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이어가는 모임이 있다.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매화회’다.
회원 열두 명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직업군이 같고 남자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르다. 나이, 성격, 출신학교, 근무지, 고향, 전공, 정치적 성향, 종교 등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모임을 계속하고 있을까?
매화회는 술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저녁 자리에서 의기투합하여 출발했다.
현재는 현역이 셋, 은퇴가 아홉 명이다.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두 시간 정도 술과 음료를 마시며 저녁을 먹는다. 일차가 끝나면 인근 당구장에서 한두 시간 정도 당구를 친다. 편을 짜서 당구를 치지만 내기는 하지 않는다. 이기든 지든 회비로 처리한다. “지는 일이 이기는 거여”라는 사람도 있고 “경기는 이겨야지”라는 사람도 있다. 시작하면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당구가 끝나면 인근 술집에서 입가심 후에 헤어진다. 정기적인 회비는 없고 쓴 만큼 참석자가 각자 부담한다. 참석 여부는 자유이고 참석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카톡에 올리면 된다.
똑같은 패턴을 십오 년간 반복하는데도 질려하는 사람이 없다. 만나면 만날수록 할 말이 많고 정은 차곡차곡 쌓인다. 이제는 친구이기도 하고 형과 동생이기도 하다.
매화회 리더는 섬세하고 정이 많다. 일주일 계획의 맨 앞에는 매화가 있다. 매화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간다. 음악, 미술, 문학을 사랑하고 텃밭을 가꾸며 삶을 즐긴다.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보다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평생 좋은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가난이나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키워 재능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자신은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래도 하나는 건졌잖아”라며 여유 부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매화회다.
나이가 들면 식성에 변화가 생기듯이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온다. 음식도 간이 덜된 담백한 것에 손이 가고 사람이나 생활도 간단하고 담백한 것에 정이 간다.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너무 좋거나 너무 싫은 것이 줄어들고 쉽게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왜 예전처럼 떨리거나 흥분되지 않지? 이런 게 늙는 건가?” 새로운 감정이 낯설고 서글퍼지면 화요일엔 ‘매화회’를 찾아 흥과 재미를 되살리며 웃고 즐긴다.
요즘 ‘혼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바쁘고 어른은 밥벌이하느라 힘들다. 가족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은 희망 사항이 되고 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독립하고 나면 생활의 패턴과 취미생활이 다른 부부 또한 그렇다. 은퇴 후의 ‘아점’은 아내와 함께한다. 아내는 반찬을 만들고 나는 밥과 설거지를 맡는다. 밥을 먹다 수저를 흘려도 그러려니 하며 지나간다. 식사 후에 앞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삶의 여유이기도 하다. 저녁은 서로의 취미생활이 달라 같이 하기 어렵다. 먼저 오는 사람이 혼자 밥을 먹는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있다. 아니 스스로 줄이며 고립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삶 속에서 누가 “밥 먹자”라고 할 때 단순한 밥을 먹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친밀관계 확인이나 우정의 강화 또는 비즈니스의 시작을 의미한다. 수많은 인간관계는 대부분 식사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식사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의 섭취를 의미하며 우호적인 사람과의 어울림을 뜻한다.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고기 속에 들어 있는 영양소와 특유의 맛에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먹는 사람은 맛과 함께 친밀감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친밀감의 공유가 인간관계의 형성을 촉진하고 개선 시킨다.
“술 한 잔 어때”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식사와 함께 술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친밀감의 공유는 더하다.
기쁘거나 슬픈 순간에도 음식을 먹고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2024.12.27.(38)
첫댓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고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은 정이 오가는 증거 입니다. 의미 있는 모임 오래 오래 하시기 바랍니다.
부담없는 친구들의 만남과 식사자리는 세월이 갈수록 정이 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