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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역사소설 태종 이방원 169
세자, 사돈, 관리를 잡으려는 욕심
뜨거운 숨을 토해낸 태종 이방원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마치 활화산 같았다.
노기충천한 태종은 내관 정징과 사알 차윤부를 급히 들라 일렀다.
"부인은 지아비의 부모를 중하게 여겨야한다.숙빈은 비록 지아비의 뜻을 따랐으나 나의 뜻을 어찌 알지
못하였는가? 어리를 몰래 들인 것을 내가 심히 미워한다. 한경에 가서 숙빈을 아비 집으로 내보내라."
숙빈은 세자빈이며 김한로의 딸이다. 친정으로 내쫓으라는 얘기였다. 임금의 내침을 당하고 세자전을 떠나는
숙빈에게 태종 이방원은 내관 정징을 통하여 전교했다.
"부인은 지아비의 집을 내조하는데. 네가 지난해의 사건 때에도 나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다. 내가책망하니
'분명히 죄가 있습니다. 뒤에는 마땅히 고쳐 행동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제 너는 이 사건에서도 또 나에게 고하지 않았으니, 이미 나를 속이고 또 너의 지아비의 부덕한 것을 드러낸
까닭으로 너를 내보낸다."
숙빈을 사가로 내친 태종 이방원은 한경에 있는 김한로를 개성으로 소환하라 명했다.
소환령을 받은 김한로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올 것이 왔다' 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세자의 청에 못 이겨 어리를 세자전에 들인 것 자체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주홍 두꺼비다."
*주홍 두꺼비: 독이 있는 두꺼비로, 빨리 오지 않음을 비유함.
김한로가 한경에서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 이방원은 왜 이리 늦냐고 성화를 냈다.
의금부 관원을 벽제에 내보내어 빨리 잡아오라고 명했다. 종로에서 붙잡혀온 김한로가 개성에 당도했다.
"세자가 어리를 또 들이어서 아이를 가진 사실을 경은 알았는가?"
"신은 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어리를 쫓아낼 때, 세자가 괴로워하며 침식을 편히 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그녀의 인생이 가엽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세자의 정을 가련하게 여겨 그녀로 하여금 연지동 집에 와서 1개월가량 살게 했습니다.
그녀가 집을 마련하여 나가서 거처하게 되자 신이 식량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전내에 다시 들어간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
"경이 알지 못한다고 하면 국론이나 내가 경이 실로 알지 못하였다고 믿겠는가?"
"사세(事勢)로 본다면 주상의 마음이나 국론에서는 반드시 신이 알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
"내가 세자에게 마치 새끼를 키우는 호랑이와 같이 엄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경은 사위(壻)를 사랑하여
그녀와 살도록 허락하고 양식을 주었으니 경은 과연 덕이 있도다"
김한로를 향하여 싸늘한 조소를 날리던 태종이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경에게 명하여 숙빈에게 세자의 잘못을 고하지 않은 허물을 가르치게 하니 대답하기를, '과연
잘못이 있습니다.' 하고서 이제 다시 전과 같이 나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시아비를 중하게 여기는 짓이냐?
숙빈은 이미 사람을 보내어 경의 집으로 내쫓았다.
나와 경은 어릴 때부터 교제가 두터웠고 또 한집안을 이루었다. 경의 나이가 51세 나와 동갑이나, 나와 경이
사생(死生)의 선후를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데, 세자로 하여금 어질도록 만들어야 경이 그 부귀를 평안히
누릴 것이다.
내가 용렬한 자질로써 나라의 임금이 되어 나의 외척에게 변고가 있었고 골육을 상하게 하여 부왕께 죄를
지은 것을 나는 심히 부끄러워한다.
이제 또 아들의 처가 식구들에게 감히 불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겠는가?
이제 경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느 것을 가르치지 않고, 세자로 하여금 불의한 짓을 하게
하였으니 종묘사직은 어찌 되겠느냐?
경의 한 일을 만약 바른대로 진술하면 죄의 경중을 내가 마땅히 처리 할 것이며, 어찌 반드시 유사에
내려보내서 이를 묻겠는가?"
준엄한 논고와도 같은 태종의 일갈이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토설하고 반성하면 용서해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엄중 문책하겠다는 뜻이다.
태종 이방원과 김한로는 막역한 사이였다.
"어리가 아이를 낳은 것은 어찌된 일이냐?"
"지난해 세자의 생일 뒤에도 시녀 한 사람이 모친을 감싸고 나왔다고 들었으므로 불비에게 그여자가 어떤
여자였는지를 물으니 불비가 말하기를 '그 여자가 어리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 라고 하였습니다.
"계집종 팡계대지 말라. 너의 말은 전후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 사실도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
"경이 세자를 위하여 악을 꺼리는 마음을 내가 알고 있다. 경이 바른대로 말하면 경의 죄는 내가 바로
상량(商量)하여 처리하겠다."
"변명할 바가 없습니다. 마땅히 정상을 알았던 것으로써 죄를 받겠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라."
노역에 끌려나온 장정들에게는 '집으로' 라는 말이 죽었던 아버지가 살아온 것 만큼이나 반가운 말이지만,
관리들에게 '집으로' 는 반가운 말이 아니었다.
김한로는 현직 병조판서였다. '집으로'는 죄를 대기하라는 뜻이었다.
한양으로 돌아가는 김한로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화살 하나로 세 마리의 꿩을 잡으려는 통치권자
김한로를 집으로 돌려보낸 태종은 찬성(贊成) 이원을 불렀다.
“내가 변계량의 마음가짐이 바르다고 생각하여 세자빈사(世子賓師)의 자리에 거(居)하게 하였다.
아비가 자식을 가르칠 수 없으니 스승이 어찌 가르치겠느냐마는 세자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세자 스승 변계량에게 불똥이 튀었다. 태종은 변계량을 들라 일렀다.
“세자를 가르치는데 사람을 고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경(卿)으로 하여금 세자빈객(世子賓客)으로 삼아
선(善)하게 인도하도록 하였다. 이제 이처럼 불선(不善)하니 이것이 비록 경이 알지 못하는 바이라 하나,
빈사(賓師)가 된 자로서 부끄럽지 아니한가?”
세자사 변계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변계량을 내보낸 태종은 찬성(贊成) 이원을 다시 불렀다.
“옛날 이무를 결죄(決罪)할 때 구종수가 의금부도사가 되어 공사(公事)를 누설하고 그 후, 궁의 담장을
뛰어넘어 세자전에 출입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내가 이를 싫어하여 경과 황희에게 물으니 경은 그 죄를 묻자고
청하였으나, 황희는 말하기를 ‘매(鷹)와 개(犬)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하고 다시 죄를 청하지 아니하였다.
경은 그 일을 잊었는가?”
“신(臣)은 잊지 않았습니다.”
이원은 긴장했다. 임금의 노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다. 우선 몸을 낮춰야 한다.
“내가 세자에게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종사만세를 위한 계책이다. 세자의 동모제(同母弟)가 세 사람이었는데
이제 한 아들은 죽었다. 장자와 장손에게 나라를 전하는 것은 고금의 상전(常典)이니 다른 마음이 없으며,
여기에 의심이 있다면 천감(天鑑)에 합(合)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이 말을 의정부에 고(告)하라.”
밖으로 나온 이원이 좌의정 박은과 함께 다시 편전으로 들어가 임금께 청했다.
“전하의 하문(下問)에 황희가 대답할 때, ‘매(鷹)와 개(犬)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하였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청컨대, 그 까닭을 국문하소서.”
“내가 승선(承宣) 출신인 자를 우대하기를 공신 대접하는 것과 같이 하기 때문에, 황희로 하여금 지위가 2품에
이르게 하여 후하게 대접하는 은의(恩誼)를 온 나라가 아는 바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심히 간사하고 왜곡되었으므로 평안도 관찰사로 내쳤다가 지금 판한성부사로 삼아
좌천하였는데, 어찌 다시 그 죄를 추문(推問)하겠느냐?”
승선은 지신사를 이르는 말이고 지신사는 오늘날 비서실장이다.
황희는 태종 등극 초, 박석명에 이어 2대 지신사로 안등과 교체될 때까지 4년간을 국왕의 지근거리에서 임금을
보필했다.
“황희가 주상의 은혜를 받고도 올바르게 대답하지 않고, 그 간사하기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상이
자비하여 죄를 주지 않는다면 그 밖의 간신을 어찌 징계하겠습니까?”
박은이 다시 청했다.
“마땅히 불러 물어보겠다. 그러나 항쇄(項鏁: 중죄인의 목에 틀을 씌우는 벌) 따위의 일은 없애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상녕을 한경(漢京)에 보내어 황희를 잡아 오도록 했다.
임금의 명에 따라 목에 칼을 씌우는 항쇄는 없었다.
훗날 세종 조에서 명 제상으로 이름을 남긴 황희도 비켜갈 수 없었다.
“여색(女色)을 전내(殿內)에 출입시킨 죄를 물으소서”
개성을 떠난 김한로가 한양에서 죄를 대기하고 있는 동안 형조와 대간(臺諫)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병조판서 김한로의 죄를 청하는 것이었다.
“우리 세자는 천성이 총명하고 기개와 도량이 영위(英偉)한데, 지난번 간사한 무리의 유혹으로 인하여
전하에게 책망을 받고 스스로 허물을 뉘우치고 종묘에 맹세하여 고(告)하고 전하에게 상서하였으니,
그 천선(遷善)하고 스스로 새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가히 지극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이것은 종사(宗社) 만세의 복이요 온 나라 신민(臣民)들의 기쁨입니다.
김한로가 적빈(嫡嬪)의 아비로서 전하의 뜻을 몸 받지 않고 여색(女色)을 전내(殿內)에 출입시키고 아뢰지
않았으니 불충입니다. 또 전하께서 친히 물으시는데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으니, 그 행동이 주상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는 마음이 어디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불충한 마음을 품은 것이 명백하니 유사(攸司)에 내려 국문(鞫問)하고 그 죄를 올바르게 바로잡으소서.”
“이미 물어서 모두 알았으니 비록 유사(攸司)에 내려서 묻더라도 더 이상 캐낼 정상이 없을 것이다.”
상소를 물리치자 형조와 대간에서 또다시 김한로의 죄를 청하는 주청이 올라왔다.
“김한로가 주상의 뜻을 몸 받지 아니하고 여색(女色)을 동궁(東宮)에 들이었고, 또 하문(下問)할 때에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않았으니 죄를 주기를 청합니다.”
“내가 장차 그 죄를 헤아려 시행하겠으니 다시 청하지 말고 김경재를 잡아들이도록 하라.”
변죽을 울리는 자는 놔두고 바쁠수록 돌아가라
김경재는 김한로의 아들이다.
김경재는 아버지 김한로의 후광을 입어 쭉쭉 뻗어나가는 젊은이다.
사헌부 감찰(監察)로 재직 중에 있는 관리다.
김한로가 딱 부러지게 자복하지 않자 그의 아들 김경재에게서 증언을 확보하려는 우회 전략이다.
역시 태종다운 발상이다.
“너의 아비 김한로를 임용한 지가 오래 되고 또 세자의 처부(妻父)이기 때문에 내가 중한 형벌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어리에 대하여 아는 대로 계문(啓聞)하라. 너의 아비가 이미 아뢰었으니 숨기지 말고 바른 대로 말하라.”
뜬금없이 붙잡혀온 김경재는 임금의 호통에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제가 연화동댁(蓮花洞宅)으로 나갔을 때 판서(判書)가 나와 말하기를 ‘새 여자면 불가(不可)하나, 어리는
새 여자가 아니니 전(殿)에 들어가도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
전(殿)에 들어가는 일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출입할 때 도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아버지가 말하기를 ‘지난해 생일에 전(殿)에 들어갔다가 종전에 못 보던 한 여자가 장지(障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시종 가이(加伊)에게 물으니 가이가 답하기를 ’이 여자가 그 여자입니다‘라고 한 뒤에야 나도
또한 이를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증언이다. 김한로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은 어리가 세자전에 들어간 것을, 출입 당시부터
알았느냐? 사건이 터진 뒤에야 알았느냐? 가 관건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들의 입을 통하여 나온 것이다.
다음. 170에 계속
첫댓글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