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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론 뒤의 휴식(유머방) 스크랩 고사(告祀)와 돼지머리
위옹거사 추천 0 조회 141 14.05.10 18: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사(告祀)와 돼지머리

 

작성자 : 임재해

작성일 : 2006-12-18 오후 8:54

제 목 : 풍요 상징의 돼지해-민속에서 돼지는 잔치와 축제를......

이 글은 2007년 교수신문 신년호(2006년 12월 25일자)에 수록될 원고입니다.

 

 

 

 

가. 풍요 상징의 돼지해

 

- 학문의 양적 풍요, 질적 수준으로 극복하길

민속에서 돼지는 잔치와 축제를 상징한다. 돼지는 곧 잔치음식이다. 잔치 상이라면 으레 넓적하게 썰어 담은 돼지고기 접시가 올라야 제격이다. 어지간한 잔치에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부자들의 큰 잔치에는 소를 잡기도 하나 아주 드문 일이다. 혼사든 상사든 많은 손님을 맞이하여 넉넉하게 대접하는 일이 긴요한 까닭에 이바지를 제대로 하려면 돼지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은 몇 근짜리 돼지를 잡았는가 하는 것으로 큰일을 치르는 집의 이바지 수준을 가늠했다.

 

돼지고기 못지 않게 잔치 기분을 돋우는 것이 돼지오줌통이다. 잔칫날 돼지를 잡으면 아이들은 서로 돼지오줌통을 차지하려고 다툰다. 순전히 돼지를 잡고 손질하는 어른들 손에 달렸다. 고무공 하나 없던 시절에 보름달 만하게 바람을 팽팽하게 불어넣은 돼지오줌통은 축구공이나 배구공과 다를 바 없어 아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었다. 오줌통이 터질 때까지 한나절 놀이잔치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돼지오줌통을 들고 나가면 동네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돼지머리는 고사상과 굿상에 곧잘 제물로 오른다. 고사상에 오른 돼지머리는 웃는 모습일수록 대환영이다. 고사의 효험을 보장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따라서 고사용 돼지머리를 파는 진열장에는 웃는 돼지머리가 수두룩하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이쁘게 웃는 놈을 사려 한다. 굿상에는 통돼지가 오르기도 한다. 굿의 영험을 나타내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무당이 삼지창으로 돼지 복부를 찔러서 굿상에다 거꾸로 세우는 것이다. ‘사슬 세우기’라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아서 도저히 세울 수 없을 것 같지만, 정성으로 빌고 무가를 구송하며 기어코 세운다. 신령이 굿의 정성을 받아들여 영험을 나타낸 것으로 믿는다.

 

돼지는 현실적으로 잔치 음식을 제공하고 사람들의 소원도 빌어주며 신령의 영험을 보장하는 초월적 구실을 감당한다. 잔치와 고사, 굿은 모두 축제에 해당되는 문화 양식이다. 돼지를 축제의 제물로 쓴 역사는 뿌리깊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희생물로 돼지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가 하면, ‘제사’조에는 매년 3월 3일 낙랑 구릉에 모여 사냥을 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지냈다고 한다.

 

신화적 영험성을 나타내는 역사도 오래다. 고구려 유리(瑠璃)왕은 제물로 쓰기 위해 기르던 돼지[郊豕]가 달아나자, 제물을 담당하는 관리를 보내 잡아오게 하였다. 관리는 국내성 위례암까지 쫓아가 돼지를 잡아서 주민들에게 맡아 기르도록 하고 돌아와, 국내성이 도읍지로서 훌륭한 입지로 보인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보고에 따라 유리왕은 이듬해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사실상 돼지가 도읍지를 점지해 준 것이다.

 

고구려 산상왕은 제물용 돼지 ‘교시’를 잡아준 처녀와 잠자리를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교체(郊 ?=돼지체')’라 하였다. ‘교체’는 ‘교시’와 같은 이름으로서 뒤에 동천왕(東川王)이 되었다. 『고려사』 작제건 설화에서는 용왕으로부터 얻어온 돼지가 장차 태조 왕건이 출생할 집터를 잡아준다. 돼지가 안내한 집터가 바로 지금의 연경궁봉원전(延慶宮奉元殿) 자리라 한다. 돼지가 왕자를 낳을 여인을 지목하는가 하면 건국시조가 날 집터를 점지하는 신통력을 발휘한 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돼지는 꿈과 만났을 때 최고의 환영을 받는다. 돼지꿈은 용꿈과 함께 길몽의 쌍벽을 이룬다. 꿈에 돼지를 보게 되면 재물과 횡재, 행운, 명예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용꿈이 권력을 상징하므로 태몽의 으뜸으로 삼는다면, 돼지꿈은 재물을 상징하므로 길몽의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돼지꿈을 꾸게 되면 공연히 기분이 좋고 복권이라도 사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새해는 정해(丁亥)년 돼지해이다. 벌써부터 돼지꿈 전망이다. 주식 전망도 상당히 밝다. 돼지해에 아기를 낳으면 재물복이 넘친다고 하여 예비 산모들은 띠에 맞추어 너도나도 출산계획을 세웠다. 그 덕에 내년에는 신생아 출산율도 높아질 조짐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600년만의 황금돼지 해라고 하여 임산부들의 산부인과 발길이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황금돼지해를 표방하며, 출산 장려 캠페인을 벌인다. 내년에는 모두 복덩이를 낳는다고 생각하여 산모들의 기대가 유난히 크다. 출산율이 저조해서 문제인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황금돼지해는 조작된 개념이다. 띠 동물 12 가지가 5차례 반복하여 60년 갑자를 이룬다. 돼지띠만 하더라도 을해(乙亥)ㆍ정해(丁亥)ㆍ기해(己亥)ㆍ신해(辛亥)ㆍ계해(癸亥)가 있다. 따라서 같은 띠라도 앞의 간지에 따라 5행의 방위 또는 색깔로 나눈다. 이를테면 푸른 돼지, 붉은 돼지, 흰 돼지, 검은 돼지, 노란 돼지가 있는데, 정해년은 정(丁)자가 화기(火氣) 곧 붉은 기운을 상징하는 남방을 뜻해 붉은 돼지해에 해당된다. 돼지해는 12년만에 돌아오지만, 검은 돼지나 붉은 돼지해는 어느 경우나 60년만에 돌아온다. 따라서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라는 해석은 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나 12지 가운데 돼지는 항상 복성(福星)이 높이 비추어 준다고 하여 재운이 뛰어난다는 해석은 오랜 전통이다.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으므로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후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0살 먹을 때까지 ‘돼지’라 부른다. 돼지띠는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 다투지 않는다. 여성은 자상한 어머니로서 가정에 충실하다. 이것이 결함이 되면 남의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게 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돼지띠는 머리가 좋고 박식하며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밀고 가는 성격이 있다. 다만 깊이가 부족한 것이 흠이다.

 

돼지해의 공통된 성격은 재운의 복과 다산의 생산성이다. 따라서 새해는 재운과 생산성을 갖춘 풍요다산의 해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경제가 더 성장하고 출산율이 놓아질 조짐이다. 그러나 양적 성장은 기대할 만하지만 질적 수준은 보장할 수 없다. 깊이를 갖추고 사려 깊게 따지는 슬기가 필요하다. 학계도 업적주의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질적 내용을 갖추는 연구활동이 기대된다. 돼지오줌통으로 만든 공은 사실상 풍선이나 다름없어 한나절을 가지 못한다. 돼지는 무엇이든 양껏 먹고 살을 찌우기 바쁘다. 가려먹고 살을 줄이며 지속 가능한 학문활동을 구상하는 새해가 될 것을 소망한다. 그래야 대학과 학문이 양적 풍요 속의 질적 빈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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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 왈 :

돼지는 한국 문화에서 재물보다 탐욕의 상징으로 비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호랑이나 용 같은 다른 12간지 동물에 비해 돼지를 다룬 유물이 빈약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조상들은 꿀꿀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삼키는 돼지를 경계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돼지에 견주어 쓰는 말로 '뚱돼지'와 '꽃돼지'가 있다. 흔히 뚱뚱하고 욕심 많은 사람을 '뚱돼지'로, 귀여운 아이나 사랑스러운 연인을 '꽃돼지'로 부른다. 앞의 말에선 돼지의 탐욕성이, 뒤의 말에선 돼지의 선량함이 묻어난다. 영화 '동물농장'의 독재자 돼지와 '꼬마돼지 베이브'의 양치기 돼지쯤 될까. 서양에서도 '돼지 같다'는 심한 욕설이지만 '새끼 돼지(piggy)'는 다정한 호칭이다.

 

우리 전통 문화에서 돼지는 '두 얼굴'로 묘사된다. 재산을 늘려주고 복을 부르는 희생과 길상(吉祥)의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게으르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경멸과 무식의 이미지가 있다.

 

돼지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주요 식량이었다. 전북 남원시 대곡리 암각화(청동기시대)에는 교미하는 멧돼지가 새겨져 있다. 신라에서도 멧돼지 형상의 토우(土偶.흙인형)가 다량으로 출토됐다.

 

옛 사람들은 사자(死者)의 손에 돼지를 닮은 물건을 쥐여주기도 했다. 낙랑시대 평양 부근에서 출토된 녹유돼지[綠釉豚]와 옥돈(玉豚)이다. 죽은 이가 저승에 가면서 먹는 '비상식량 ' 역할을 했다. 한국인은 지금도 용꿈과 더불어 돼지꿈을 최고의 길조로 여길 만큼 돼지를 아껴 왔다.

 

욕심 많고 아둔한 돼지는 속담에 많이 나타난다. "돼지 그려 붙인다"(혼자 귀한 음식을 먹을 때), "돼지 멱따는 소리"(듣기 싫은 소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 "일에는 굼벵이, 먹는 데는 돼지"(게으른 성격) 등이다.

 

그런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가운데 돼지의 신통력이 있다. 한국 신화에서 돼지는 나라의 수도를 정해 주고, 자식이 없는 왕이 후사(後嗣)를 보게 하는 영물로 등장하곤 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2대 유리왕이 돼지가 점지해 준 국내성에 수도를 세웠고, 고구려 10대 산상왕은 돼지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돼지가 예언자.선지자 비슷한 구실을 했던 것이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을 앞두고 황금돼지가 화제다. 600년 만에 온다는 행운의 황금돼지해(실체는 없다)를 맞아 혼수.유아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 황금돼지가 새해 대선 정국에 어떤 점지를 내려줄지 궁금하다.

 

우리가 '뚱돼지'를 멀리하고 '꽃돼지'를 가까이하면 황금돼지 또한 절로 찾아들지 않을까. 대통령이 자신을 '동네북'에 비유하며 거친 소리를 토해내고, 목사가 정부를 사탄에 견주며 머리를 깎는 어지러운 세태에서 죽어서도 미소를 담뿍 서비스하는 돼지머리가 더욱 귀해 보인다.

 

(※돼지의 상징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천진기 민속박물관 학예관에게 감사 드린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2006.12.27 20:38 입력 / 2006.12.27 20: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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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2번째 지킴이, 돼지

 

사람은 태어나면서 십이지 동물을 하나씩 부여받게 되고, 그 띠 동물에 따라 운명을 점쳤다. 이러한 띠 동물은 각각의 방위와 시간을 상징하는데, 신라 시대 이후 주로 무덤 둘레돌〔護石〕이나 뼈묻거리〔副葬品〕에 나타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김유신묘 출토 납석제 돼지 상은 물론, 고려시대 석관(石棺)과 조선말기 ‘정해기(丁亥旗)’와 같은 국가 행사 깃발 등에 숨어 있는 돼지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십이지동물 가운데 돼지는 북북서 방위와 오후 9-11시의 시간을 상징하는데, 전시 유물 속에 숨어있는 돼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양식과 희생의 동물, 돼지

 

‘돝’, ‘도야지’로 불리었던 돼지는 예로부터 양식으로써 가축과 사냥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신라 무덤에는 내세의 양식을 위해 돼지 형태의 토우를 만들어 함께 묻기도 하였고, 낙랑에서는 죽은 자의 손에 옥으로 만든 돼지〔玉豚〕를 쥐게 하였다. 그리고 돼지는 고구려나 고려에서는 수도를 정하는 길잡이 역할도 하였지만, 종묘 제사에서는 복을 기원하는 희생으로 쓰여, 삶은 돼지고기를 담는 제기〔豕鼎〕다리에도 돼지머리를 장식하였다. 한편 『서유기』에서 손오공, 사오정과 함께 삼장법사를 수행하였던 저팔계는 궁궐이나 사찰을 지키는 추녀마루의 세 번째 잡상으로 등장하는데, 이번 전시에는 앙증맞은 밀양 표충사의 저팔계 잡상과 주둥이가 긴 화성행궁의 저팔계 잡상이 전시된다.

 

다. 재복을 불러오는 돼지

 

돼지는 예로부터 새끼를 많이 낳아 재산을 늘리는 가축의 하나로 여기었다. 또한 돼지 돈(豚)의 발음이 ‘돈(錢)’의 발음과 유사하여, 오늘날에도 사업 번창을 위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거나, 돼지그림을 걸어두고 재복이 들어오길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모으라는 저축의 의미로 돼지저금통을 주거나, 돼지꿈을 꾸면 으레 행운의 복권을 산다. 이처럼 우리에게 재복을 주는 동물로 인식되는 돼지꿈을 꿀 수 있게, 어미 돼지 주변으로 몰려드는 새끼 돼지들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도 하고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임재해(林在海)교수 약력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안동대학교 국학부 및 대학원 민속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안동대학 박물관장, 한국학연구원장, 한국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회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전통마을 BK21 팀장, 안동문화지킴이 등의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속문화론>(문학과지성사, 1986)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지식산업사, 1991)

<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지식산업사, 1994)

<민속마을 하회여행>(도서출판 밀알, 1994)

<한국민속학과 현실인식>(집문당, 1997).

<지역문화와 문화산업>(지식산업사, 2000).

<지역문화, 그 진단과 처방>(지식산업사, 2002).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도서출판 당대, 2002).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민속원, 2004).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민속원, 2006).

<마을민속 조사연구 방법>(민속원, 2007).

<신라 금관의 기원을 찾는다>(지식산업사, 2008).

<안동문화의 전통과 창조력>(민속원, 2010) 등 28 책이 있다.

 

 

편저로는

 

<한국의 민속예술>(문학과지성사, 1988).

<한국민속연구사>(지식산업사, 1994).

<한국민속사입문>(지식산업사, 1996).

<국학의 세계화와 국제적 제휴>(집문당, 1999).

<국보 하회탈 그 한국인의 얼굴>(민속원, 2005).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지식산업사, 2007) 등 26 책이 있으며, 모두 3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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