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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는 발트해 연안국인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둘러싸여 있어,
모스크바 쪽 러시아본토에 가려면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2개국을 거쳐야 갈 수 있다.
칼리닌그라드(영어 : Kaliningrad / 러시아어 : Калининград / 중국어 : 加里宁格
勒)의 역사적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1945년 이전에는 독일에 속하면서 쾨니히
스베르크(독일어 ; Königsberg/ 러시아어 : Кёнигсберг / 旧프로이센어 : Twangste,
Kunnegsgarbs, Knigsberg, Knigsberg/ 리투아니어 : Karaliaučius/ 폴란드어 :
Królewiec)라고 불렀던 이 도시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주의 행
정 중심도시이면서, 발트해 연안국인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Lithuania)
사이에 끼어있는 러시아의 고립영토로, 발트해에 접하는 유일한 항구도시이다.
서방의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의 가장자리 세력권으로 그 회원국인 폴란
드와 리투아니아를 사이에 두고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러시아에서 완전히 분리된
위치에 놓여있는 러시아영토이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를 이웃하고 있는 발트3국은 소련시절에는 소비에트연방국이었고,
폴란드는 소련블록이었지만, 소련해체이후 이 4개국은 NATO가입국이면서 EU회원국이다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는 이전에는 동(東)프로이센(East Preußen)의 한 도시
이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였다. 이 지방은 예전의 프로이센(Preußen /영어:
Prussia)의 영토로 트방스테(Twangste、Tuwangste or Tvankste)요새가 있던 곳
인데,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들이 영토문제 결정을 보류한 상태에서 전쟁이 종결
되고, 전후 바로 미국 영국 등 서방과 소련간의 냉전대립으로 영토문제를 확정하지
못하였다. 소련은 전후처리 해결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자국영토로 편입하여 이를 러
시아가 승계한 영토이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를 둘러싸고 있는 이웃나라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1255년 북부십자군 원정기간동안 튜턴기사단(Teutonic Order)이 이곳에 들어와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요새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도시이름을 보헤미아(Bohemia)
의 왕 오토카르 2세(Ottokar II)의 치적을 높이 받드는 뜻에서 “쾨니히스베르크
(Königsberg)”라고 지었다.<König(왕)+berg(산 = 치적)>. 그리고 그 이후 수세
기 동안 독일영토가 되고 독일의 지배지역 영토를 거치는 동안 상당한 폴란드문화
와 일부분의 리투아니아문화가 뒤섞인 가운데 독일문화가 지배하는 지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도시의 대부분이 파
괴되었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시내 거리를 달리는 전차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튜턴기사단이 지배하는 일부분이었는데, 1945년
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 러시아제국, 프로이센(Preußen)과 독일이 지배하는
지역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독일의 영토로 프로이센의 수도이기도 하였고,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칸트(Immanuel Kant ; 1724~1804)의 고향으로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에 묻히었다.
▲ 칼리닌그라드의 칸트대학 교정에 서 있는 칸트동상
제2차대전이 끝나고 쾨니히스베르크는 소련의 칼리닌그라드가 되고,
쾨니히스베르크대학도 칼리닌그라드대학으로 학교 이름이 바뀌었다.
2005년 러시아의 푸틴대통령과 슈뢰더독일총리가 참석한 자리에서
교명을 칸트대학으로 바꾸어 현재의 대학이름은 칸트대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동프로이센의 북부지역을 구성하고 있었다. 제2차대전
으로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는데, 1945년 붉은 군대에 의하여 도시가 거의 파괴되면
서 함락되어 독일인들은 도망가거나 강제로 다른 곳으로 내보내졌다. 1946년에는
소련의 명복상 국가원수인 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1875~1946)의 명성을 따서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라고 이름을 붙였다. 2005년에는 칼리닌그라드는시
창설 750주년 축하행사를 벌였다.
▲ 칼리닌그라드의 발트함대사령부(Baltic Fleet HQ) - 지금도 일반인과 외국인 출입금지
201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시의 인구는 431,902명
(2002년 인구조사에서는 430,003명이던 인구가 답보상태이다)으로 기록되어 있
다. 그리고 그 민족구성은 러시아인 77.9%, 벨라루스인 8.0%, 우크라이나인 7.3%,
리투아니아인 1.9%, 독일인 0.6%, 폴란드인 0.5%이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중심 기차역인 남부역
▲ 칼리닌그라드 남부역 광장에 세워진 미하일 칼라닌 동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포츠담선언에서 연합국이 영토문제의 최종적인
결정을 보류한 지역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이 도시는 소련의 일방적인 지배
지역으로(러시아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의 소속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에는 소련 발트해의 중요한 해군기지로서 큰 역할을 하였으나, 소련이 해체되면
서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이 독립하게 되고, 이 지역은 소련의
승계국인 러시아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항만
지도를 펼쳐서,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Lithuania)를 찾으면, 그 두 나라 사이
에 섬처럼 러시아 영토가 발트해를 끼고 조금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주이다. 러시아 본토로부터 떨어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섬처럼 자리잡은 칼리닌그라드 주(州)는 세계에서 가장 소비에트적인 곳으로
불린다.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벨
라루스(Belarus)가 모두 소비에트연방 가맹국이었으므로 한 나라였다.
▲ 칼리닌그라드의 역사박물관 - 들어가 보면 별로 볼 것도 없다.
현재 이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주는 러시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
고 또한 에이즈보급률도 높기로 유명하다. 소련의 군사기지로서 1990년대 초까지 출
입이 금지되었던 도시로서 우리들에게 '베일에 싸여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상황과 크기에 걸맞지 않게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주변 국가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땅이고 또 700년이 넘도록 프로이센공국(Preußen)의 중심지로
명성을 구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역사와 세계지리 및 세계의 흐름을 잘 아는
편에 속한다.
▲ 칼리닌그라드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옛 성곽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가 독일 영토이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쾨니히
스베르크(Königsberg)라고 하여, 이 도시의 최초거주자는 '프로이센인'이다. 그런데 이
'프로이센(Preußen)'은 현재의 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으로 폴란드를 동서를 갈라 놓는
비스와 강(폴란드어: Wisła / 독어: Weichsel)에서 시작해 현재 리투아니아-칼리닌그라
드 국경에 이르는 지역에 아주 옛날에 살던 민족으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같은 어족
인 발트어(Baltische Sprache/ Baltic language)를 쓰는 발트족(Balts)이었던 것으로 알
려져 있다.
▲ 칼리닌그라드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대성당
▲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대성당을 포커스로 하여 낮은 연못 수로를 건너 시가지를 담다
현재는 역사적인 자료에만 그들의 생활이 조금 남아있다. 자연을 숭배하고 족장들이
지배하고, 시체를 집에 안치하는 등 그 당시 프로이센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한 서유럽
사람들은 프로이센의 그런 면에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지역의
사람들은 13세기부터 현재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지역에 진출한 독일인들에게
밀려나거나 아니면 많이 융화되어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지리적으로 서유
럽에 더 가까운 관계로 중세시대 서적에 나타나는 발트인(Báltico)들의 자료는 주로
이 지역에 살던 고대 프로이센(Preußen) 사람들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공산주의 건축술의 하일라이트인 소비에트하우스 건물
그런 지리적 위치로 인해 그들은 리투아니아(Lithuania)나 라트비아(Latvia)보다도
먼저 발트족(Balts)으로 알려져 문헌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가 현재
리투아니아어와 비슷한 발트어의 한 계열이었다는 증거로는, 독일인들이 그들 언어
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놓은 문서만 몇 개 내려오고 있지만, 그것도 발트연구가들에
게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영토에 독일기사단(=튜턴기사단)은 무역 전진기
지를 만들었고 폴란드 북서부 마주리(Mazury)지역부터 리투아니아 북부까지 영토
를 확장했다.
▲ 소비에트 최고수준의 건축양식인 "예술의 전당(The House of Arts)" 건물
프로이센(Preußen)의 역사는 따로 다루어도 상당히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룬다. 어쨌든 현재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제2차세계대전까지 독일제국의 동
쪽 영토로 존재하였으며, 2차 대전 중에는 히틀러가 폴란드북부와 발트3국을 손에 넣
고자 결심을 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최고수준인 소비에트관광호텔(Soviet Tourist Hotel)
필자는 독일의 베를린(Berlin)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zawa)
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제2차대전 이전에는 독일영토로 이름이 단치히(Danzig)이던
그단스크(Gdansk)로 가기 위해 말보르크(Malbork)라는 도시를 지나가게 되었다. 서
유럽에 비해서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옛건물이 거의 없는 이 나라에서 기차를 타고 북
부도시 그단스크(Gdansk)로 가다보면 이 도시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어마어
마한 규모의 성이 있다. 이렇게 평지가 많고 온순해 보이는 나라에 잘 어울리지 않는
붉은 색깔의 이 거대한 성곽은 폴란드인들이 지은 것이 아니고, 프로이센에 거주하던
튜턴기사단(Teutonic Order)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천년의 고도 폴란드의 그단스크
(Gdansk) 역시 프로이센(Preußen)의 튜턴기사단이 건설한 도시로서 아주 유명하다.
▲ 옛날에 성(城)안에 있던 저수지인데, 지금은 "깊은 연못(Lower Pond)" 이라고 부른다.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리투아니아어로는 카랼랴우츄스(Karaliaucius)로
불렀다. 그 지역이 '소(小) 리투아니아(Mazioji Lietuva)' 로 불렀었다는 사실을 모
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문화 활동이 그곳에서 많이 일어났었다. 그 당
시 유럽최고 중 하나였던 루터 개신교대학에서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 개신교를
전파하기 위해 최초의 리투아니아어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다.
▲ 칼리닌그라드의 "깊은 연못" 가에 서있는 소비에트시절에 지은 주거용 건물
러시아령에 의해 리투아니아(Lithuania)에서 리투아니아어 자모를 이용한 출판이 금
지된 시절에는 리투아니아어 서적들이 프로이센에서 다수 출판되어 리투아니아 민족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서쪽으로는 프로이센(Preußen), 동쪽으로는 리보니아
(Livonia), 그 가운데를 리투아니아가 맞서서 영토를 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제국은 끝내 하나로 연결이 된 적이 없었다.
▲ 오래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건축물이 옛날 성곽저수지 끝부분에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연합국은 1490년 프로이센 독일기사단들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린 경험도 있다. 폴란드어로는 그룬발트(Grunwald)전투, 리투아니아어로는 잘기
리스(Zalgiris)전투로 불리는 전쟁으로, 당시 중동부 유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
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유럽의 최강 농구팀인 리투아니아 프로농구팀의
이름이 <잘기리스>인데, 이것은 바로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 칼리닌그라드에는 전형적인 소비에트 스타일로 지은 1950년대의 주거용 건물이 있다
역사적인 도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과 소련군의
폭격으로 무참히 파괴되었다. 거기 살던 발트독일인들은 독일로 돌아가거나, 다가오
는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를 피해 얼어붙은 발트해를 건너가면서 죽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그 지역에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이 도시 칼리닌
그라드(Kaliningrad)를 서방의 무역통로로 1991년 개방을 시작했을 때, 옛 영화는
사라지고 시커멓고 냄새 나는 물이 흐르는 강과 매연이 가득한 특징 없는 소비에트
건물들이 가득 들어선 칼리닌그라드에서 옛날을 기억하는 독일인들은 울음을 터뜨
렸다고 한다.
▲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소비에트시절에 지은 주거용빌딩
문화적 차원에서 리투아니아(Lithuania)로의 복속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거절이다. 영토와 함께 수십만의 러시아실업자들이 몰려
오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서다. 현재 러시아인 문제로 골치를 앓는 이웃 나라 라트
비아(Latvia)에서 배운 교훈이다. 러시아인들의 차별대우로 러시아정부로부터 무역
금지조치까지 당한 바 있는 라트비아에 비해 리투아니아는 그 가난한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을 도와줌으로 좋은 소리를 듣고있다. 아직도 군사기지로서의 성격이 강한 칼
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서 과거 냉전시대의 산물로 다소 껄끄럽게
남아있기도 하다.
▲ 칼리닌그라드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성당과 앞에 보이는 낮은 연못 수로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를 가보라고 권할 정도의 도시는 결코 아니다. 독일이나
폴란드 및 발트3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하는데,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이다. 그
러나 러시아는 아직도 비자를 요구하는 국가이면서, 칼리닌그라드는 일단 러시아에
속하는 지역이라 비자받기도 힘들고, 체제자체가 까다로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그곳을 다녀오면 다시 러시아본토로 들어가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
부르크를 관광하여야 하니까 러시아 복수비자가 필요하다. 그런 까다로움을 감수한다
면 칼리닌그라드에도 상당히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 칼리닌그라드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주교대성당
지구상에서 은(銀) 도금된 레닌동상을 박물관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아니면 거의 없고, 줄을 길게 서고 북적거리는 과거 구소련의 분위기도 사라지기
전에 직접 가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그런 위험천만한 모험이 싫다면, 프로이센시절
으리으리하던 대성당의 '폐허' 와 칸트의 동상이나 무덤 등 '안전한' 볼거리도 있다. 칼
리닌그라드 주에 있는 도시 '얀타리' 에서는 세계 유일한 노천호박(琥珀)광산이 있어
전 지구상의 90% 이상의 호박을 생산한다. 옛날에는 접근이 금지되었었는데, 지금은
직접 가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 “로스가르텐 게이트”(Rossgarten Gate / 러어 : Росгартенские ворота / 독어 : Rossgärter
Tor)는 칼리닌그라드에서 과거 독일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시대에 만들어져서 남
아있는 7개의 도시성곽 문 중 하나이다. 이 문은 체르니야코프스코고거리와 알렉산더 네프스키
거리의 교차점에 있는데, 바실레프스키광장과 칼리닌그라드호박박물관 가까운 곳이다.
그 이외도 스베틀로고르스크(Svetlogorsk, 칼리닌그라드에서 35km), 젤레노그라스
크(Zelenogradsk)해변은 우리나라의 낙산해수욕장만큼은 안 돼도 가볼만한 곳이다.
물론 전부 러시아어를 쓴다. 현재 이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영토와는 별도로,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은 '발트4국' 으로서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들어보자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 푸틴까지 나서서 유치한 2018년 월드컵축구대회에서 굳이 이런 오지의 특수한
도시를 월드컵을 치르는 곳으로 정한 것은, 결코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를 포기할 수
없고, 영원한 러시아의 영토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 메르체데스-벤츠 버스(Mercedes-Benz Bus)가 다니는 포베디광장(Pobedy Square)
“포베디(Pobedy)"는 러시아어로 '승리'라는 뜻인데, 거의 모든 도시에 승리라는 지명이 있다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비행기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가 모스크바에서 연결을 하고
있고, 그 외의 항공사는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만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칼리닌그
라드로 취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으로 취항하는 비행기가 없는 관계로 모
스크바 경유가 가장 좋은 노선인 듯하다.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zawa)와 그단스크
(Gdansk), 리투아니아의 빌뉴스(Vilnius)와 클라이페다(Klaipeda), 라트비아의 리가
(Riga) 등에서 가는 버스도 있어, 현지인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
이 이용하기 좋다.
▲ 칼리닌그라드 시내 구형 중소형 호텔은 많다 - 두류봉이 하룻밤 묵은 숙소이다.
▲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시내에 자리잡은 공원의 녹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