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를 넘어선 아이유… “14년 더 가볼게요”
한국 여가수 첫 올림픽주경기장 입성… 이틀간 8만8000명 객석 채워
3년만에 ‘여가수 최대 공연’ 경신
열기구-떼창 등 ‘꿈같은 순간’ 안겨
“이젠 30대, ‘좋은날’ ‘팔레트’ 졸업”
“10대 때부터 제가 달려온 길에 이 무대가 마지막 도착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큰 무대는 생각해 본 적도 없거든요. 조상신이 도우셔서 이 자리까지 왔네요.”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29·사진)가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며 가요계 역사를 다시 썼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18일 열린 ‘더 골드 아워: 오렌지 태양 아래’ 무대에 선 아이유는 이번 공연을 자신의 ‘마지막 도착지’라고 했다. 이날은 아이유가 데뷔한 지 정확히 14주년 되는 날이었다. 최대 10만 명이 관람할 수 있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연 국내 가수는 방탄소년단(BTS·8회), 조용필(7회), H.O.T.(4회), 싸이(3회) 등 모두 남자 가수였다. 여가수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2012년)가 유일했다.
17, 18일 열린 콘서트에는 회당 4만4000여 명, 총 8만8000여 명이 객석을 채웠다. 콘서트 수입만 80억 원대로 추산된다. 2019년 콘서트 ‘러브 포엠’으로 본인이 보유했던 국내 여가수 최대 규모 공연 기록(2만8000명)을 3년 만에 갈아 치웠다.
아이유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피처링한 곡 ‘에잇’과 ‘셀러브리티’로 콘서트를 시작했다. 어깨에 은색 술이 달린 재킷을 입고 등장한 그는 “와, 오늘도 꽉 찼네”라며 객석을 응시했다. “좀 더 익숙한 노래를 부르겠다”며 기대감을 높인 후 ‘너의 의미’ ‘금요일에 만나요’ ‘블루밍’ ‘내 손을 잡아’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3시간 반 동안 앙코르곡 6곡까지 총 27곡을 열창했다.
압권은 관객의 ‘떼창’이었다. ‘너의 의미’와 ‘금요일에 만나요’를 부르기 전 “여기서 관객들의 진가가 드러난다”며 아이유가 사기를 북돋웠고, 관객들은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앙코르곡 시간, ‘떼창’은 최고조에 달했다. 무대 화면에 ‘러브 포엠’ 가사가 뜨자 관객들은 짜 맞춘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팬들의 완창이 끝나자 황금색 비즈 장식이 달린 검정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가 러브 포엠을 답가로 선사했다. 곡을 마친 뒤 “사실 어제 공연 말미부터 귀가 안 좋아졌다”며 “오늘 무대는 여러분이 다 하셨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올해 3월 발매한 다큐멘터리 ‘조각집: 스물아홉 살의 겨울’에서 귀가 먹먹해지고 목소리와 숨소리가 울려 들리는 이관개방증을 앓는다고 밝힌 바 있다.
볼거리도 가득했다. 아이유의 초상화와 ‘너랑 나’의 뮤직 비디오에 나온 시계가 하늘에 드론 불빛으로 그려지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트로베리 문’을 부를 때 열기구를 타고 등장한 아이유는 객석 위를 돌며 관객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었다.
열다섯 살에 데뷔한 아이유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다. 이날 그는 앞으로 콘서트에서 자신을 ‘국민 여동생’으로 만든 ‘좋은 날’과 지드래곤이 피처링한 ‘팔레트’를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4년간 최정상 자리를 지킨 가수이자 만능 엔터테이너. 스스로를 뛰어넘는 것이 숙제인 아이유에게 이번 공연이 ‘마지막 도착지’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의 외침은 새로운 기대를 품게 했다.
“오늘을 되새기면서 14년 더 가볼게요.”
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