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에 가면 왠지 좋은 일이 _문학기행>
봉평에 가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막연 하지만,
그 곳 소금같은 하얀 그리움들이 질펀한 메밀밭에 서면
어떤 일인가? 세상으로 빗장 걸려 있던 마음의 문 열리고
내내 갇혀 있던 허기진 보고품들의 자유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흰꽃들의 바다를 유영할 것이다.
바다의 광망(曠茫)처럼 마음이 부풀고, 이내 풋 메밀 알갱이처럼
자잘한 연애의 추억들이 붉은 대궁의 아릿한 피멍처럼
짜릿한 희열이 되어 한 동안 나 거기서 황홀할 것이다.
<붉은 대궁의 아릿한 피멍처럼_>
<봉평,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굳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달뜨고 마음의 빗장이 걷히는 것이다.
한 줄의 일기도 못쓰던 마음이 열리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어
다 나았던 신춘문예의 열병이 다시 도지고, 그 곳 추상(追想)만으로도
숨이 가빠오고 마음이 바빠져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행여 그새 꽃들이 다 지면 어쩌나, 봉평으로 치닫는 여행충동은
돌연한 성욕처럼 늘 화급해져 길을 나서게 되고. 그러니 어쩌리_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간에 나 봉평 저자에 멈춰 서 있다.
우두커니 멈춰 서서 어디부터 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어디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가 아니라 어디든 죄다 가보며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애잔한 숨결을 만져 보고 더듬어 보며
깊어 가는 가을날에 질탕한 치정을 꿈꾸는 탓에 잠시 뜸을 들여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잠시 생각의 기로일 뿐, 배에서 쪼로록 소리가 난다.
어디를 가 건 어디에서나 낯선 여행자들의 또 다른 즐거움은
그 곳 저자거리에 불쑥 찾아 들어 그 곳 토박 내 나는 먹거리를 앞에 놓고
알곡 탁배기로 배를 채우며 노닥대는 일.
제법 이름이 알려진 메밀막국수집에 들러 막국수와 전병, 그리고
메밀막걸리로 음식을 즐겼으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별로 맛이 없었던 기억.
여행지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의 운신이란 바람이 등을 떠미는 대로
발길을 옮기면 그만인데 오늘 따라 바람 한 점 없다.
하늘은 쾌청하고 쏟아지는 햇살은 영롱하다. 거기 싱그런 향토(鄕土)에
질퍽한 에테르가 코에 스민다. 해서 후각을 앞장 세워 발길을 옮긴다.
으레, 봉평에 와 국민의례 애국가처럼 한 번 꼭 불려져 들리는 곳,
허브농장에서 정제되고 조각된 인위의 꽃길을 질리게 배어오는
허브향기를 억지로 삼키며 느리게 걷고 있다.
나는 허브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발정 난 사슴에 암내처럼 건방지게
달려들어 후각을 마비 시키는 그 짙은 향훈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도 현란한 꽃들의 색깔 잔치에 눈이 호사다.
요리조리 꾸며진 조붓한 미로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같이한 문인들, 마냥 즐겁고 편안한 모습이 보기가 좋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땅에 조성되는 식물원, 농원들에서 자라는 꽃들이 거의 같다.
<유리조각같은 꽃들이_>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유리조각같은 꽃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감상을 강요하며 사람의 시각조차 왜곡시키고 있다.
은은한 향기와 빛깔로 수 천년을 이 땅에 더불어 살며
민초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었든 그 소박한 우리꽃들이 천대를 받고
향기조차 변조된 로봇같은 꽃들이 암세포처럼 이 땅에 번지고 있다.
어찌 통탄치 않으리_ 우울한 가슴을 쓸며 메밀밭으로 향한다.
<하얀꽃들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
메밀밭, 하얀꽃들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그리움 속으로 걸어간다.
잔잔한 달빛의 바다. 한줄기 바람 휘 불어 흰 포말의 자잘한 메밀알갱이들과 상면한다.
저 산 너머 큰 고래를 타고 현세의 허생원이, 조선달이, 동이가 악수를 청한다.
어이, 그간 잘들 있었나? 아무렴 잘 지내고 있지. 이내 바다는 닫히고
하얀 침묵만 세월의 시간을 말하며 서서히 소설의 허구속으로 침몰한다.
교교한 달빛의 바다. 다시 묵언의 순간. 성씨네 처녀가 옷고름을 풀며 웃음을 흘린다.
짧은 찰나의 대면, 그가 내 안으로 자리하는 순간의 통정, 쾌감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비릿한 배냇꽃향은 이 은근한 간통의 분비물인양 한결 흥건해 진다.
가쁘게 호흡하는 처녀의 숨결이 역동적으로 다가와 나른해진 기행자의 원기를 수혈한다.
빨간 정갱이를 들어내며 물방아간 뒤로 숨는 처녀의 생동에서 방전된 의식이 충전된다.
갇혀 있던 문체(文體)의 구속들이 날개를 달고 훨훨 산허리를 부전나비처럼 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찌 저리 표현할 수 있을까? 선생의 수채화 같은 문구(文具)를 훔치고 싶어
수년을 메밀밭에 갇혀 구속되었던 사내, 결코 그가 될 수 없음을_
흐뭇한 달빛에 마음을 비워 비로소 평안해지고 자유로워 진다.
<메밀 알갱이들과 상면을 하고>
아무려나, 전시(展示) 물레방아만 속사정도 모르며 하염없이 돌고
상술에 얽매인 쓸쓸한 초가에 가련한 디웅박이 불쌍하다.
너희들이 문학을 아는가?
메밀밭 옆으로 늘어선 상가앞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아낙들의 웩웩거림이 귓전에 와글 거린다.
언제부터인가 얄팍한 상흔에 변질된 "메밀꽃 필 무렵" 문학축제 표제가 서글퍼 진다.
<허생원이, 조선달이, 그리고 동이가>
<전시 물레방아만 하염없이 돌고_>
발길을 돌린다.
메밀꽃밭에서의 밀애를 뒤로하며_
선생의 생가. 흐드러진 메밀 텃밭을 지나 단아한 단칸의 기와집,
마당 앞 화단에 빨간 백일홍과 키 높은 해바라기가 배시시 반긴다.
나는 방금 메밀밭 속에서 성씨처녀의 통정으로 풋풋한 생동을 가슴에 담고 왔는데,
댁(宅)에서의 소설 밖 외면 모습은 쓸쓸하고 허전한 가식 생동의 처연(悽然)함 뿐,
선생의 주술같은 문학혼을 설명해 줄 사람도 하나 없는 생기 잃은 쓸쓸한 빈집에서
고단한 기행자 사진을 찍는다. 돌아 나오는 발길이 씁쓸하다.
<이효석 선생의 생가>
<마당가에 핀 벌집 다알리아>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 팔석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팔석정, 팔석정은 조선 전기에 시와 글로 유명했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임시
이곳에 이르러 수려한 경치에 취한 나머지 정무도 잊은 채 여드레 동안
신선처럼 지내다 갔다는 데서 얻은 이름 이랜다.
노송과 기암괴석 그리고 시원스레 굽이쳐 흐르는 면경수,
이것들이 그려 내는 한 폭의 동양화, 예가 바로 도솔천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 바위마다 각인된 잘난 사람들의 이름석자들
얼마나 오래 살며 부귀를 누리고 싶었으면 저 웅대한 바위에 상처를 냈을까,
찜찜하고 어정쩡한 마음을 풀어 계곡물에 흘려 보낸다.
마음이 맑아진다. 버선을 벗어 발을 담그고 물장난을 친다.
시를 짓는, 글을 짓는 학도들이 갑자기 유년의 아이가 된다.
좌정하고 앉아 "청산리 벽계수야" 쯤은 읊조려야 격일 진데
바지가랭이 걷어 올리고 송사리를 잡으려, 피래미를 잡으려,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히히덕 댄다. 낙낙댄다.
늦은 하오에 익은 햇살이 난반사로 흩어지며 봉평에 허공을 산뜻하게 채색한다.
<노송과 기암괴석 그리고 시원스레 굽이쳐 흐르는 면경수>
이제 나 돌아갈 것이다. 작년에도 또 재재작년에도 왔었을,
그리고,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와야할 이 봉평에서 비록 경제적 논리로
어설프게 늘어나는 상술이 가슴 아플지라도, 내가 옮으로, 다녀 감으로
한 평, 한 평, 땅뙤기에 메밀이 더 심어지고 하양꽃이 산허리를 덮어
먼 하늘 은하수가 되는 날, 님(이효석)에 대한 하얀 그리움들을 밤을 새워 연서로 쓰면
달빛이 슬프게 시린 메밀꽃 피는 가을날에 행여, 네 가슴에도, 내 가슴에도,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 시어(詩語)들이 무수한 별이 되어 빛나지 않겠나?
이 땅에 사람들이 모두가 다 시인(詩人)이 되고 소설가가 되는_
(아, 소설을 읽어 보셨나요? 근데 왼손잡이는 유전이 아니라던데_)
< 2004. 깊어 가는 가을날에. 백암 >
첫댓글 몇년전에 한번 가본적 있었어요. 봉평의 메밀밭 앞에서 메밀 국수랑 메밀전도 먹어봤구...참 좋은 날들이었지요. 저두 다시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