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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단상
침대 머리맡에 솔방울이 한 쟁반 놓여 있다. 주문진 해변에서 주워온 것을 아내가 담아다 놓은 모양이다.
지난 주말, 결혼식이 있어 주문진에 다녀왔다. 간 김에 바닷바람 쐬며 동해의 해돋이까지 보고 왔다.
식장은 주문진 해변의 한 리조트에 있었다. 피로연장에 앉으니 마당 앞이 바로 해수욕장이었다. 예식이 파한 뒤에는 아예 거기 눌러앉았다. 예식장이 호텔인데 일부러 숙소를 찾을 게 뭐 있는가. 앉은 자리에서 숙소까지 해결했다.
다음날 아침 해돋이 보러 해변에 나갔다가 솔방울을 주웠다. 백사장 어귀의 솔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아내가 천연 가습기를 만들어 보잔다.
거무튀튀한 땔감쯤으로만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솔방울도 의외로 예쁜 데가 있었다. 연한 황갈색 비늘잎을 활짝 편 모습이 꽃의 자태 그대로다. 반질반질한 껍질이 햇빛을 받으니 금빛으로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도드라지지 않게 은근히 멋을 드러내는 은은한 황갈색의 자태에서 원숙한 아름다움 같은 게 느껴졌다. 영롱한 원색의 화려함보다 오히려 품격이 있어 보인다. 깨끗하고 모양 좋은 것으로 골라 비닐봉지 하나 그득 담아 왔다.
그런 다음 잠시 잊고 있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솔방울 쟁반이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솔방울이 달라 보였다. 크기가 반도 못되게 조그마해졌다. 주워 온 것은 만개한 꽃 같이 활짝 팬 것이었는데, 비늘이 몸통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아직 패지도 않은 것이었다. 색깔만 아니라면 영락없이 갓 맺힌 봉오리 모습 그대로였다.
물에 서너 시간 담가 두었더니 그렇게 변한 것이라 했다. 딱딱하기가 삭정이 같던 게 감쪽같이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사람도 저렇게 다시 젊어질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일주일쯤 지나자 본디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동안 펴지면서 증발한 물기가 방안의 건조한 공기를 축여주는 것이다.
그 뒤 또 며칠이 지났다. 책상 위에 뭣이 떨어져 있어 팃검불인 줄 알고 훅 불었더니 바람개비 돌 듯 팽그르르 원을 그리며 한참을 날다 방바닥에 앉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나무 씨앗이었다. 날개가 달려 있었다. 흡사 잠자리 날개 같았다. 솔방울 깊숙이 숨어 있다가 비늘잎이 열릴 때 흘러내려 쟁반 언저리에 여기저기 흩어졌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바람을 만나니 날갯짓을 하며 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소나무씨앗을 본 것도, 거기 날개가 달려있다는 것을 안 것도 처음이었다.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라는 뜻 아니겠는가. 제 자손을 퍼뜨리려는 솔방울의 안간힘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솔방울이 물에 젖으면 무거워진 씨앗은 품속에 고이 간직하느라 비늘을 닫았다가, 건조해지면 바람에 날려가라고 비늘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었다. 물기를 다 말린 가뿐한 몸으로 바람을 타고 더욱 멀리 날아가라는 간곡한 모정의 표현인 것이다.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까지 한 치의 빈틈없이 제 본분을 다한다.
어디 솔방울뿐이겠는가, 지불생무명지초(地不生無名之草)란 말이 허사(虛辭)가 아니었다. 풀 한 포기도 이름 없이, 까닭 없이 돋아난 게 없다.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도 지금 거기에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데에는 다 그 나름의 까닭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고뇌가 짐작이 갈 듯하다.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기를 머금어 오므라졌다가 반쯤 패어난 솔방울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새 암 집
마당에 샘이 있었다. 사립 안 오른편 담벼락 옆이 샘터였다. 마을에 샘이라고는 그것 하나였으니 우리 집은 ‘새암집’으로 통했다.
온 동네 사람이 이 물을 마시고 살았다. 우리 샘이 곧 동네 샘이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무시로 드나들었고, 우리 집 사립은 늘 열려 있었다.
샘터란 본디 아낙네들의 모임 터다. 여기서 소문이 퍼지고 여론이 형성된다. 자연히 우리 집이 안사랑이 되었고, 안방까지도 부녀자들의 모임 터가 되곤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샘이 있다는 것이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내게는 마을에서 우리 집이 가장 좋은 집이었다. 마을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거나 집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새암집’이라는 이름 하나 가지고도 그저 어깨가 으쓱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개천절 노래도 있지 않은가. 마을의 원조거니 생각했다. ‘새암집’은 내 계급장이었다.
고향을 떠나면서 그 자랑스러운 집을 남의 손에 넘겼다. 무매독자, 혈혈단신에 농사짓고 살 형편이 못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누대를 이어오며 정이 든 집이었지만 내 힘으로는 거기 두고 지킬 형편이 못 되었다. 그 집이 어떤 집인데 팔아버리느냐고 집안 어른들은 못 마땅해 하셨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슴 한 구석이 찔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놓고도 고향 마을에 들어설 때면 늘 ‘저건 우리 집이거니.’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새암집 손자’의 향수가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고향을 떠난 지 한 십년쯤이나 되었을까? 고향에 간 길에 ‘새암집’에 들렀더니 우물 위에는 뚜껑이 덮이고 그 옆에 펌프가 박혀 있었다. 지붕도 없어 먼지가 끼고 빗물이 그냥 들어가던 것을 위생적이고 편리하게 개량해 놓았다.
“잘 해 놨네!”
그러면서도 어쩐지 서운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일이 그리웠다. 둥근 토관으로 된 샘 테두리 위로 고개를 내밀면 깊숙이 말간 수면 위에 얼굴이 일렁거렸었다. 거기 대고 ‘아, 아!’ 하며 메아리를 즐기다가 노래도 불러보곤 했었는데…….
세월이 또 한참 지나더니 이제는 온 동네에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왔다. 마당도 아니고 아예 부엌에서 샘물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되었다. 마을 뒷산 중턱에 수원지를 만들어 집집마다 물을 보내주고 있었다. 더러는 집도 번듯하게 새로 지어 방안에 주방을 차렸으니 부엌이 아니라 방안에까지 수도가 들어와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새암집’의 영광은 이제 추억 속의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새암집’이라는 이름이나마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게다가 그 집 떠나온 지 벌써 몇 년이던가. 어깨가 움츠려들고 스산해지는 것이 나이 탓만도 아닌 성 싶다.
몇 일 전의 일이다. 옛 노래를 듣다가 혼자 빙긋이 웃었다.
‘물 길러 간다고 강짜를 말고, 부뚜막 위에다가 우물을 파렴.’
사설난봉가란 민요의 한 대목이다. 지긋지긋한 부엌살림에 푸념을 늘어놓다가, 어디 도깨비 방망이라도 하나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을 노래한 것일 터였다. 그 엉뚱한 옛사람들의 상상이 현실이 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세상은 참 좋아졌는데, 그게 못내 아쉬우니 이를 어쩌나. 고향 마을의 놀라운 발전 앞에서 나는 지금 서글퍼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상모시아 문학지 등단 축하 합니다 "문학의 강" (한국문학 종합지)
우리 시골 향 담은 수필 신인 문학상 받는 영광까지 축하 축하 - - -
시아 당선 소감 왈 : 70 목전에 신인 이라니 좀 쑥스럽지만 기분 좋습니다.
집안에 활기를 돌개 하는 일 모처럼 아내 자식들 앞에 체면이 좀 섯씁니다.
정감어린 글 잘 읽고 가네. 등단을 축하 축하합니다^.^~~~~~
금시초문이나 반가운 글이며 소식일세.
일전에 글 공부 하러 다닌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벌써 그리 되었나?
축하하며,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함세.
상모성, 가로늦게나마 문단등단을 ㅊㅋㅊㅋ.
헌데 신인대상이면 상금도 쏠쏠했을텐데 (x눈엔 x만 보인다고?) 다 콩나물 사는데 쓰신건 아닐텐데,
백돌이가 막걸리 고프다고 시끄럽게 굴지는 않는지?
축하인사에 꿀먹은 벙어리라니 이런 결례가 없습니다. 늦게나마 고맙고 정말 미안합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내놓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또 찝질한 일도 있고 해서 보내주시는 축하인사에 선뜻 고맙다며 나서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결례를 너그럽게 봐 주시기 바랄뿐입니다.
명색이 신인상이라지만, 상패 하나로 만족하라네요.
백수 신세 팔 자갈논도 없지만 기회봐서 소주는 한잔 합시다. 그나저나, 똥포형은 언제 보지요?
다시 한 번 미안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