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퍼레리(contemporary)라는 단어는 ‘같은’이라는 뜻의 접두사 ‘콘’(con)과 ‘시대의’라는 뜻의 ‘템퍼레리’(temporary)라는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형용사로는 ‘같은 시대의, 그 당시의, 현대의, 당대의, 도시의, 동시에 발생한’이라는 뜻이고, 명사로는 ‘같은 시대의 사람, 현대인, 동기생, 동년배의 사람, 같은 시대의 신문/잡지’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첫 글자를 딴 말이지요. 저는 컨템퍼레리라는 단어를 신학을 배우면서 알았습니다. 어떤 특정한 시대(동시대)에 존재했던 사상이나 조류(潮流), 인물 등을 가리킬 때에 많이 사용하더군요.
그런데 최근에 ‘컨템퍼레라이즈’(contemporarize)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런 단어가 있는가 해서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없더군요. 대신 ‘(…와) 동시대(동시기)에 두다(의 것으로 간주하다), 현대화하다, 시기/시대를 같이 하다.’라는 뜻인 ‘컨템퍼라이즈’(contemporize)라는 단어가 있더군요. 그런데 ‘컨템퍼라이즈’의 의미는 제가 마음속에 떠올렸던 ‘컨템퍼레라이즈’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전에도 없는 ‘컨템퍼레라이즈’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이 시대와 사람들은 지나치게 ‘컨템퍼레리’를 추구하고, 결국은 ‘컨템퍼레리化’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 또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물론 복음의 ‘내용’은 놔두고 그 ‘형식’만 바꾸면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까지도 어느 사이에 바뀌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이라는 내용’을 ‘동시대라는 그릇’에 담겠다고 하지만, 결국 ‘동시대라는 그릇’에 담겨있는 것은 복음과는 동떨어진, ‘변질된’ 것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루터도 칼빈도 그들의 ‘동시대’의 사상과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자 했기에 ‘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동시대화’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은 결코 복음의 진수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복음이라는 특별한 내용은 또한 특별한 형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꿔치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조금씩 변질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보수주의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지켜야 할 정수(精髓)를 지키는 것이 참된 보수(保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