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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준비하라
2014년 12월 14일 / 대예배 / 다니엘 4:24-33
▶ 여호수아 1장 11절을 보면 430년의 이집트 생활을 마치고 요르단 강을 도하하기 직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내린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수 1:10 / 여호수아가 백성의 우두머리들에게 이스라엘 전 진영을 돌아다니면서 다음과 같이 일러주라고 명령하였다. ‘전쟁용 식량을 준비하여라. 사흘 안으로 요단강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실 그 땅으로 들어 갈 것이다. 그 땅을 점령하려면 전쟁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 준비하여라.’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입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최고 지도자 여호수아의 명을 따라 진중에 다니며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도하(渡河)를 준비하라. 양식을 예비하라.”
이 명령에 혹자는 의아해 합니다. “어떻게 요르단 강을 건넌다는 말인가? 뗏목, 배, 한길 넘는 수심의 요르단 강을 어떻게 이 많은 수가 건넌단 말인가? 양식을 준비하라니? 늘 내리는 만나가 있는데, 양식은 언제나 하나님의 책임 아니셨던가? 난 그냥 아침에 일어나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양식을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되었는데... ”
여호수아 1:11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쩨이다를 한글 성경은 ‘양식을 준비하라’로 번역하였습니다. NIV 성경은 ‘Get your supplies ready - 너의 식량을 스스로 갖추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혹은 스스로 갖추라’는 의미를 히브리어 원문에 비추어 조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쩨이다’는 사냥을 해서 얻는 양식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즉 들로 나가 메추라기, 비둘기, 산 짐승을 잡아 양식을 준비하라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약속에 땅에서는 광야와는 달리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의 시절이 끝나고 스스로 농사지어 얻은 산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 땅 소산물을 먹기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하겠기에 스스로 사냥하여 양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우리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왜 오늘은 만나가 내리지 않을까요? 스스로 사냥해서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우리는 게으를 수 없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영성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공예배 참석은 물론이거니와 기도의 무릎도 가져야만 합니다.
▶ 양식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6:11 /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오늘 우리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시옵고>
주기도문에 유일하게 사람을 위한 기도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4:32-34절 말씀을 보면,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영생 즉 죄 사함을 받는 것이며,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에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증거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 6:27, 32-33, 40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32-3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떡을 내려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이시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너희에게 내려 주신다. 33)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준다.” 40)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마지막 날에 아들인 내가 그들을 살리는 일, 이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4:4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친다.”
내일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사냥한 결과물이 많으신가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만나로 제공해 주십시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먹고 난 후에는 반드시 다음을 위해 이웃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반드시 이웃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일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윤리적입니다.
■ 다음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한 캐나다를 보십시오. Canada의 Toronto에 있는 한 개신교회에서 이색적인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Gay 한 쌍과 Lesbian 한 쌍 - 참고로 동성애자를 일반적으로 통칭하던 호모(homo)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자 동성애자들이 게이(남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이라는 말을 사용 - 이 나란히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것도 성직자의 주례로 말입니다. 물론 캐나다 주 정부에서는 당시 이 동성(同性) 결혼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겠다고 했습니다. 북미주에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는 청교도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주해 온 신앙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국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신앙의 유산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 버린 국가가 되었습니다.
▶ 놀랍게도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사시대에도 역시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이루어진 가나안 땅에서의 믿음은 다음 세대(Generation)로 전수(傳授)되지 못하고 훗날 다른 세대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삿 2:10).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무리 탁월한 신앙의 지도자와 조상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하게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로 전수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세대(Another Generation)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다음 세대에게 온전하게 ‘전수되지 않는다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육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섬기지 않게 되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아버지 이삭까지 속이며 축복기도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창세기 49장에서는 죽기 전 자녀들을 위하여 뜨겁게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사도들뿐 아니라 그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세대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짓밟는 무서운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의 자녀들이 사탄의 종노릇하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서조차 영성(Spirituality)의 위기를 느낍니다. 하나님을 너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세대들이 또 다른 세대(Another Generation)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음세대를 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① 다음 세대를 이해하며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이나 어른, 젊은이나 노인 등 어느 한 사람 무시당할 존재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특별대우를 받을 존재는 하나도 없거니와 무시당할 존재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요, 사랑과 용서를 받은 자임으로 혹시 좀 부족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양보하고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교회는 세대 간의 문화적인 차이를 율법적인 잣대로 평가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잣대를 사용하면 결코 실수도 없거니와 좋은 결과만이 뒤 따를 것입니다.
② 교회는 다음세대를 위해 영양가(營養價)가 높은 교육을 준비해야 하며, 교회교육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입니다(마 28:19-20). 그리하여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도 신앙교육의 목적을 두 가지로 제안했습니다. 먼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는 것(딤후 3:15)과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하게 하는데 있습니다(딤후 3:17). 즉, 예수님의 제자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와 교회라면 지금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데 전심전력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부흥은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1. 다윗의 다음을 위한 준비
대상 22:3-5 / 다윗은 쇠도 많이 생산하게 하였다. 거대한 성문을 짤 때에 쓸 못과 성벽 공사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기 위한 준비였다. 구리 또한 무게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산하였다. 4) 수많은 송백 재목도 마련해 두었다. 그것은 두로와 시돈에 사는 베니게 사람들이 레바논에서 자란 송백을 베어다가 지중해에 띄워서 실어 온 것들이다. 5) 다윗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호와께 지어 드릴 성전은 온 세상이 우러러볼 만큼 장엄해야 한다. 그러나 내 아들 솔로몬은 아직도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내가 죽기 전에 성전을 짓는 데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준비해 두어야 하겠다.’ 그래서 자기가 구상한 성전을 짓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자재들을 미리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피를 많이 흘린 탓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도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영적인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전쟁을 통해 이방을 정복했기에, 만일 다윗이 성전을 짓는다면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다윗 때문에 하나님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해 많은 준비들을 했습니다. 성전건축에 필요한 건축 자재들을 대부분 준비함으로 솔로몬이 쉽게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신앙과 사역은 한 세대로 끝나서는 안 되고 대대손손 승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살고 있는 한 세대만 즉 나만 생각하며 신앙생활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이 신앙생활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고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세대가 할 수 없고 이루지 못한 것을 다음 세대에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 서부 개척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누가 더 빨리 서부로 달려가서 땅을 차지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백인이 서부 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인디언의 안내를 받아 서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안내하는 인디언에게 이상한 습성이 있었습니다. 이 인디언은 꼭 사흘을 달린 후에는 ‘더 이상 길을 가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하루를 꼭 쉬는 것입니다. 서부 개척시대에는 ‘누가 먼저 달려가서 땅에 깃발을 꽂느냐?’에 따라 자기 땅이 결정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것이 아주 중요한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사흘마다 하루를 쉰다는 것은 이 백인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손해를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백인은 그를 재촉하면서 “하루는 쉬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손해가 나는 일인 줄 아느냐? 너는 왜 더 빨리 가면 안 된다고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인디언은 조급해 하는 백인을 향해 “너무 빨리 말을 타고 달렸더니 아직 내 영혼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 쉬면서 내 영혼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가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지금 이 자리에 도착해 있습니까? 마음을 열과 귀를 열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2. 등을 준비하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지혜로운 5처녀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지혜로운 5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5사람이 나옵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등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등을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슬기로운 5처녀는 등에 기름을 충분히 넣어 등불이 꺼지지 않게 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기름 그릇을 준비하여 만일에 사태에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5처녀는 준비하는 일이 힘들였든지 당장 쓸 것만 준비하였습니다.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10처녀는 똑같이 등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다 맞으러 나오라’는 문지기의 소리들 듣는 순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 모두는 일어나 더 밝은 빛으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그 동안 켜 놓았던 등의 심지를 더욱 위로 올렸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5처녀들의 등에 있는 불꽃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더 이상 그들의 등은 빛나지 못하고 꺼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이 정도의 등불이면 충분히 신랑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만족(自己滿足)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 스스로에게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부족하다. 무엇인가 채울 것이 있다. 무엇인가 준비할 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땀 흘리며 노력합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만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땀 흘려야 합니다. ‘이 정도 믿음이면 나는 천국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보다 더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마 7:21-23 / [너희를 알지 못한다. ; 눅 13:25-27]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악한 자들아!’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5-7장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이런 결론을 내려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음을 위하여 힘이 들어도 반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당장만 생각하여 짓기 쉽다고 모래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마 7:24-27 /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가르침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3. 다음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 사람들
■ 어떤 여객선이 항해하다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여객선은 항로를 잃고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헤매다 어느 무인도에서 난파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승객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무인도를 빠져 나와 그리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한 것은 그들의 난파선 주위에는 걱정 없이 몇 달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몇 달 간 먹을 식량은 확보되어 있지만 얼마를 더 기다려야 구원을 받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지혜롭게 땅을 파고 씨앗을 심어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땅을 파고 씨앗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땅에는 황금덩이가 여기 저기 묻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씨앗을 뿌리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 모두는 더 이상 씨앗뿌리는 일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땅을 파 뒤지기만 하면 여기서 저기서 황금덩어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황금은 점점 많아져 황금더미를 이루었습니다. 이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행복한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양식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씨앗이 싹이 트려면 몇 달이 걸려야 하는데 그 때까지 그들 모두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흩어져 있는 많은 황금덩이와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체였습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의 문제를 세상의 환락과 세상의 물질에 빠져 그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지금이 영접할 때요, 지금이 깨어날 때요, 지금이 기름을 준비해야할 때입니다. 문이 닫히면 열리지 않습니다. 영원히 문 밖에서 울며 이를 갈아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방주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히 11:7 / 노아도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구해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노아의 신앙은 그 당시 거역만을 일삼던 사람들의 죄나 불신앙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를 예로 들어 이렇게 다음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24:37-44 / 인자가 올 때도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이다. 38) 노아 때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갈 때까지 흥겨운 잔치를 벌이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다. 39)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휩쓸려 갈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올 때도 그럴 것이다. 40) 그때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2) 그러니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 주인이 언제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리라. … 44) 그러니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 인자는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고도 없이 올 것이다.
흥겨운 잔치를 벌이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밭에서 일을 하고,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는 것이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하니 천국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름다운 소망을 바라보면 믿음으로 살아간 분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들 모두는 이 땅에서의 삶보다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 분들입니다.
히 11:35-40 /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 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36)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37)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38)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을 그들에게도 주시려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4. 바로로 하여금 내일을 준비케 한 요셉과 느부갓네살 왕에게 재앙을 대비케 한 다니엘
다음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요셉 시대의 애굽 왕 바로와 다니엘 시대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비교하여 보면, 바로의 꿈이나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꿈을 꾸고 해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통해 내일을 대비케 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1. 바로왕은 자기에게 해몽을 해 준 요셉(이방인이요 죄수였는데도 불구하고)을 파격적인 대우로 총리에 임명하여 무서운 7년 흉년을 대비케 함으로 자기 나라를 구할 뿐 아니라 부강하게 합니다.
창 41:31-41 /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풍년 뒤에 곧 뒤따라 올 흉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뒬 것입니다. 정말 이 땅에 언제 풍년이 든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32) 바로께서 같은 꿈을 지닌 꿈을 두 번씩이나 연달아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33) 하오니 임금님께서는 슬기로운 사람을 뽑으시어 그 사람에게 나라 일을 맡기시는 것이 좋으실 듯합니다. 34) 또한 여러 관리를 두셔서 앞으로 계속될 일곱 해 풍년기간 동안 애굽 전국에서 나는 곡식 가운데서 1/5을 거두어들이게 하십시오. 35) 그러니까 일 곱해 동안 해마다 전국에서 나는 곡식 가운데에서 1/5을 거두어들이게 하시어 모두 바로께서 관리하도록 하셔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두어들인 곡식은 모두 저장토록 하여 잘 지키도록 하시지요. 36) 그렇게 해야 앞으로 극심한 흉년이 닥쳐와도 애굽 땅에 사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37)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의 제안을 좋게 생각하였다. 38) 바로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단 말이냐!” 39) 그러면서 요셉에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느냐? 그대같이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40) 그러니 그대가 우리나라를 다스려다오.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다 그대의 말을 따를 것이다. 나 밖에는 이 나라에서 그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41) 이제 나 바로는 그대를 우리 애굽의 총리로 임명하노라.”
2. 반면 느부갓네살 왕은 어떠했을까요? 다니엘을 통하여 무서운 경고를 들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까지 들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습니다.
단 4:24-27 / 임금님, 그 뜻은 이렇습니다. 그 환상은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임금님께 내리시는 판결입니다. 25) 송구스럽습니다만 임금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사시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일곱해 동안 소처럼 풀을 뜯으며 하늘 이슬이 내리는 들판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뜻이지요. 27) 그러하오니 임금님, 소인이 이르는 말씀을 따르십시오. 이제는 그만 죄 지으십시오. 정의를 실천하셔야 합니다. 가진 것 없어 서러움 당하는 이들을 돌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임금님이 다스리시는 이 제국이 죽죽 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임금님도 평안하실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통하여 무서운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하였을까요?
단 4:28-30 / 이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왕에게 일어났다. 29) 열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에 있는 왕궁을 거닐면서 30)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얼마나 웅장한가! 내 힘과 권세와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 보이려고 이 도성 바벨론을 내 제국의 수도로 건설하지 않았던가!’ 31) 이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느부갓네살아,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네 제국도 그 힘도 이제는 모두 다 끝장났다. 32) 너는 이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들녘에서나 살게 될 것이다. 소처럼 풀이나 뜯어먹고 살 것이다. 일곱 해 동안 그렇게 산 뒤에야 비로소 네가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를 모두 관할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또한 너는 하나님께서 당신 뜻대로 뽑으신 사람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도 내려 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것이다.’ 33) 이 말씀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느부갓네살에게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 .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불필요한 어려움은 겪을 필요가 없었을 터인데 … .’ 하며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단 4:34-37 / [하나님을 찬양하는 왕] 왕이 말하였다. ‘일곱 해가 지났을 때 내가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에게 영광을 돌렸다. 주께서는 이 세상을 영영토록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35) 주께서는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찮게 내려다보시지요. 하늘에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땅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도 다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 그 누가 감히 주님의 뜻을 거스르랴! 주께서 하시는 일 그 누가 감히 이러실 수 있느냐고 입을 뗄 수 있으랴! 36) 비로소 내가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가 다스리던 이 제국의 영광과 위엄과 영예가 회복되었다. 나를 돕던 관료들과 귀족들도 모두 나를 환영하였고 내 왕권도 되찾았다. 나는 전에 누렸던 영예보다 더한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37) 그래서 나 느부갓네살은 이제 하늘에 계신 임금님께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돌리노라. 그분을 드높이 기리노라.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다 올바르시다. 그분은 젠체하며 거만하게 목을 곧추세우며 살아가는 자들도 내리 꺾으실 수 있는 분이다.’
즉 바로 왕 때에는 요셉 혼자서 애굽에 내려가 많은 고생을 하면서 집안 모든 식구들을 무서운 흉년에 대비시킬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번성케 하여 215년 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형성케 하시려고 약 2백만 명의 사람들을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 시대에는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이주시켜 새롭게 변화시켜서 70년 만에 다시 귀국케 하시려 하셨는데, 이에 회개하면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을 이방인일지라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보여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는 따뜻한 사랑의 권면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5. ‘다음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예수님
1. 7계를 범한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다음부터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심.
요 8:10-11 / 예수께서 일어서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고발하던 자들은 어디 갔느냐? 그들 중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더냐?” 11)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하고 그 여자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2. 베데스다 못가에서 누워 있는 병자들 중에는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침구를 걷어 들고서 걸어가라!” 그 순간에 그는 병이 나아서 침구를 걷어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셨을 때에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 5:14 / 얼마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를 만나시자 말씀하셨다. “이제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병으로 고생할 것이다.”
3. 다음을 준비하는 삭개오와 예수님의 축복
예수께서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 밑에 이르자 삭개오를 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무르겠다.” 이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군중은 ‘그분이 소문난 죄인의 집 손님이 되시다니’ 하고 투덜거렸다. 삭개오는 비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후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눅 19:8-10 / 삭개오는 주님 앞에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세금을 누구에게 더 부과한 것이 발견되면 제 돈으로 네 배를 갚겠습니다.” 9-1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이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잃어버렸던 아브라함의 자손중의 하나이다. 나, 인자는 이와 같은 이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
4. 다음을 준비하라고 하시며 베드로의 장담을 꾸짖으셨습니다.
눅 22:31-32 / [베드로의 장담; 마 26:31-35, 막 14:27-31. 요 13:36-38] “시몬아, 시몬아,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이 까부르려 하고 있다. 32) 그러나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내가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네가 깨닫고 돌이킨 후에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주어라.”
눅 22:33-34 /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저는 이미 감옥에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34)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베드로야, 내 말을 명심해 두어라. 지금부터 내일 아침 닭이 울 때까지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5. 다음을 준비하라고 하시며 승천하신 예수님
눅 24:47-49 / 내게 돌아오는 사람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는 이 구원의 도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48) 너희는 이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49) 이제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니 너희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성령이 오셔서 하늘의 능력을 채워 주실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오늘의 형편이 어렵다고 내일의 축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 비가 오지 않는다고 우산을 내다 버리고 물 담을 양동이를 없애 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가물어도 소나기가 올 때를 대비하여 큰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이가 내일의 풍요로운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들은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하루아침에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양을 치면서 찬양과 기도를 통해 신앙으로 무장하였고, 사자와 곰과 싸우면서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믿음과 사랑 그리고 용맹과 담대함을 키웠습니다. 요셉도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있었으나 애굽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기회로 삼아 애굽의 총리로 요청 받을 때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상을 달리고 있는 운동선수들의 특징을 보십시오. 하나같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 속에 철저히 준비하고 훈련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추첨해서 쓰는 분이 아니라 준비된 자를 사용하여 역사를 이끄십니다. 공부는 안하고 기도만 한다고 점수가 잘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는 은행에 자금을 넣어두지 않고 쓰고자 기도하는 우매한 자와 같습니다. 소중하고 원대한 꿈을 향해 비전의 날개를 달고 열심히 준비하여 최후에 승리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누가복음 16:1-9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청지기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축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주인은 청지기더러 ‘네가 보던 것을 셈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청지기의 독백이 나옵니다.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땅을 파자니 힘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청지기는 무릎을 칩니다. 묘안이 떠오른 겁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는 자기 마음대로 빚을 탕감해 주기 시작합니다. 즉 기름 백말을 사람에게는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름은 올리브유인데, ‘말’이라는 단위는 바트입니다. 올리브 나무 146그루에서 100바트의 기름을 얻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양입니다. ‘석’은 코르라는 말인데, 1코르는 275kg입니다. 그러니 100코르는 27,500kg입니다. 가마니로 따지면 80kg짜리 343가마니입니다. 이것도 굉장한 양입니다. 그런데 곧 해고될 청지기가 그 많은 빚의 절반, 20-30%를 일방적으로 탕감해 주고, 그 외에도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다 불러서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청지기는 왜 그랬을까요? 주인에게 해고에 대한 보복입니까? 마지막으로 선심을 쓰고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눅 16:4) 즉 실직 이후를 대비한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린 청지기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절) 마지막 9절은 더욱 난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직역하면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말로 들립니다. 어떻게 보면 목적만 있으면 수단은 다 정당화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주인이 칭찬한 대목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손해를 끼친 것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쫓겨날 자기의 장래를 생각해서 전격 모험을 감행한 청지기의 발상, 용기, 결단을 칭찬한 겁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 청지기의 비상한 책임감을 높이 산 겁니다.
그런데 사실 바로 여기에 주님이 오늘 난해한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래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위기 없이 살아가는 제자들과 신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눅 16:8下 /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은 불신자, 빛의 아들은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불의한 방법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악착같이 자기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훨씬 자기의 미래에 대해 책임적이라는 겁니다. 이에 비해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미래, 영원한 운명에 대해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아무런 준비도 채비도 없이 삽니다. 이 부분을 주님이 비판하신 겁니다.
그 청지기처럼 우리는 미래를 대비해서 합당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 청지기처럼 우리는 현재의 거처를 떠날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을 벗어버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소유해야 합니다(고전 5:1). 그 청지기처럼 우리의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 청지기처럼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청지기처럼 안목과 선견지명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잠시 동안의 일들을 위해서 죽자 살자 부지런하게 살아가는데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일들에 대해 냉담하거나 미지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없어질 보화를 얻기 위해 바다를 건너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고 애쓰는데 영원한 소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일을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피곤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에 매어 있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처럼 세상의 물질이나 시간을 드려 하늘나라와 상급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 25:35-36 /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 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 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약 2:14-17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믿음이 깊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남 돕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신앙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15) 여러분의 친구 한사람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합시다. 16) 그런 사람에게 여러분이 ‘참 안됐구려. 따뜻하게 지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는 말만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따위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17)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증명해 내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죽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요일 3:17-18 / 누구든지 많은 돈을 가지고 잘 지내면서 궁핍한 형제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들이여, 사랑한다고 혀에 발린 말을 이제 그만 두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사랑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요일 4:7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친절을 베푸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증명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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