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3)
(열왕기상 8장 51-62절)
51-53.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원하건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철 풀무(쿠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나할라)가 됨이니이다”
쿠르는 금속을 제련하는 용광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철이라도 녹일 정도의 뜨거움으로서, 애굽에서의 생활이 극심한 고통으로 가득했음을 비유로 말하고자 사용되었다.
나할라는 소유 또는 상속 재산이란 의미이다. 나할라 라는 말은 그들이 결코 버림받을 수 없는 존재, 곧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유로 주의 보호와 아낌 및 관심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주의 나할라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이었다. 따라서 솔로몬의 모든 기도는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대자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은 사실에 근거하여 드려졌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문을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어떤 노력이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이다.
“원하건대 주는 눈(아인)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아인은 인간을 살피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하나님이 눈을 가리운다는 표현은 인간의 기도와 요청을 듣지 않으심을 의미한다. 이렇게 들어달라는 간청으로 앞뒤가 구성된 솔로몬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주의 기업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어 응답을 요청한 것이다
“세상 만민 가운데서 그들을 구별하여(바달)”
바달은 분리되다, 차이를 만들다는 뜻이 있는데,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방 여러 나라와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카도쉬)에도 이러한 구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거룩 및 구별에는 단순히 속된 것에서 분리되는 것 외에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출애굽기 19장 6절의 제사장 나라는 바로 그러한 구별의 면을 알려 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타민족과는 분리된 선민인 바 이는 이스라엘로 열방 중 제사장 나라로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54-62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팔랄)를 마치고”
무릎을 끓는 자세에는 탄원, 복종, 예배 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손을 펴거나 뻗치는 행위는 간청을 의미한다.
팔랄은 호소하다, 기도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테필라(기도)란 말이 파생되어 나왔다. 팔랄은 중개자로서 행동하다는 뜻도 있다. 솔로몬의 기도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자로서 행한 것이다.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바라크) 이르되”
봉헌 기도 이후에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일종의 축사이다. 바라크는 때로는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경우에도 사용되었고, 광범위한 의미의 축복은 제사장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솔로몬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한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경축사와도 같은 것이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메누하)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메누하는 안식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태평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안식은 창세기 2장 2절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그리고 신명기 12장 9-10절에서 백성들에게 약속으로 주어졌는데,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비록 여호수아 21:44에서 이 안식이 성취되었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많은 가나안 족속들이 땅의 도처에 있었고, 성전도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정복을 거쳐 마침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이 건축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안식도 영적인 완전한 안식이 아니었다. 영원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솔로몬의 성전건축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예표)에 해당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임마누) 우리를 떠나지(아자브) 마시오며 버리지(나타쉬) 마시옵고”
임마누의 임은 이미 그 개념 안에 친교와 교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임으로 수식된 것은 곧 인간과 같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셔서 수치든 실패이든 공동으로 겪으시는 은총의 관계를 의미하다.
아자브는 버리다, 포기하다는 뜻이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는데, 샤바크(사박)란 말이 바로 이 아자브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나타쉬는 배척하다, 거절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자브에 비해 나타쉬는 좀더 거부의 뜻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솔로몬이 하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힙입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미츠와)과 법도(호크)와 율례(미쉬파트)를 지키게(샤마르) 하시기를 원하오며”
미츠와는 인간이나 신의 명령이며, 호크는 습관, 규례, 미쉬파트는 법령을 의미한다. 계명과 법도와 율례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과 명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 언급된 세 가지 규례들을 지킨다(샤마르)는 것은, 마음에 잊지 않고 간직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분별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행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을 의미한다.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카라브) 하시옵고”
카라브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친밀하게 접촉한다는 개념이 이 말 속에는 들어 있다. 카라브는 가까이 있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접촉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솔로몬의 기도가 하나님께 카라브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는 자신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간곡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하엘로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매일의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
성전을 봉헌함에 있어, 솔로몬은 성전이 주의 이름과 영광을 보존하고, 나아가 그 성전을 통해 열방에 주의 이름과 영광의 빛이 전달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이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하엘로힘은 정관사 하가 있는 그 하나님이다. 즉 살아계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친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따라서 여호와만이 참되고 유일하신 신, 엘로힘이신 것이다.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샬렘) 하여”
솰렘은 어떤 관계가 비뚤어짐 없이 건전하게 조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그렇게 회복된 관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샬렘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이 파생되어 나왔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이 샬롬(평화)의 관계에 있는 상태를 곧 샬렘(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샬렘(완전)의 결과 혹은 과정이 곧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말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신도들이 이러한 말을 두고 율법을 철저히 행하는 것이 완전함이 이른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성전 낙성식에 참여하고 있는 왕과 백성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친밀하고 화합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를 드리는 왕과 백성들의 이러한 화목함은 신정 통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신정 통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백성들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왕은 단지 하나님이 세운 백성의 목자일 뿐이다.
언약궤 안치식과 솔로몬의 봉헌 기도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거대한 규모의 화목제가 드려짐으로써 성전 봉헌식은 그 절정에 달하였다. 역대하 7장 4-10절에는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면까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여호와께 대한 감사와 헌신, 친교의 표시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 사건인 성전 봉헌식을 맞이하여 거대한 규모의 희생제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약 정리)
솔로몬이 성전 봉헌을 마치며 하나님께 드린 중보기도의 마무리와 백성을 향한 축복,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성대한 화목제의 내용이다.
첫째, 백성의 구원과 간구를 위한 중보기도로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광로 같은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주의 소유임을 상기시킨다.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거나 고난을 당할지라도, 성전을 향해 드리는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둘째, 백성을 위한 축복과 당부이다. 기도를 마친 솔로몬이 일어나 큰 소리로 온 이스라엘 회중을 축복하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모든 약속이 하나도 틀림없이 성취되었음을 찬양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늘 함께하시고 떠나지 않으시기를 간구한다. 또한, 백성들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모든 율례와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를 당부한다.
셋째,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고 모든 예식이 종료되었다.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봉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화목제를 드렸다. 성경은 이후 솔로몬이 번제와 소제, 화목제의 기름을 드리기 위해 성전 앞뜰을 거룩하게 구별한 소 2만 2천 마리와 양 12만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고백한 것처럼 성도 역시 자신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짐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솔로몬은 백성들의 간구와 기도를 항상 귀담아 들어달라고 간구하는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인 기도와 간구가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보여준다.
하나님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기업(소유)"으로 선언했다. 성도 역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소속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인식은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오늘 현재 나에게 이루어짐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됨을 신도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이게 성도의 정체성이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래서 다른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기 위한 일에 충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한다.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온 회중을 향해 축복하는 것과 같은 일이 성도에게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