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월세상한제 실패? 지주 파업이 문제…“부동산 사회화만이 투기 종식”
현지에선 부동산 대자본 몰수 운동 2라운드...오는 9월 주민투표 목표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임대료 상한제(Mietendeckel)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조선, 한경 등 국내 우익언론들이 일제히 받아썼다. 그러면서 이들은 독일 모델을 본 따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한 문재인 정부를 비웃었다. 하지만 이들의 논조는 ‘빌트’와 같은 독일 우익 언론과 동일했을 뿐, 출처의 허점이나 실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를테면, 부동산 소유자들이 처음부터 임대료 상한제에 어깃장을 놔 사회 문제가 돼 왔고, 그 한계 때문에 애초 부동산 대자본을 몰수해야 한다는 운동까지 일어났었다는 점이다. 베를린에선 현재 부동산 대자본을 몰수해 사회화하기 위한 ‘도이체보넨 엔트아이그넨(Deutsche Wohnen & Co enteignen!)’ 운동이 막바지 고비를 앞두고 더욱 불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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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4월 6일 베를린 주거권 시위 현장 (좌)“주거공간으로 투기하는 것은 작은 아이들을 뜯어먹는 것이다!” (우)“임대 상어는 나가라!” [출처: 융에벨트] |
독일에서 임대료 상한제에 역효과 논란이 일기 시작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그러나 친 기업 독일 싱크탱크 독일경제연구소(DIW)가 지난 23일(현지 시각) 주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여론을 더욱 휘저어 놓았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2월 임대료 상한제 시행 이후 베를린 시내의 평균 월세가 7-11%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반면, 베를린 시내 임대 물량의 50%가 감소했고, 인근 포츠담의 경우엔 12%까지 상승하는 등 주변 도시의 임대료가 오르는 역효과를 냈을 수 있다고 제기했다. DIW는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임대하는 대신 무임대 상태로 유지했기 때문에 베를린 도시 안에서는 임대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그 여파로 주변 도시의 부동산 시세도 올라갔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나오자, 독일 내 우익 정당이나 언론, 주택 소유자단체들은 일제히 이를 인용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이 상한제에 몽니를 부려온 동맹에 유명 연구소가 날개를 달아준 꼴이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를 환영한 이는 많지 않다. 한편에선 연구 결과가 가설적이며 조사 근거도 허술할 뿐 아니라 실제적인 주거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대표적으로, 베를린세입자협회(BMV)는 24일 “DIW 연구 결과를 비판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DIW가 임대료 상한제 비판가들의 코러스에 합류한 것에 유감”이라며 “우리는 유명한 연구소가 낸 이 결과가 가치 없다고 본다.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선 극히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BMV가 낸 성명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코로나 시기와 겹친 조사 기간이나 베를린 인구수의 변화, 포츠담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 모두 변변치 않다. BMV는 베를린에서 임대료 상한제가 시행된 뒤 바로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해 “연구팀도 임대 공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확실치 않다고 전제했는데도, 어떻게 이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코로나로 이주자 비율이 급감해 베를린 인구 비율이 줄었는데도 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베를린 인근에 위치한 포츠담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또한 인구 증가 이유와 임대료 문제의 상관관계가 분석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오히려 연구의 추정과는 다르게, 베를린을 제외하고 인근 도시 임대료가 상승한 것은 임대료 상한제의 성과로 볼 수 있다는 입장도 냈다. 필리프 묄러(Philipp Möller) 베를린세입자협회 대변인은 독일 사회주의 언론 <융에벨트>에 23일(현지시각) “지난해 베를린 임대주택(의 가격)은 안정화됐다. 기쁘게도 베를린은 이제 다른 대도시와는 다른 곳이 됐다”라는 논평을 냈다.
부동산 소유주들의 집단행동과 탈법
부동산 업주들과는 다르게, 세입자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세입자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베를린 주택 소유자들이 약속한 듯 임대료 상한제에 어깃장을 놓거나 이를 회피해 이득을 보는 사례가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선 원칙적으로 임대주택의 경우, 3개월 이상 비워두면 안 된다. 그러나 독일 진보언론 <타츠> 1일 보도에 따르면, 일부 주택 소유자들이 임대료 상한제에 반발하여 임대를 하지 않는 사례가 지난해 크게 증가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리모델링을 한다고 신고하는 등 임대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데, 베를린 정부도 제재에 소극적이어서 문제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독일 우익 기민당과 자민당이 연합한 단체와 부동산이익단체 등 2개 단체가 이 개혁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낸 헌법소송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이 판결이 위헌으로 나올 경우, 임대자들은 새로운 투자비까지 계상하여 임대료를 평방미터당 15유로까지 더 받을 수 있다. 또 일부는 가구 등 설비나 공과금을 이유로 실제 계약 금액에 웃돈을 요구하는 이른바 ‘그림자 계약’의 문제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베를린세입자협회는 임대료 상한제가 아니라 이를 회피하려는 부동산 소유주와 이를 보고만 있는 정부가 문제라고 본다. 베를린에선 최근 투기적인 무임대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레어슈탄트 인 베를린-미테(Leerstand in Berlin-Mitte)’, ‘미텐반진노르트(Mietenwahnsinn Nord)’ 등 단체까지 결성됐다.
“부동산 사회화만이 투기 종식”
또한 베를린에선 임대료 상한제 시행 1년을 경과하며 오히려 한시적이며 일면적인 개혁보다 부동산 대자본을 몰수해 모두의 주거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26일, 오는 9월을 목표로 부동산 대자본 몰수를 위한 주민투표 운동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다시 관심이 늘고 있다. 이 운동은 애초 지난 2019년 6월, 독일의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 ‘도이체 보넨(Deutsche Wohnen AG)’ 등 3천 채 이상 대자본이 소유한 주택을 정부가 몰수하고 공공기관을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자라는 취지로 제기된 주민발의 운동이다. 이 주민발의안이 가결될 경우 베를린에선 모두 주택 24만 채가 몰수된다. 베를린에서 주민발의가 성사되려면 2만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하지만, 7만7천여 명이 이 발의안에 서명할 만큼 부동산 대기업 몰수 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베를린시의회(사민당 주도 좌파당·녹색당 연정, 적적녹)가 이를 수용했을 경우 원내에서 처리될 수 있었지만, 지난해 9월 베를린 시의회는 이 발의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같이 연정을 구성하더라도 사회주의 좌파당은 이 발의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사민당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몰수운동은 오는 9월 독일 연방총선 일, 동시 투표를 목표로 다시 주민투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몰수운동 참가자들은 4개월 안에 17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여건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최근 조직된 ‘레어슈탄트 인 베를린-미테’를 비롯해 다양한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어 상황은 희망적이다. 최근 독일 통합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나 독일 금속노조 이게메탈(IG Metall)도 지지 방침을 밝혔다.
‘레어슈탄트 인 베를린-미테’는 <타츠>에 1일 주민투표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임대료 상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거대 민간 부동산재벌의 사회화를 지지한다. 사회화만이 투기를 완전히 종식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