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개역개정판)
6월 10일은
100여년전 일제의 감시를 뚫고 당시에도 대립했던 좌우 세력이 순종 황제의 장례식을 기하여 만세 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날이고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아어러니하게도 6월 10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종철 당시 서울대학생, 이한열 당시 연세대학생의 사망일이 아니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의원(전국구)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는 날이었다. (2019년 6월 10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장로의 소천일이다.)
이날에 맞추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국적으로 시위가 발생했다.
민주열사로 평가받고 있는 당시 두 사람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당시 시위에 참석했었고
부산은 당시 시위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시위에 참석했던 것은 아니었고
당시를 추억하는 분들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는 싫더라도,
소위 운동권 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시절을 다 잊어버리고 살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냐? 북괴(...)만 좋은 일 시킨다. 이런 의견들도 있었다고 했다는데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한다고 했다.
당시 민주항쟁에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사회적 참여는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당시 그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 투표함으로써 빚을 갚으라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그들을 칭찬함에 있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인색해서는 안된다.
모내기철..
지금도 땀흘려 일하는 농부의 수고로 인해
우리가 한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서슬퍼런 군사정권 하에서
당시 누구도 시키지 않았던 민주항쟁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던 이들 덕분에
권위적인 군사정권은 6.29.선언을 통해 한 발 물어났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더 많이 물러났다.
그리고 이제는
장유유서라는 말이 금기시되는 세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민주화 세력에 빚을 졌다.
앞서 말했지만 그들 뿐 아니라
멀리 100년전, 국권이 강탈된지 20년이 지난 후에도 만세운동을 벌였던 선조들에게도 빚을 졌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저기 빚쟁이들 천지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낮추며, 타인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복음에 빚진 자인 우리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그렇다고 일만 달란트 정도 빚졌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보수 기독교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권과 잘 지내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머지... 지금까지 권위주의 정권이 이어졌다한들...)
이 빚을 갚을 수도, 갚을 길도, 어찌보면 갚을 필요도 없지만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망국의 한을 안고 황제의 죽음 앞에서 독립을 외쳤거나
총칼 앞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도 걸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코로나 시대에 예배에 참석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마음들도 있다.
(물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참석을 자제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은 제외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복음을 위해 지금도 위험한 곳에서,
매우 힘들게 사역하는 수많은 의인들을 위해서
기도는커녕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