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 명 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요, 오늘이다.
빛고을노인건강타운 개원 3주년, 문학반(글쓰기/회고록)에서는 매년 단합 기행을 간다.
죽음이 있기까지 조각 같은 생의 시간 속에 나는 어떻게 비춰 보일까?
인생은 반복이 없는 하루하루가 현실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자신의 실천이요, 행동이기에 일인일선 봉사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고, 놀아 줄 수 있다면 삶은 여유롭고 풍요로운 향기 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선구자의 희생으로 사회가 밝아지고 정화되는 고귀한 사랑은 문학반의 하나 되는 마음이요, 행복이리라. 회장님 총무님의 노고가 있기에 송정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로 좋은 이들과 함께하기에 순식간에 도착한 웃음열차~
즐거운 점심을 먹고, 유람선(2호 승선)을 타고 고하도- 달리도- 외달도- 율도-달리도- 목포 왕복 경유 선상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의 조화 속에 시원한 바람과 매실주에 흥건한 입담과 선상에서 부르는 옛 노래 합창과 은발의 향기 3집 출간에 15명의 의견을 토론하다보니 2시간30분이 눈 깜짝할 시간이다.
“바다에는 물이 있어 아름답고”
자연 속에는 산의 푸름이 아름답다
문학인은 글이 있어 보람되고
편집인은 눈이 밝아야 보배로다
우리들의 깊은 인연
그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
은발의 향기로 발자취를 남기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영원한
추억 길이 남으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유달산에 도착하니 노적봉과 이순신 장군동상이 보인다. 조각가 탁연화(함평출신) 작품이고, 오른쪽 글은 박정희대통령 글로, 유달산 첫 번째 정자에 오르면 서희환선생(19341.5-1995.4.19)한국서예가 대한민국 최초의 작가(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작품소장)의 오석에 새긴 흔적이 남아있다.
5-600백년의 긴 역사를 간직한 목포는 인구 6만의 호남6대 도시로 무안반도 서남쪽 끝에 위치한 서남해안 중심 항구도시이다.
예술인 정치인 스포츠인등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목포는 삼한 중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가혜(勿可?兮)군,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에는 연주(緣州)에 속했고, 고려시대 946년에는 물량 군으로 개칭했고, 995년에는 해양도 나주목, 무안현(신안군+무안군)에 속했다 한다.
곡창지대인 목포는 중국과 일본(후쿠오카, 나가사키) 지리적 여건의 교역로 일제강점기에는 호남 쌀이 집결되어 일본에 공출하는 물동량이 되었단다.
1895년 나주목, 무안 현에서 독립하여 목포진(목포영), 만호청에는 외국인들이 주류, 목포개항 1897년 10월1일, 1914년 호남선 철도개통(대전-목포), 1897양동교회는 전남최초 교회로(문화제114호), 서울단성사, 광주극장, 목포에 극장이 있었다니 예술의 고장 인 듯, 192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남아 있다. 목포는 근대목포(1897-1945)와 현대목포(1945-현재)로 이루는데, 1968년-78년 간척공사로 육지로 연결 소삼학도 중삼학도 사이에 5개 다리연결로 2007년3월1일 개방, 육지와 강이 연결되는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지고 있다. 21세기 목포 신항 무안 국제공항 건설등 사회기반시설에 투자 대불 삼호공단과 서남해안시대의 중국 상해 홍콩 등 중국 동남권과 연계 발전하고 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목포의 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화예술회관, 문예역사관, 목포문학관, 남농 기념관, 옥공예전시관, 수중문화제등등이있지만,문학인이기에한국여성문학의대모로알려진박하성(1904.4.16-1988.1.30) 본명은 박경순 목포 죽동 출신으로 목포 정명여학교, 서울숙명여고보, 일본여자대학 영문과졸업, 우리나라 최초 문학가는 장편소설: 백화, 사랑, 고개를 넘으면 등 18편과, 중편소설: 햇볕내리는 뜨락, 단편소설: 홍수전후, 잔영, 휴화산, 팔삭동, 자유원예, 수필집:추억의 파문, 순간과 영원 사이, 자서전: 눈보라의 운하 등등 후배양성(교사)과 창작활동에 존경받은 한국문학상, 예술원상, 목포문학상, 이대문화공로상, 은관문화훈장, 3.1문화상 수상 박화성 문화기념관(1991)건립 천승현 승세 승걸 삼형제와 이규희씨가 관리중이다. 민족주의적 역사성이 강한 작품은 여성 문화의 선구자로 문학 활동을 하는 문인의 중책을 느끼게 한다.
불멸의 가수 이난영(1916-1965)은 (본명은 옥순, 호적상 옥례) 목포 양동 72번지 출생으로 1923년 초등학교 입학하여 4년 중퇴 아버지는 술병으로 어머니는 제주에 끼니를 구하러 가서 오빠 이봉룡과 어머니 찾으러 나섰다가 제주 순회공연 온 극단에 추천 태양극단 정식 맴버, 오케이레코드사 이철 사장의 힘으로 1933년 불사조, 1934년 봄맞이, 1935년 목포의 눈물로 유명세를 날렸다 한다. 하지만 부모 복이 없으면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다 했던가! 1937년 김해송(평남)과 결혼 7남매를 낳았지만, 남편은 김은하 연예인과 미쳐있고, 힘든 생활로 남인수와 사랑에 빠져 자식들은 미국에 거주 김시스터스 김보이스로 활동 중이란다
극작가 차범석과 소설가 박화성선생의 노력으로 생가 터에 공원이 조성 되었고, 유달산에 노래비가 목포의 눈물을 노래한다.
<목포의 눈물 >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김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노래하며 열차에 아쉬움을 담고 다음을 기약하며 찔레꽃 향기 무르익은 녹음 속에 무사히 광주에 도착했다.
참석자
(회장:위종대, 총무 정성심, 진해룡, 송용석, 안진, 권명례, 박동신, 정송무, 정정순, 오명순, 김명대, 주춘택, 김의쟁, 김항국, 이명란)120605
첫댓글 유달산 하면 목포의 눈물이지요. 즐거운 여행이었네요~~
여행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셔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동행들 하셨네요.
부럽습니다.
아름다운 목포의 진한 삶의 물결 !!
고스란히 내게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