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 목사의 어머니 말을 들어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감람산, 집터골, 다리골, 기도굴 지역을 다니며 나물을 캐다가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나물을 팔러 다녔습니다.
월명동에서 왕복 50리 이상 되는 길을 걸어, 열두 마을을 다 다녀도 나물 한 덩이도 팔리지 않아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새벽, 집에서 나갈 때는 굶고 있는 자식들에게 "얘들아. 이것 팔아서 양식 사와 밥해줄게." 하고 희망을 주고 떠났는데 나물 한 덩어리 못 팔고 그대로 돌아오니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괴로웠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속이 쓰려 기다리고 있는 어린 자식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사랑은 해줄 수 있어도 도저히 먹여 살릴 길이 없다고 포기하셨답니다. 고생시키며 사느니 '너희들도 죽고 나도 죽자.' 하고, 나물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로 목골 저수지 깊은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나물도 물에 다 빠져버리고, 어머니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순간 생각하기를 ‘죽느니 이 독한 마음을 가지고 살 때까지 살자.’ 하고 기적적으로 다시 물에서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와보니 자식들이 힘이 없어 다 자고 있더랍니다. 자식들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생각한 것이 ‘동네로 가보자. 거리에 나가서 죽 한 끼라도 구걸하러 석막리 마을로 가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뜬 눈으로 새벽 일찍 석막리에 가서 아는 집에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쌀 싸라기 한 바가지와 감자를 주어 그것을 가지고 와서 죽을 끓여 자식들을 먹이고 위기를 넘겨 며칠간 삶을 버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또 나물을 팔러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얻어다 먹이며 살았습니다. 모두 가난했던 시대였기에 나물을 팔려고 해도 나물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쑥을 뜯어다가 가루 한 주먹을 넣고 죽을 끓여 먹던 시대였습니다.
첫댓글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글이라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