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이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공식 역사가이기도 한 경제사학자 해롤드 제임스가 지난 200년간의 경제사를 통틀어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대전환을 가져온 지점들을 제시하는 책이다.
184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까지 동시적으로 발생한 주식 시장의 쇼크, 1880년대에 있었던 금융 혼란의 시기,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있었던 경제 위기, 대공황,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 2007~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가장 최근 코로나19 위기 등 세계 경제에 거대한 전환을 일으킨 7가지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각 사건이 어떻게 노동과 상품과 자본 시장의 국경을 초월한 통합을 촉진했는지 혹은 탈세계화를 촉진했는지 보여준다.
“현대 경제에서 ‘위기’는 어떤 의미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위기를 ‘좋은 위기’와 ‘나쁜 위기’로 나누면서 경제 위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장과 세계화를 확장시키는 경제 위기는 '좋은' 위기이며 세상을 더 작고 덜 번영하게 만드는 경제 위기는 '나쁜' 위기라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겉으로 보기에 경제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실물 경제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깊이 파고 들어가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석유 파동과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공급 부족으로 촉발된 붕괴로서 각국의 자원 확보를 위한 노력의 결과로 경제 세계화가 촉진되었고, 후자는 수요 부족으로 인해 촉발된 위기로서 시장이 위축되고, 긴축 조치가 시행되었으며, 정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짐에 따라 세계화가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200년 동안의 현대사를 종횡무진하며 굵직굵직한 경제 위기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에 대전환을 가져온 7번의 경제 위기를 알고 나면 좋은 위기와 나쁜 위기를 구분하게 되고,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기회인지 몰락의 징조인지도 판단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랍들은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를 단순히 겪어낼 뿐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무너진다.
이 책은 반복되는 위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음을 예측할 수 있도록, 단순히 시대를 고찰하는 것을 넘어 각 위기를 대하는 위대한 경제학자와 정치 지도자들의 행적까지 좇는다. 마르크스, 스탠리 제번스, 하이에크, 레옹 발라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카를 멩거, 밀턴 프리드먼, 벤 버냉키, 래리 서머스, 라즈 체티는 위기 상황에서 어떤 경제적 사고를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리고 그들의 결정은 지금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가?
위기는 빨리 지나가고 잊어야 하는 나쁜 기억이 아니라, 분석하고 곱씹고 공부해야 할 중요한 소재이다. 경제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는 경제 대전환은 위기의 전조일까, 기회의 시그널일까?
실체를 모르면 두렵다. 그러나 알면 대비할 수 있다.경제 위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주요 통찰 5가지
① 세계화의 역행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세계화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 지구적인 전염병으로 인한 국경 봉쇄, 전쟁으로 인한 단절, 심화되는 경제 블록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특정 지역의 기근과 기아 등 자원이 적재적소로 오가지 못하며 생기는 다양한 문제점이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세계에 안겨주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해롤드 제임스는 이 시나리오가 1840년대 말, 제1차 세계 대전 중,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이후 등 수세기에 걸쳐 반복되어왔다고 짚는다.
1970년대 중동은 전 세계 에너지 안보 전쟁의 중심지였다. 당시 세계인들은 자원이 적대적이거나 악의를 가진 다른 세력에 의해 통제될까 두려워했다. 이로 인해 국내외 정책은 철저히 자국 중심으로 짜여졌으며 수많은 갈등이 불거졌다. 그렇다. 자원에 대한 위협은 비단 오늘날에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있었던 반복되는 위기이다.
② 세계화에 뒤따르는 경제 활황은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지 않고 오히려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세계화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계화로 인해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게 되면 비참함과 빈곤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기고, 무역을 통해 더 저렴한 제품을 풍족하게 이용하게 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상황이 더 많이, 자주 벌어진다. 이민자들이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이주 노동자의 존재로 인해 모든 사람의 임금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이민을 단속하라는 정치적 압력이 생긴다. 같은 원리로 수입품에도 높은 관세를 매기라는 압박이 가해진다.
세계화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으로 인해 우리는 세계화를 추진하는 순간, 세계화를 철회하는 경험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래서 세계화로 인한 경제 활황을 기대한 이들은 동시에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현재 우리는 세계화 역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경제는 탈세계화의 길로 가고 있다. 팬데믹이 해제되고 봉쇄되었던 국경이 열리면서 다시 세계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과거처럼 거의 동시에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것은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과거에도 여러 번 반복되었던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③ 공급 부족은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부족’은 제도적, 기술적 혁신의 원동력이 되며, 종종 오래된 기술이 혁신적인 방식으로 재도입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롤드는 책에서 3가지 예시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첫 번째 사례는 19세기 중반에 있었다. 1840년대 유럽은 기아, 부족, 비참함의 시대였다. 비가 많이 왔고 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물들이 곰팡이에 감염되어 흉작이 들었다. 영양분을 감자에 의존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대기근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리고 기근에 대비해 어떤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정부와 지도자들은 기술 혁신을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에 채택된 기술은 증기 기관이었다. 18세기 초에 개발된 증기 기관은 대부분 광산에서 물을 빼내는 데 사용되었다. 증기 기관을 이용한 짧은 철도 노선은 있었지만 대규모 네트워크는 없었다. 그러나 기근이 심각한 지역으로 식량을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에 증기 기관을 활용한 교통수단이 급속히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구세주처럼 등장한 철도 기관차와 증기선은 19세기 중반 유럽에 식량과 물자, 자원을 보급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칭송받았고,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1850년대와 1860년대 세계 경제는 상당히 빠르게 발전했다.
두 번째 사례는 석유 위기 이후인 1970년대에 있었다. 세계 유가가 크게 상승하고 주유소가 부족해졌고, 사람들이 특정 요일에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람들은 세계 에너지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컨테이너선이 큰 주목을 받았다. 최초의 컨테이너선은 1930년대에 개발됐으나 해상운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컨테이너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이번에도 부족 현상을 기술이 보완함으로써 세계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 사례는 2020년에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졌고,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1990년대에 개발된 mRNA 백신 기술이 갑자기 주목받게 되었다. 이전까지 이 기술은 매우 희귀한 열대성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떠오르면서 공황에 빠졌던 세계와 세계 경제를 구해냈다. 치료제 부족 현상을 기술이 보완함으로써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었다.
④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란 없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다양한 위기에는 다양한 대응이 따라야 한다. 저자는 세계 경제사에 대전환을 가져온 경제 위기의 계기를 공급 충격(1840년대, 1970년대 등)과 수요 충격(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등) 둘로 분류하고,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는 위기인가에 따라 각각 다른 경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수요 충격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대공황 시대에 수요 충격의 대응책을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통해 정부가 경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은 경제학자, 정부, 유권자가 경제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공급 충격의 대응책은 미시경제학이다. 정부나 중앙에서 총가격을 조정하는 방식보다는 공급 정도를 살피면서 상대 가격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인센티브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재정 부양책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용품, 보호 장비, 백신과 같은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문제였다.
이렇게 경제 위기에는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 공급 충격에는 특정 민감도에 초점을 맞추는 미시경제학이 적합한 대응이고, 수요 충격에는 정부가 재정 부양책을 실시할 수 있다는 큰 비전인 거시경제학이 적합한 대응이다.
⑤ 위기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위기 속에 있으면 암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좀 더 희망을 갖고 의도적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7번의 위기와 대전환 속에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경제학자 케인스는 “상황은 나아지기 전에 먼저 악화된다. 거기에 기회가 있고, 희미한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인간은 현재가 암울할 때 가장 많은 것을 배운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순간에 있다.
나는 시장 혁신이나 세계 경제를 좌우할 새로운 제도가 ‘공급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공급 위기는 식량이나 연료와 같은 생활 필수품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상승하며 새로운 생산 및 유통 채널이 필요한 순간을 말하는데, 공급 위기 상태에 처하면 사람들은 경제 프로세스를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때 정치권에서 공급 위기로 인한 대대적인 가격 변동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면 기업과 정부의 혁신으로 이어져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경직된 체제를 갖고 있다면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만다. 헝가리의 뛰어난 경제학자 야노스 코르나이(Janos Kornai)는 물자 부족 현상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비축 현상 및 기능 장애가 중앙계획경제(공산주의)를 약화하다가 결국 무너뜨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_서문. 물가는 어떻게 세계화의 형태를 결정짓는가 중에서
사회 전반에 치명적인 수준의 부정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했다. 식량위기는 곧장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1847년에 투기꾼들이 계속 물가가 급등할 거라는 예상에 돈을 걸었지만 실제로는 수확량이 풍부한데도 곡물 수입량이 많았으며, 금융 상황이 악화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이와 무관한 철도 건설 투자자들이 몰렸다가 철도 주식이 붕괴하면서 또 다른 위기가 발생했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금융 대응은 정책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아무튼 금융위기와 식량위기가 상호작용하면서 전체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금융위기는 당시 전 세계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했으며, 결국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극심한 식량 부족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는 북미와 인도까지 빠르게 확산했다.
금융위기의 한 가지 특징은 투기꾼, 일반 은행, 통화를 발행하는 은행, 정부, 신문, 쉽게 속아 넘어가는 대중과 병들고 굶주리는 사람 들까지 모두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_1장. 대기근과 대반란: 식량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중에서
이 시대를 ‘대공황’이라 표현하나, 이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표현 때문에 주가에 몇 가지 극적인 변화 또는 큰 변동이 일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873년에 북미와 중부 유럽의 주식시장이 거의 동시에 크게 몰락함에 따라 창업자의 기간(Grunderzei)에 맛보던 행복과 희열도 끝나버렸다. 5월 5일 빈이 붕괴하자 공황이 시작되었고 5월 9일에 은행과 일부 투기성 철도기업의 주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1873년 9월 18일에 제이 쿡(Jay Cooke)이라는 주요 철도건설업체가 도산하면서 미국도 위기에 봉착했다. 런던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10월이 되자 베를린 시장도 폭락했다.
어느 지역이든 공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미국의 현대 평론가는 이렇게 회고한다. “월스트리트에 닥친 공황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를 예견하지 못했고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상인들의 재산을 한 시간 안에 쓸어가 버리고, 투기꾼들을 몰락하게 만들고, 과부와 고아들을 망하게 하고, 농부들을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고, 국가의 모든 산업과 기계 분야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조합이 일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_2장. 크래시와 한계 혁명: 금융 혼란의 시기 중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계획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결핍과 고난이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한 충격은 전면전을 벌이려고 계산하거나 계획한 것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오래전부터 각국은 상대방을 굶겨 항복시키는 봉쇄 전략을 마련했다. 물자 등의 부족을 초래하는 것을 주된 군사적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승리를 좌우했다.
물자 등이 부족하면 즉시 위기가 닥친 것처럼 느껴지고 구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각종 시위가 발생하며 폭력적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구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므로 정책 입안자가 서둘러 결정을 내리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쉽다. 게다가 물자 등의 부족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구제 방안을 찾으려고 다 같이 모여서 조직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 이런 과정에서는 대개 가장 목소리가 크고 영향력이 넓은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데,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분파주의가 발생하고 결국 정치적 붕괴로 이어진다. _3장. 제1차 세계대전과 대인플레이션: 경제사 최악의 위기 중에서
공황이라는 말 앞에 ‘대’를 붙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중부 유럽에서 시작하여 전염병처럼 퍼져나간 일련의 금융위기였다. 1931년 여름에 발생한 유럽 대형 은행의 몰락은 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해 각국 중앙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정책 딜레마가 발생했다. 이 일은 미 경제에 새로운 쇼크로 다가왔으며, 자금 중심의 몇몇 주요 은행은 투자자나 예금자 패닉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유럽발 은행 위기는 결국 미국의 불황을 더욱 심각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당시 미국의 금융 기관 대다수는 규모가 작은 지역 은행이었기 때문에 위기에 취약했다.
안타깝게도 미국 대공황에 대해 설명할 때 유럽의 몰락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제대로 알려주거나 그로 인해 금융 불안이 확산했고 은행들이 대출을 요청하게 된 과정을 다루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실은 1931년 여름에 발생한 국제적인 공황이 미국에 심각한 경기 불황을 일으켰고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_4장. 대공황: 세계화의 종말 중에서
1980년대의 일반적인 흐름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개방성을 높이는 것, 다시 말해서 세계화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안정성을 창출하고 느슨하게나마 지적 활동을 지원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핵심은 시장 운영을 위해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정책 형성이라고 하기보다는 프리드먼의 정책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프리드먼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몹시 안달했지만, 하이에크는 그런 생각조차 멀리하려던 사람이었다.
프리드먼이 남긴 교훈은 인플레이션을 다루는 기술 지침으로는 유용하지 않았으나, 자기가 최고의 정책과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안일한 태도에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 비즈니스와 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프리드먼은 또한 혁신의 원동력이 되는 경쟁에 대한 단순한 비전을 강력하게 설명했는데, 이 점에서는 하이에크와 의견이 완벽히 일치했다. 이것은 특히 개방과 학습을 통해 기술과 생산을 현대화하는 과제와 관련이 있었다. _5장. 대인플레이션: 풍요와 과잉이 불러온 위기 중에서
모든 사람이 중앙은행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움직이기를 기대했다. 따라서 중앙은행과 같은 기관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분배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러한 상황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전 세계 연결성이라는 핵심 메커니즘, 달리 말해 세계화의 핵심 메커니즘은 점점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세계화는 서로 경쟁하는 비전에 따라 분열되고 있었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이 주도한 다자간 무역을 개방하는 비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떠올랐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추진한 육로 및 해로 인프라에 중점을 두게 되고, 공급과 물류는 세계화 통제 및 새로운 정치권력을 반영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와 같은 비전은 공급 충격이 위기 대응을 좌우하는 새로운 위기가 오면 더욱 확장될 수 있는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_6장. 대침체: 지나친 세계화가 초래한 위기 중에서
질병이 확산하자 경제와 금융 부문에 즉시 빨간불이 켜졌다. 정책 목표는 혼란에 빠진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문제들을 동시에 다 처리해야 하는 거냐는 의문이 있었다. 봉쇄가 시작되자 공급은 더 어려워졌다. 경제가 침체할수록 팬데믹은 더 악화할 수 있는데, 경기침체가 빈곤층에 특히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빈곤층은 비좁은 주거 공간, 열악한 위생 상태 및 오염물질에 대한 노출 때문에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상황이 대공황이나 대침체 시기에 경험했던 전통적인 수요 중심의 경기침체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전반적으로 수요는 줄지 않았다. 서비스와 상품 중에서 감염 위험의 증가와 관련될 수 있는 것들의 수요만 감소했다. 봉쇄로 인해 여행이나 외식이 제한되기 전에도 이러한 분야의 소비가 급감했지만, 내구성 소비의 구매는 증가했다. 집마다 식품을 보관하려고 더 큰 냉장고나 냉동고를 구했고, 청소부를 고용하지 못하는 대신에 자동 청소 도구를 매입했으며 오락을 즐기기 위해 다양한 전자 제품을 찾았다. 여러 가지 서비스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에 각종 제품에 대한 수요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훨씬 더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이 계속 제 기능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금융위기에 대응할 역량을 우려했던 다국적 정책 공동체가 이룩한 주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비상사태였기에 2008년 위기를 넘기려고 개발한 중앙은행 방침을 대대적으로 확장해야 했다. 2020년 3월 20일부터 주식시장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는데, 저가 매수자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책 방향이 지속될 것임을 깨달았다.
유포리아는 과거에 겪은 주식시장 거품 현상처럼 보였다. 기술주에 돈이 쏟아졌는데, 소비자와 기업의 행동이 달라지면서 영구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기술주’와 도지 코인Doge-coin과 같은 대체 통화에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전적인 19세기 투기 대상에도 투자하는 사람이 많았다. 헤지 펀드에서는 캔자스시티 서던 철도를 놓고 캐나다의 철도 업체인 캐나다 내셔널과 캐나다 퍼시픽이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_7장. 대봉쇄: 세계화가 남긴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