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버릴 수 없는 그림이 한 장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꽃바구니 그림이 그것인데
96년에 아들놈이 유화재료를 생일 선물로 사왔더라구요.
어릴 적부터 해보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였는데 잘됐다 싶었지요.
겨우 쉬는 날에나 할 수 있었고
기초고 뭐고 깡그리 무시하고(몰라서...)
기냥 제 멋대로 떡칠을 해본 거였지만
아무튼 일년쯤 지나니 습작 몇 장이 남데요.
하지만 선생님 없는 혼자의 짓거리가 발전이 있을 턱이 없고
쓰고 남은 시너찌꺼기 버리는 게 마땅찮아서 고마 접어버렸습니다.
그간 모아 뒀던 습작들도 갈갈이 찢어 쓰레기통에 내던졌고요.
하지만 이 그림만은 차마 버리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잘 그려서도 아니고
전문가가 보시면 참 택도 아닌 그림이지만
유일하게 제 마음이 깃든 그림이기에 버리지 못했지요.
97년 어버이날에
매년 꽃 한 송이 달랑 달아주곤 했었는데
그해엔 웬일로 비싼 꽃바구니를 사왔데요.
그 마음이 기특하다고 내색 않고 기뻐했었는데
다음날 그 꽃을 보고있자니 괜히 마음이 그렇더라구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께 꽃 한 송이 제대로 못 사드린 게 죄송하고
이렇게 호사스런 꽃바구니를 받는 게 또 죄송스러웠지요.
그런 짜~안한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더랬습니다.
베란다 화분대위에 얹어 놓고 거실에 걸터앉아
스케치고 뭐고 없이 그냥 붓가는 대로 그렸습니다.
꽃을 그린 건지 그리움을 그린 건지
그렇게 요상한 기분으로 그린 것이고
사진 한 장 변변히 남아있지 않은 제게
그날 이후 이 그림은
그림도 꽃도 아닌 어머니였습니다.
며칠 전
이야기방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회원님의 글 속에서
큰 고목 앞에 얌전히 앉아 찍으신 그분 노모의 모습과
-... 준비해야 됩니까?- 라는
짤막한 한 줄의 글을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뜨거운 게 치솟더라구요.
거목에 비하면 참 초라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노모의 삶이,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어찌 저 고목만 못하겠습니까?
함께 산 것은 겨우 스물 네 해의 짧은 세월이었지만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이건 안 된다.
그건 옳지 못하다....
어머니 살아생전엔 늘 구속으로만 알았습니다.
간섭으로 알았습니다.
나도 다 컸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구속은 어머니가 당하고 계셨다는 걸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체 종일 기다리고 계셨다는 걸
기다림에 이골이 나셔서 기다림인 줄도 모르고 계셨다는 걸
어머니의 그늘이 있었기에 편히 쉴 수 있었다는 걸
그렇게 자식을 품어 줄 수 있음에 행복하셨으리라는 걸
어머니 돌아가시고 내가 부모가 된 그 한참 뒤에나 알았으니...
외로울 때 생각나고
서러울 때 생각나고
힘들 때 생각나고
어려울 때 생각나고
내 새끼 미운 짓 할 때 생각나니
내가 어머니 생각에 눈물짓는 것은
어머니의 생을 애도함에서기보다는
내 편의에 따른 아쉬움은 아니었는지.
있는 듯 없는 듯 늘 그 자리에 계실 줄만 알았던,
그래서 언제고 쉬고 싶으면 기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렇게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탯줄로 세상에 태어났고
동그라미 하나 긋는 게 사람살이라면
돌고 돌아 어느 듯
떠나온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 있으니
시작은 어디고 끝은 어딘지
가슴으로는 세상을 안겠노라했지만
내가 안은 것은 허상이고 오만일 뿐
나는 그저 세상에 안긴 철없는 아이였음을 어찌 몰랐던지.
그래서 그렇게 타이르셨겠지.
그래서 그렇게 나무라셨겠지.
작든 크든
바르든 찌그러졌든
뒤뚱거리며 그린 동그라미의 끝이 시작과 만나려는
겨우, 지금에야 겨우 그 말씀들이 귓전에 맴돌고
그러고서도 내 자식들에게는
나도 지키지 못할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네요.
아들내미 이녀석
지금이 몇신데 이제사 꾸역꾸역 들어왔습니다.
한마디 잔소릴 늘어 놓으려 했는데
콧구멍으로 살살 파고드는 라면 냄새에
저도 모르게 녀석과 머리 맞대고 한 젓가락 해치웠습니다.
어머니,
이놈도 이제 곧 한 갑자를 살게됩니다만
아직도 이렇듯 철없이 살고 있습니다. 히히...
님들 좋은 꿈 꾸이소...^_^
-05.12.21 또 오밤중에...강바람-
첫댓글 아드님이 아주 눈치가 빠르네요,다람쥐 체바퀴 도는듯 우리는 그렇게 살고있지요,^^추운데 몸 건강하시고 ...
이천은 더 춥지요? 현모님 꼬옥 껴안고 댕기소...^_^
가슴 싸~한 그리움이네요...오늘 전화 한 통 드려야 되겠습니다. 강바람님도 항상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날씨 무척 찹니다. 건강하시길...^_^
눈쓸고 들어와 눈물이나게하시내요. 그리움이란 말긑에 항상 뒤따르는 어머니.....
그립다는 것....참 좋은 약이란 생각이 듭니다...^_^
어머님께 지금 전화 해야겠습니다.
전화 했는교? ^^
무섭게 우짖는 바다소리에 잠도 설친 초록별을 강바람님이 아침부터 가슴 쨔~안 하게 하시내요....그리운 이름하나 가슴에 묻고 살지요....
천국에 어서 이동통신 기지국이 하나 생기기를 기도 합니다....
가슴에 묻은 이름들이 아픔도 있겠지만 더러는 보물이란 생각이...천국에 이동통신이 생기는 그날까지...^_^
저도 울산에 어머님 한테 전화드려야겠네요.
ㅎ 지금 강바람님 컴앞에 계신거 다알어요 ㅋ
그림 실력도 예사가 아니네요......전화 할 어머님이 없다.......
없다...아름다운 시어로 불러보시지요...^_^
싸~아 합니다.^^
겨울이니까요...^^
그림까지 그리시네요 항상 눈물나는 선생님 글! 오늘도 감동입니다...
새봄이 잘 크는교?...^_^
눈보며 부산에 계신어머니께 전화드렸습니다. 20대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사시는 울 엄마도 눈보면 좋아할텐데 ... 눈얘길 했더니 퇴근길 오빠걱정부터 하시네요.
.......^^
단어 한마디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뜻이 담겨 있는지...각자의 다른 의미로...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올라옵니다...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_^
.......!!! 할말이 없습니다.. 불효여식인것을.....그림 너무 좋아요, 실제로 한번 봤으면..아마 어루만지고있었을것 같아요
눈으로 쓰다듬습니다. 그리고 씨~익 웃습니다....^_^
강바람님은 못한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노자 오늘이 부모님 제사날인데 직장분위기도 그렇고 연말방범근무시작날이고 큰아들 고2딩이 사고쳐서 병원이 입원하고 부모님 제사 참석못하고 마음만 감니다,,
많이 바쁘시지요? 애많이 쓰십니다...^_^
......a-c, ..진적 철. 다들면 인생사 재미업지러.....
철드는 것 포기했습니다...^_^
아들과 가슴으로 읽었습니다,오직 컴할 생각에 아비말은 있는듯 없는듯.....그기 그런거 같습니다.어찌 설명이 안됩니다.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때는 어찌 늦다는 생각 뿐입니다. 강바람님 그저 감사합니다.아직 부모님이 계신다는게 행복하다는 생각 외에는....
......^_^
괜히 봤네.... 내일 부터는 전투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데.... 우리 어머님은 이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이셨지요.. 전 아직도 그리 아름다운 분을 만나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지요..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다른이들의 꿈에는 가끔 오신다는 소식도 듣는데... 막내 아들 이놈에게는 평생 걸음 한번 하지 않으시니
그래서 항상 그립습니다..
혹시 오늘밤에라도 오실지 또 기다려 보이소...심양 많이 춥지요? 단디 입고 일 잘 보고 퍼뜩 오이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