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교수님을 모시고 이재문선생님께서 사비를 들어 28인승 리무진버스를 대절해 주신 덕분에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재문선생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길 안내와 가는 곳마다 그 곳의 내력과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신 최범석총무님께도 감사 말씀 올립니다.
대구 학교 앞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거창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먼저 들린 곳은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거창신씨(居昌愼氏) 세거지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제 큰사위놈이 거창신씨라서 (거창신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서)거창신씨는 경주최씨처럼 사대부집안도 아니고 양반집안도 아닐 거라는 선입감에 (다른 것은 다 빼고 성씨에 대해서만)조금 얕잡아 보곤 했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생각이 확 달라져 그 동안 사위에 대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큰사위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다음에 큰사위를 만나게 되면 “거창신씨집안은 대단한 집안이다.”라고 한껏 치켜세워 기분을 업(up) 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막 보다 더 외로운 바위틈 아주 작은 바위틈에 오막살이초가집 좁고 작은 집에서 창문 없는 집 건너편에 사는 거북이와 피라미와 강물을 보듬고 신선처럼 한가로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철쭉꽃 한 그루
쇠비름 씨앗보다 더 작은 민들레 씨앗조차도 자리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마분지두께보다 더 좁은 바위틈에 사는 철쭉꽃 두 송이
간혹 육십령 아래 월성계곡을 따라 슬금슬금 내려온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주고 지나갑니다.
간혹 덕유산 향적봉 마음씨 착한 비 무리가
철쭉꽃이 목마를 때쯤이면 어김없이 한달음에 신풍령을 넘고 북상초등학교를 거쳐 내려와 거리낌 없이 저고리 앞섶을 걷어 올려 목을 축여줍니다.
내 나이보다 더 많을 어쩌면 거북바위만큼의 나이일지 모릅니다.
바위를 뜯어먹고 사는 철쭉꽃 누가 여기에 데려다 주었을까요
다음은 수승대 관광단지에 도착하여 관광단지 안에 있는 수승대식당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닭백숙과 닭죽을 안주로 소주와 소맥과 막걸리 반주를 곁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문창반모임에서 즐겨 마시던 화랑(酒)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입에 넣으면 쓰기만 하고 독한 소주를 마셔야 했습니다. 나중에 김태신시인님께서 몰래 근처 상점에 가서 막걸리 두 병 백세주 한 병을 사오셨지만 저에게는 백세주 술잔이 한번밖에 돌아오지 않아 조금 서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만약 그때 화랑(酒)을 거나하도록 마셨더라면 아마도 멋진 명시를 한 수 지어 시인 흉내를 내면서 여러분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것인데.... ^^ 그런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건너편 넓적한 바위평상에 둘러 앉아 거북바위와 흐르는 시냇물(사실은 황강)을 바라보고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면서 각자 가지고 온 시를 한 수씩 읊으니 마치 시인 묵객이 되고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거기다가 점심식사를 할 적에 곁들인 입에 쓴 소주를 몇 잔 마신 탓에 그런대로 아직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내 마음과 눈이 진짜 시인의 눈과 가슴처럼 사르르 사르르한 것이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의 곱고 연한 연두색 치마저고리같이 이제 갓 태어나 100일된 나무이파리같이 아름답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또는 낯익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아름다워 보여 입에 쓴 소주를 마신 머릿속에서는 생경스럽게도 조금은 헛소리 같은 시상(詩想)이 떠오르고 가슴속에서는 시가 꿈틀꿈틀 자라나서 금방이라도 즉흥시 한 수가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서 옛 시인 묵객처럼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었었지만 쓴 소주를 마신 탓인지 입에서는 쓴 소주 맛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즐겨 마셨던 구수한 탁배기(農酒)를 적어도 서너 댓 뚝배기 쯤 마셨더라면 아마도 나는 시인묵객이 되어 거기 수승대에 살면서 천하에 제일 가는 명시를 지으면서 살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나는 이 좋은 명승지에 가서 시 한 수 읊고 동요 '시골집'도 한 가락 뽑았습니다.
정적靜寂 / 이기철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돌담에 박꽃이 피어나고 있다.
해진 무명옷 탱자나무에 걸려있고
산꿩이 울고
메밀싹이 돋는다.
댕댕댕 초등학교의 하학下學 종소리
바람을 앞질러 논길로 가고
일찍 내린 하얀 이슬이
소리 없이 풀섶에 스미고 있다.
1976년작
시집 「청산행」에서 가지고 오다.
동요 시골집
작사 홍은순 작곡 권길상
논둑 밭둑 지나서 옥수수밭 지나서
오솔길을 지나면 오막살이 초가집
박넝쿨이 엉켰네 조롱박이 달렸네
박넝쿨이 엉켰네 조롱박이 달렸네
2.기차길옆 지나서 외쪽다리 지나서
원두막을 돌치면 외딴집 한 채
지붕에는 고추들이 빨갛게 널렸네
지붕에는 고추들이 빨갛게 널렸네
여기는 거창창포원입니다. 봄이면 봄꽃이 피고 여름이면 여름꽃이 피고 가을이면 가을꽃이 가지각색으로 피고 겨울이면 하얀 눈꽃만 핍니다.
나는 무엇보다 정말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수양버들나무. 수양버들나무는 물가에만 살지요. 예전 내 고향 도랑가 빨래터에는 큰 수양버들나무 서너 그루는 봄이 되면 가느린 가지가 이파리 무게에 못 이겨 아래로 축 늘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들창포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물을 좋아하는 부들창포는 연못에 삽니다. 여름에는 염팡 둥근 아이스케이크(얼음과자)을 닮은 꽃인지 아니면 열매인지 모르지만
이피리 속에 단단한 속 줄기가 올라와 그 중간쯤에 달립니다.
수양버들과 부들창포를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글감은 얻었는지요?
난 아직 사진을 정리하지도 못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