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외손녀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 -
文霞 鄭永仁
이번 설에 온 외손녀가 집안 식구 모두에게 일일이 초콜릿 하나씩 안긴다. 발렌타인날 주지 못한 선물이라고……. 그것도 초콜릿 한 갑씩이 아니라 네모진 비스킷 같은 초콜릿 한 개다.
아마 1000원쯤 하는 초콜릿 한 갑으로 친가, 외가 밸런타인 선물 다 해결하였나 보다. 과연 짠순이 답다.
각자에게 나눠준 초콜릿에는 또 다른 선물이 붙어 있다. 초콜릿이 물적 선물이라면 꼭 초콜릿만한 종이에다 깨알같이 쓴 편지는 마음의 선물인가 보다. 손 글씨로 받는 사람마다 다른 문구로 썼다. 내 것에는 “외할아버지, 공부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적혀 있다. 제 사촌 오빠에게는 초콜릿이 아닌 사탕을 주면서 “오빠, 미안해! 누룽지 사탕을 주어서.” 라고 한다.
외손녀가 준 초콜릿은 녹아서 물렁물렁하다. 외손녀의 마음이 담뿍 담긴 찐득찐득한 초콜릿을 먹으면서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에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니 눈물이 땀인 양~” 이 생각난다. 짠 눈물이 아닌 단 물이…….
외손녀의 발렌타인 선물을 받으면서 또 한 가지의 생각이 났다. 꽤 오래 전 섬마을 분교에서 받은 스승의 날 선물이다. 그때 우리 반은 3복식 학급이었다. 3복식이란 1, 2, 3학년이 한 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수업 형태다. 우리 반은 1학년 2명, 2학년 2명, 3학년 2명 도합 6명이 같이 공부했다.
스승의 전 날. 1학년인 천방지축 문희가 다가와서 배시시 웃으면서 내 손에 무엇을 쥐어 준다.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다 눌러 써서 배때기가 들러붙은 마○○○이라는 피부연고제였다. 정작 스승의 날이었다. 문희는 1학년 10칸짜리 깍두기공책을 부욱 찢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삐뚤빼뚤 쓴 스승의 날 감사편지였다. 그것도 편지봉투도 없는 알편지였다. 스승의 날 다음 날이었다. 문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큰 대추만한 누룽지 사탕 2개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그것도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아마 내 40여년의 초등교사 생활에서 받은 최고의 스승의 날 선물이었다. 그 세 가지 선물을 보관할 것을 하는 마음이 외손녀에게서 받은 선물과 함께 아쉬움으로 밀려온다. 문희의 마○○○, 쪽지편지, 누룽지 사탕 그리고 외손녀가 준 초콜릿 한 개와 편지!
하긴 작년 스승의 날에는 외손녀를 가르친답시고 울며 겨자 먹기로 외손녀에게 스승으로써 비빔국수 한 그릇 얻어먹었지만.
올해부터는 외손녀에겐 주급 3,000원, 손자에게는 주급 6,000원의 용돈을 준다. 지급기준은 학년당 천원씩이다. 그런데 두 녀석의 용돈 씀씀이가 천지차이다. 손자는 며칠만 있으면 동이 나지만, 외손녀는 받는 즉시 보물 상자 저금통에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다 모아서 은행통장으로 직송된다. 아마 외손녀는 수월찮게 모았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의 말하는 변형된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한다. 외손녀처럼 티끌 모아 태산은 구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생각을 한다. 굴러다니는 눈 먼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고, 높은 권력과 최고의 지성에 있는 분도 수억~수백억을 꿀꺽한다. 그러니 태산은 태산이어야 한다고 한다.
중학생은 현찰 10억이 생기면 1년쯤 교도소에 가도 좋다고 하고, 창업을 꿈꾸는 초등학생의 목표는 원룸을 물려받아 월세 받는 것이라고 하고, 대학생은 눈높이 스펙에 시달리고. 일해서 돈 버는 것보다는 돈이 돈을 버는 시대다. 하기야 이런 것들이 어른들이 한 짓을 고스란히 배운 것이리라.
그래도 딸네집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종잇장 같은 세숫비누, 가자미처럼 짜서 치약을 보면 그 사위에 그 외손녀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을 현장 학습을 한다.
나도 화이트 데이에는 우리 집 여자들에게 누룽지 사탕 하나라도 선물하여야 하겠다. 특히 외손녀와 집사람에게도…….
그나저나 갈수록 요상한 ‘~ 데이!’ 하는 국적 없는 날들이 날로 떠돌면서 돈만 축낸다. 빼빼로 데이처럼……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