 중순 인데도 후덕 지근한 날씨에 30도가 넘으니, 한국의 삼복더위를 방불케 한다.
쌀쌀한 날씨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간간히 내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청바지에 빨간 훌리스 잠바를 입고, 비행기로 4시간 반 남쪽으로 날아와 멕시코의 남동부 유카탄 반도에 위치해 있는 캔쿤(Cancun)에 도착한 것이다. 미국 뉴저지에서 먼저 온 임권사와 친구들이 활짝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종 리조트 시설은 물론 큰 뷔페식당이 열다섯 곳이나 되며, 룸이 2500여개나 된다는 호텔 Moon palace 에 체크인을 한다.
플라스틱인지 고무벨트인지 납작한 검은색 팔찌를 채워준다. 떠날 때까지 차고 있으라는 VIP 표시이다.
캔쿤(깐꾼)은 Can은 뱀(깃털 뱀)을 말하고 Cun은(집 또는 소굴)을 말하는데, 뱀의 소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뱀이 얼마나 많았으면 뱀 소굴이라고 했을까? 호텔 근처는 완벽한 리조트 시설과 호화찬란한 시설들로 가득차서 뱀이 있어도 숨을 곳이 없겠는데.......
짐을 푼 즉시 기분을 내려고 호텔 카페에 내려가 “피나콜라다” 한 잔을 주문한다. 코코넛 향기가 코를 찌르고 우유 빛 같이 희다,
달면서도 알콜이 약간 들어있어 혀를 톡 쏜다. 왜 여자들이 즐기는 칵테일인지 이해가 간다. 그래도 한잔 마시고 나니 여행의 흥분 때문인지 피나콜라다 때문인지 부끄럽게도 얼굴이 붉어진다.
뷔페식당 과일 파트에는 많은 종류의 과일이 나열되어 있다. 3대 열대과일이라는 파파야와 망고, 아보카도는 잘 익은 것으로 금방 따온 것인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이들 열대 과일이 콜레스테톨 수치를 쑥쑥 내려 준다고 해서, 나는 콜레스테톨 치가 좀 높다는 것을 핑계 삼아, 큰 접시에 가득히 몇 번씩 갖다가 싫컷 즐기면서 먹었다.
거대한 수영장이나 골프장, 놀이를 할 수 있는 각종 리조트를 갖춘 호텔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과 야자수들, 북미에서는 그림으로나 볼 수 있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니 그야말로 “와아아아 환상적이다, 끝내준다” 라는 탄성만 나올 뿐 이었다.
약 22km에 길게 펼쳐진 비치에 에머랄드빛 바다와 뜨겁게 너울대는 야자수의 정취는 남국의 극치를 이룬다.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몰린다는 트로피칼의 바다색을 찍기 위해서란다. 짙은 남색, 옅은 남색, 하늘색이 수시로 변하는 신비한 바다와, 뒤돌아보면 육지는 산도 없이 이어지는 끝없이 넓은 지평선만 보일 뿐이다,
셋째 날 우리들은 모터보트를 탔다. 처음엔 무섭고 심장이 벌렁거렸으나 몇 초 지나니 신나기 시작, 서로 앞지르기를 하게 된다. 보트가 물위를 달리는 듯 붕 뜨기도 하며 스릴을 만끽하니 수십 년 묵은 스트레스까지 확 날아가 버리는 듯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만일에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지면 수영해서 나오면 되지, 뱀이나 악어만 없다면 ....... 주변에 경비선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행이 모자는 끈으로 목에 묶어서 날아가지는 않았다. 끈으로 묶지 않은 모자들은 다 날아갔다. 스릴과 서스펜스! 그토록 멋있게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호텔 종업원 멕시칸들은 영어는 서투르지만 훈련은 아주 잘 돼 있었다. 겸손하게 웃으면서 여행객들을 대하는 태도는 임금님께도 그 이상 잘 할 수 없을 정도라 할까. 나의 VIP 검은 팔찌를 보고 특별 대우하는 것이었을까.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물론 캐나다로 이민 와서 세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먹고 살아야 하는 일 때문에 여행, 혹은 휴가란 말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로 아득히 멀게 만 느껴졌고, 여행할 돈도,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예상 못한 여행으로 캔쿤 주변의 경치는 물론이려니와, 어딜 가나 VIP 대접! 정말 천국이 이보다 더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치첸잇챠! (Chichien Ltza)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다는 치첸잇챠는 캔쿤에 가는 사람은 꼭 들려본다는 명소다.
고 멕시코의 문화재로서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었으며,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 같은 무덤이라고 한다. 그 앞에서 박수를 쳐 보면 새가 말하는 것처럼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이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가이드를 따라서 여기 저기 무리 져 박수를 쳐보는 것이 이곳 관광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특이한 행사이다.
작은 치첸잇챠들이 주위에 몇 개가 더 있고, 얼마나 견고하고 크게 만들었는지 백 개나 되는 뚜껑 없는 석주들이 사열 받는 장병들처럼, 만고의 1600년이 라는 세월의 풍화작용에도 장엄하게 서 있었다.
또한 문명의 발상지라 하는 유적지를 가볼 때면 늘 느끼는 심정이지만, 몇 천 년 전이나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지금이나, 사람은 누구나 사후세계가 그렇게도 궁금한가 보다. 그토록 거대한 무덤들을 짓고 그 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넣어놓고 저승을 준비 했단다.
이미 4세기 때 찬란했던 그 마야문명의 발상지 치첸잇챠! 그러나 그 마야문명의 후예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치첸잇챠를 둘러싼 많은 가난한 행상들, 기념품들을 좌판이나 보자기에 진열해 놓고 파는 행상들이 마야족의 후예들이다. 어느 남자는 30세라는데, 가난과 뜨거운 햇볕 속에 살아서 그런지 우리네 70세 보다도 더 늙어 보였다. 미국 돈 좀 한 뭉치씩 푹푹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리조트를 벗어나 한 시간 이상을 버스로 달리다 보면, 중간에 기념품들을 파는 곳에 들러 쉬어간다. 뜨거운 태양과 열대의 바람 속에서도, 마야족의 후예인 멕시칸들은 판쵸를 입고,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조잡한 것을 악기라고 두드리며, 사랑을 노래하는 그 목소리에 라틴의 낭만은 구슬프게 흐른다.
또한 도로를 끼고 시골에서 사는 멕시칸들의 사는 모습을 버스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게 되는데, 우리나라 6.25전쟁 전후의 모습보다도 더 낙후한 모습 같다, 허름한 움막이나 원두막, 헛간 같은데서 짐승처럼 생활함을 가슴 아프게 보았다.
캔쿤은 적도 근방이니 겨울이 없다. 그러니 월동준비가 필요 없을 터이고, 일 년 내내 열매는 익어가고 초목은 늘 푸르다. 역시 기후는 뜨겁고 그들은 악착같이 일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에는 토속어로 마야어가 있지만, 주로 스페인어를 쓰고, 화폐단위로는 페소를 쓴다. 자그마한 키에 구리 빛 피부, 곱슬 거리는 머리에 갈색 눈을 가졌는데 백인은 아니다. 열정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이 그들의 특징이라 한다. 어디서나 노랠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 한다. 삶을 엔조이 한다고나 할까.
라틴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섹시한 그 노래, 베싸메무쵸가 귀에 익어 가고, 지린내향기를 가진 과일 파파야가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것을 즐길 무렵, 스케줄에 없던 7박8일의 즐거운 vacation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
아쉬운 가방들을 꾸려가며 중얼중얼 거린다.
“나는 이곳에 언제 다시 오게 되려나?”
Cancun, Gracias por todo Chau! (캔쿤, 모든 것 감사합니다. 안녕!)
( 20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