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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새근새근 아이들이 잠이 들었다. 안잘거라며 징징대던 아이들이
옆에서 하니가 만화주제곡을 불러주자 금새 꿈나라로 빠진것이다.
휘연이 그렇게나 재우기 힘들어했던 아이들이었는데..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좋아- 하늘-땅만큼..엄마가 보고싶은만큼 달릴거야-"
아이들과 같이 누워있던 하니가 완전히 잠든 아이들을 보고는 천천히 일어난다.
휘연은 방에서 밀린 레포트를 쓰고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방문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주제곡도 달려라 하니냐?"
"쉿! 헤..난 이 노래가 제일 좋더라. 천방지축 하니도 좋긴한데. 왼발 깽깽! 오른발 깽깽!"
"낼모레면 스물둘주제에. 하여튼.."
하니가 헤헤 웃으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옷 한자락이 진이의 작은 손에 붙들려있다.
"응?"
"..엄마..."
그녀가 잠시 바라보다 손을 한마디씩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발걸음도 가볍게 휘연과 함께 방을 나왔다.
방문을 닫고 나서야 휴- 하고 그녀가 긴숨을 내쉰다. 그리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었다.
"하니 간다!"
"어..바래다 줄까?"
시계를 보며 휘연이 말하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니, 애들 깰지도 모르니까 집에 있어~ 아직 열시도 안됐구먼 뭐."
"그래, 오늘..고마웠다."
"나도! 나도 고마웠어. 찬이랑 진이도 보고싶었구..또 너네집도 와보구! 그럼 학교에서 봐~"
"엘리베이터까진 봐주지."
"오예!"
휘연과 하니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아래방향 화살표 버튼을 누르자, 1층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한다.
둘은 아무말도 없이 나란히 서 있었다.
'엄청 빨리 올라온다..좀 천천히좀 오지.'
하니가 점점 올라오는 숫자를 보고 생각했다.
이윽고 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잘가라."
"응~"
안떨어지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고 휘연과 하니가 문 하나 사이를 두고 마주 섰다.
서서히 문이 닫힐때쯤,
"어, 저기!!!!"
하니가 황급히 소리쳤다. 놀란 휘연이 버튼을 다시 누르고 닫힐뻔했던 문이 다시 열렸다.
"..쌍둥이들말이야. 엄마아빠가 한달동안 여행가셨다고 했지? 음..그러니깐.."
" ..? "
"아직 어려서 엄마가 많이 보고싶을거야..물론 네가 아이들 생각하는 마음도 아는데,
좀 더..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떨까..싶어서..."
뚱한 휘연의 표정을 보고 하니는 괜히 참견했나-하며 뜨끔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연다.
"흐음..어릴때부터 오냐오냐하면 버릇만 나빠질것같아서 좀 엄하게 대했던건데.
뭐, 오늘보니까 회유책도 나름대로 통하는것 같고..
애들 있을 동안은 니가 가끔씩 와서 놀아줘. 밥 한그릇 다 먹은거..우리집와서 처음이었거든."
하니가 활짝 웃었다.
"그래도 돼?"
"다음에 와도 비밀번호는 안알려줄테니까...초인종 눌러."
"와싸리!"
"...와싸리는 또 뭐야."
"아 그리구! 핸드폰번호 알려줘, 친구니까 괜찮지?"
이크. 휘연은 왠지 또 그녀의 페이스에 점점 말려들어가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얼떨결에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번호를 찍었다.
엘리베이터버튼을 손에서 떼, 문이 닫힐뻔 한걸 하니가 온 몸으로 문을 막아섰다.
"끄웩."
"아, 미안. 여기."
다시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이번에는 진짜로 문이 닫힌다.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줄어들더니 곧 문이 굳게 닫히고
내려가는 숫자와 함께 사라져간다.
1층에서 멈추는 소릴 확인하고는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곤히 잠들어있었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다 문득 멈칫하고는 거실 베란다로 향한다.
오피스텔 정문이 바로 보이는 베란다 위치에 서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곳엔 총총거리며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하니가 있었다.
방글빙글 돌다가 갑자기 멈추다가 아까 불렀던 하니 주제곡을 부르더니
왼발 깽깽 오른발 깽깽. 노래 가사에 맞춰 뛰고 있었다.
"..얌전히 가면 어디 덧나냐.."
순간 그녀가 다시 우뚝 멈춰서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뭔가 꾹꾹 누르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간다.
[♩♪~]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휘연의 핸드폰이 반짝거리며 소리를 냈다. 문자가 온 것이다.
그가 설마, 하며 핸드폰을 집어들고 폴더를 올렸다.
[쌍둥이들 없을때도
가면 안될까용?♡
-HONEY♡♡]
"허니(HONEY)..자기 이름이군."
그런 이름으로 보낸 데에는 하니의 작은 속셈이 있었다. 번호를 저장할때 [HONEY]라고 해주면
전화나 문자가 올때 이름이 그렇게 뜰테니, 누가보면 분명히 애인이라고 생각할테니까!
그런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휘연의 핸드폰에 저장된 그녀의 애칭은 바로..
[권하니]
그냥 이름 달랑석자.
그런 사정도 모르고 하니는 잔뜩 신나서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뒤에 하니의 핸드폰에도 뾰로롱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그녀가 저장한 류휘연의 이름,
'서방님♡'
[사양하겠다.]
"..끼야~문자 왔다~"
내용이야 어떻든 하니는 그 문자를 꼭꼭 저장보관함에 넣어둔다.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하니가 집에 도착했다.
커다란 저택의, 보기만해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육중한 검은 대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평소같으면 누구세요, 하는 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와야하는데 왠일인지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응? 아직 안들어왔나?"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원을 지나 현관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역시 집에는 아무도 없는듯 불이 꺼져있었다.
더듬더듬 벽을 짚어가며 스위치를 찾고는 불을 켰다.
자동응답기를 켜보니 오늘도 야근이라는 엄마의 음성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2층으로 올라가 지아의 방문을 열어봐도 텅텅 비어있고 화장실도, 빨래방도, 주방도 썰렁.
아르바이트를 해도 항상 아홉시만 넘으면 집으로 돌아왔던 지아였는데, 이상했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항상 하니에게 연락을 하곤 했었는데.
핸드폰을 꺼내 단축키 2번을 꾸욱 누른다. '하니동생♡' 이라는 표시와 함께 뚜르르뚜르르 신호음이 갔다.
하지만 일분이 다 되도록 신호음만 울리고, 녹음된 여자목소리가 나온다.
"..엥..어떻게 된거지.."
그때였다. 누군가 초인종을 다급히 누르는 소리.
하니가 서둘러 인터폰을 들었다.
"지아야??"
하지만 대문앞에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것은 지아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를 업고 서 있는 낮선 남자의 모습.
[여기 지아누나네 집 맞죠?]
그제서야 눈썹 피어싱을 한 남자가 업고 있는 사람이 지아인 것을 확인한 하니가, 서둘러 대문을 열었다.
곧 현관을 열고 승재에게 업혀있는 지아가 들어왔다.
"흐어어..지아야!! 지아야!!"
당황한 하니가 이리저리 날뛴다. 남자는 거실소파에 지아를 눕히고는 이내 하니를 쳐다본다.
어쩔줄 몰라하던 하니도 그제야 남자를 봤다.
"우으..근데..누구세요?"
"아, 누나랑 같이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낮에 열이 심하게 올랐었어요. 누나가.
지금은 좀 괜찮아져서 제가 데리고 온거고."
"아...진짜요? 고..고맙습니다."
"약은 다 먹었고 열도 어느정도 내렸으니까, 푹 자게 냅두구요."
"네! 넵!"
집주인인 하니가 오히려 당황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승재가 하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근데, 친구예요?"
"네? 아니요!! 지아 언닌데요,2분 언니요.."
"2분?"
"넵. 쌍둥이거든요..이란성..하나도 안닮았죠? 우헤.."
하니가 머리를 긁적였고, 승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쌍둥이라니...아무리 이란성이라도 완전 딴 사람인데.
..하지만 지아가 이런 집의 딸이라는건 확실해졌다. 부잣집딸이 맞았다.
실은 아니길바랐는데, 내심 그냥 평범한 집 딸이였으면..싶었는데.
"..그렇군요."
그리고 그의 시선이 하니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지아의 손과는 달리, 작고 깨끗한 귀여운 손.
굳은살 하나 없이 하얀 손이었다. 굳은 살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른손 중지, 연필을 쥐는 손.
"집안일은 지아누나가 다 하나봐요."
"에?"
"..아뇨, 그냥. 아무튼 누나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푹 쉬게 해요. 그럼..가보겠습니다."
"에..네.네."
승재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집을 나섰다. 하니 눈에는 왠지 기분이 별로인듯 보인다.
"지아 남자친군가? 우와, 누나래...귀여운 연하남이다,연하남."
금방 잊고는 지아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누워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지아를 바라본다.
하니가 옷소매를 주욱 당겨서 지아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슥슥 닦았다.
"옛날 생각나네. 그치? 옛날엔 내가 맨날 이렇게 누워있으면 너가 내 땀닦아주고..그랬는데. 헤.."
지아가 하니의 말소리에 꿈틀거린다.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서 아주 오래간만에 지아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 동생 참 이쁘다. 아파서 끙끙대도 어쩜 이렇게 이쁘지?
또 보나마나 힘들어도 꾹 참고 무리한거겠지..언니한테 어리광도 좀 부려도 되는데...
뭐 어리광은 내가 다 부리지만..우헤..."
방에서 담요를 갖고와 지아에게 덮어주고는 하니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좋~았어! 내일 아침은 내가 준비하는거야!! 분명히 못일어날것 같으니까..
책이나 좀 읽다가 아침에 밥차려야지!"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포부도 크게!
첫댓글 -_-....왜 이렇게 지아에게 정이 안가는지...ㅠㅠ 저도 골고루 좋아 하고 싶은데 하니가 넘 매력적이네요~*-_-*
허허허 정이 안가신다니 초코파이좀 드릴까요...죄송하빈다
난넷다좋아요.
이 간결하고도 멋진 대사!
지아 좋은데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죠~ㅋㅋ
난 지아가 좋은데...ㅋㅋ하니도 좋고,,,과연 하니가 밥을 제대로 할까요?
따끈따끈 다음편 업뎃 되었습니다..확인하세요~ㅋ
하니기엽다 ~ 으에 !! ㅋㄷㅋㄷ
으에 ?? 항상 꼬릿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