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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乘 正 宗 分 第 三
대 승 정 종 분 제 삼
佛告 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_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을 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하리니
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호대 實無衆生이 得滅度者라 何以故오
須菩提여 若菩薩이 有我相人相 衆生相 壽者相하면
卽非菩薩이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할 것이니,
이른바 온갖 중생들, 곧 난생(卵生) · 태생(胎生) · 습생(濕生) · 화생(化生)의 중생과
형태가 있는(有想)중생 · 형태가 없는 (無想)중생,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非有想)중생 ·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非無想)중생 모두를
나는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 해탈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가 없고 끝이 없는 중생을 해탈시키지만,
실은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는 생각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에게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제1분과 제2분은 금강경의 서분이요,
제3「대승정종분」부터가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正宗分)입니다.
서론에서 수보리존자가
‘어떻게 보리심을 유지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가’를 여쭌데 대해,
제3「대승정종분」에서는 ‘마음을 항복받는 방법’에 대해 설하십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10가지 중생의 유형을
무여열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단어에 대한 뜻부터 살펴봅시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생(生)을 받는 유형을
난(卵) · 태(胎) · 습(濕) · 화(化) · 유색(有色) · 무색(無色) ·
유상(有想) · 무상(無想) · 비유상(非有想) ·비무상(非無想) ·비유색(非有色) · 비무색(非無色)의
12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이들 12류(類)의 중생 가운데 비유색과 비무색 중생은 마음 자체가 없으므로,
‘그 마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는가’를 주제로 삼은 금강경에서는
이 둘을 제외하고, 마음을 지닌 10가지 중생만 열거한 것입니다.
■ 난생(卵生): 물고기나 새들처럼 알에서 태어나는 중생
■ 태생(胎生): 사람 · 소 · 말 등과 같이 어미의 뱃속에서
사지가 갖추어져 출생하는 포유동물
■ 습생(濕生): 모기 · 귀뚜라미 들과 같이 습지에서 생겨나는 생물
■ 화생(化生): 남의 몸을 의지함이 없이 홀연히 태어나는 존재.
천상이나 지옥에 나는 중생도 여기에 속함
■ 유색(有色): 삼계(三界)의 중생 중 형태를 갖추고 있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중생
■ 무색(無色): 삼계의 중생 중 형태가 없는 무색계(無色界)의 중생
■ 유상(有想): 사람 천인 귀신 등과 같이 생각이 있는 중생
■ 무상(無想): 무상정(無想定)을 닦아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린 외도(外道)
■ 비유상(非有想); 맑음가 더러움, 사랑과 미움 등의 상대적인 모습에 집착을 하지 않는 존재
■ 비무상(非無想): 집착은 없으되 아직 구하는 바가 있는 존재
금강경에서는 이러한 중생 모두를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으로 인도하여
해탈을 시킨다고 하였습니다.
무여열반(無餘涅槃)! 불교의 이상인 열반에는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유여열반은 ‘남음이 있는 열반’ 으로,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고 다시는 생사윤회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은 주름이 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늙어가는 몸을 지니고 있는 경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35세로 성불하신 그때가 유여열반에 해당하며,
중생들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마지막 한 중생까지 제도하고자 하는
대보살들 또한 스스로 유여열반을 택합니다.
이에 비해 무여열반은 번뇌를 완전히 끊었을 뿐 아니라
몸까지도 모두 없애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열반,
곧 영원한 진리에로 되돌아가 진리와 일체(一體)가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없이 많고 많은 중생, 끝이 업는 중생을 이러한 무여열반의 세계로 인도하여
완전히 해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는 생각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답을 주셨습니다.
“만약 보살에게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 이 넷을 4상(四相)이라고 하며, 이 4상이 없어야
무상보리(無上菩提: 위없는 깨달음)를 이루는 대보살이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4상이야말로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하는 최대의 장애입니다.
그러므로 4상이 없는 부처님께서는 무량 · 무수 · 무변의 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시고서도,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 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럼 4상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금강경 해설의 최고 권위자이신
육조(六祖) 혜능대사(慧能大師)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십니다.
아상(我相): 미혹한 사람이 ‘나는 재보와 학문이 있느며 좋은 족성(族姓)에
속하노라’ 하면서 교만을 부리고 모든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
인상(人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행한다 할 지라도 그 생각이 거만함과
자만심이 있어 두루 존경을 하지 않고, ‘내가 깨달아 행하는
인의예지신은 너를 존경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중생상(衆生相): 좋은 일은 자기에게로 돌리고, 나쁜 일은 다른사람에게 주는 것
수자상(壽者相): 경계, 곧 대상에 대해 취사 분별을 하는 것
이를 범부의 4상이라 한다.
我相: 迷人持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入 名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수행인에게도 4상이 있다.
아상: 마음에 나와너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중생을 졍천히 여기고 교만한 것
인상: 스스로 계를 지키고 있음을 자랑하고 파계한 자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
중생상: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싫어하고 천상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
수자상: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여, 복업(福業)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집착을 잊지 않는 것
修行人亦有四相
我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人相:
衆生相:
壽者相:
이렇게 육조스님께서는
범부와 수행인의 4상을 구분하여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
“4상이 있으면 중생이요 4상이 없으면 부처님이다
(有四相卽是衆生 無四相卽是佛)”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미하면 중생이요 마음을 깨달으면 곧 부처’ 라고
하신 것과 그대로 통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 때 마음이 미하게 되고 무엇이 없어질 때
깨달음의 마음이 모습을 나타나게 되는가?
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 무엇은 바로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의 사상(四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4상이라는 그릇된 마음을 항복받아야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하셨습니다.
‘4상을 없애어 그 마음을 항복받아라.
아상 · 인상 · 중생상 ·수자상 없이 살아가라.
그렇게 살면 위없는 깨달음을 저절로 이룰 것이다.
그러나 4상이 있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릇된 마음을 항복시킬 수가 없고,
절대로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내가 ~을 했어’ , ‘내가 ~을 할거야.’
한평생을 절에 다녀도 이것 하나를 항복받지 못하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길을 가로 막아 버리는 데도….
☆
527년, 달마대사(達磨大師)께서 천축국으로부터 중국 남방에 이르자,
양나라의 무제(武帝)는 대사를 수도인 남경(南京)으로 초빙하였습니다.
독실한 불자였던 무제는 인사를 끝내기가 바쁘게 달마대사께 물었습니다.
“내가 즉위한 이래 무수히 많은 절을 짓고 여러 가지 경전을 만들어 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과 배성들에게 출가할 것을 권하였고, 수많은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공덕이 전혀 없습니다.”
왜 달마대사는 양나라 무제에게 ‘공덕이 없다’ 고 하셨을까요?
‘내가 ~을 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아상에는
위없는 깨달음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공덕이 전혀 없다’ 고 한 것입니다.
양무제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불사를 하거나 시주를 하거나 사회봉사를 하고 난 다음에
‘내가 ~을 했다’ 는 마음이 붙게 되면 공덕이 없습니다.
조그마한 복을 쌓을지언정, 깨달음을 이루는 공덕과는 무관합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을 항복 받아라’ 는 것입니다.
‘나는 ~을 한다’ , ‘내가 ~을 했다’ 는 자랑 섞인 그 마음없이 하는 것이야말로
‘위없는 깨달음(無上普施)을 방해하는 그 마음’을 항복받는 방법이요
항복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불자들이여, 불교를 위해 부처님을 위해 또 남을 위해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을 하였을지언정, 그것을 알리고 자랑하고 싶어 못 견뎌하는
그 마음부터 항복받으십시오.
‘내가 ~을 했다’ , ‘내가 ~을 한다’는 자랑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보시를 하였으되 ‘내가 ~을 했다’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항복받고,
불교 단체의 간부를 맡더라도 ‘내가 절이나 이 모임에 ~울 한다’ 거나 ‘~을 했다’ 는
상(相)이 없도록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로서 아들딸에 대해 ‘내가 너의 엄마다’ 라는 생각이 없도록
그 마음을 항복받고.‘아들에게 어떻게 해줬다’ ,
‘딸에게 어떻게 해줬다’ 는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면
늙어 힘이 없어질 때 ‘섭섭하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붙고,
심지어는 억울함과 실망감속에서 자식과 원수처럼 지내거나
극단의 길을 택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
대전의 한 여인은 트럭 운전기사와 결혼을 하여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트럭 운전기사를 하는 남편의 봉급으로는
네명의 자식을 키우며 살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땅장사와 집장사를 시작하였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집까지 마련하였으며,
마침내 큰딸을 서울대학교 대학원까지 졸업시키고 결혼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가지고 있던 땅들도 팔리지 않고 융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빌려 쓴 돈을 내어 놓으라며 친구들과 은행에서는 극성을 부렸습니다.
혼자 고민을 하다 지친 그녀가 남편에게 답답함을 털어놓자
남편은 두손부터 들었습니다.
“평생을 당신 혼자 알아서 해 왔는데 지금 나에게 말하면 어떡하오?
내게 무슨 능력이 있소?”
그녀는 다시 결혼한 큰 딸을 찾아갔습니다.
대학원까지 나온 딸이니 해결은 못해줄망정 위로라도 받을까 하여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연을 들은 딸의 첫마디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기에 빚타령을 하는 거야?”
“너 하나를 희망으로 삼고 갖은 고생 다하며 키웠는데,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그래! 엄마가 해준게 뭐야?”
딸이 악을 물고 달려들자 그녀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 하였습니다.
‘아, 내가 그토록 힘들게 살아온 것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남편에게는 원망을, 자식에게는 공격만 당하다니….’
그녀는 섭섭하고 괘씸한 마음에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그녀보다는 큰딸과 남편이 나쁘다’ 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오죽 하였으면 자살까지 택하였을까’ 하며 동정을 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동정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을 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 의 욕심에서 출발하여
‘나’ 의 욕심 속을 파드득 거리다가 죽어갑니다.
아들 딸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기울인 노력만큼이나 자부심과 기대를 갖습니다.
정녕 아들딸들을 다 키운 다음, ‘나하고의 인연이 있어 공부를 시켰고
부모로서의 일을 마쳤다’며 손을 터는 부모가 있습니까?
이렇게 손을 털지 못하면
노년이 되어 자신이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될 때
아들딸에 대해 섭섭해하고 원망을 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바로 ‘했다’ 는 생각이 붙어있기 때문이요 댓가를 바라는 생각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
했다’ 는 생각, 그리고 ‘기대’ 가 섭섭함과 괘씸함으로 이어지면서
자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나는 법회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들집이나 손자집에
제사밥을 얻어먹으러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참으로 아들딸이나 손자를 위한다면, 한평생을 살면서 부모 ·시부모 · 형제 · 자식 ·
남편 아내와 맺혔던 얽히고 설킨 감정을 확 풀고 가야합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 수십 년 얽히고 설켰던 감정들, 미웠던 생각, 섭섭했던 생각,
괘씸했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면, 염불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극락에 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식들은 저절로 행복하게 됩니다.
지금 살아계신 여러분들은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내 남편 아내다’ 가 있지만,
육체와 영혼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내 아들, 내 딸, 내 남편 아내’ 는 없습니다.
이들에게서 받은 섭섭함, 괘씸했던 행동, 얄미웠던 것들만이 남아 부딪히게 되며,
그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은 여러분들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부디 모든 기대와 집착을 비워버리십시오.”
진실로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가 되려면,
부모로서의 최선을 다하되
‘해준다’ , ‘해줬다’ 는 생각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아들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줬다’ 는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그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면 노년에 괄세를 받을 때
‘섭섭하고 괘씸하다’ 는 생각이 붙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노년이 되면 다들딸에게 의탁하리라’ 는 집착을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아들딸분만이 아니라, 내외 사이, 형제 사이,
부모와 친구 사이에 있었던 모든 계산상의 마음들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서도 ‘내개 제도했다’ 는 마음이 없었으며,
그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부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에게
부처가 되려면 ‘~을 했다는 마음부터 항복받아라’ 고 하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나는 ~을 한다’ , ‘내가 ~을 했다’는
이 아상(我相) 하나만이라도 잘 항복받아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마음의 평화가 깃들고
행복이 저절로 찾아들며, 해탈의 문 또한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잘 수용하면,
참으로 즐겁고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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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움이 많이 됩니다.
고맙습니다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