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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당 용문산전투 청성부대 복수전
BACCANO 추천 0 조회 2,522 11.06.30 15:49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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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30 17:02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1.06.30 19:32

    감사합니다 ㅠㅠ

  • 11.06.30 19:47

    화천호 -> 파로호(오랑캐를 부수고 사로 잡은 호수 - By 리승만)
    결론은 역시 전장의 꽃 : 포병 만세군요.
    현대 포방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군요.초전에 북한 포병에 패닉상태가 되고 나중에 저토록 재미를 봤으니...
    근데 글 말미에 중공군 피해는 구체적인데 6사단의 피해는 언급이 없는 게 좀 아쉽군요.

  • 11.06.30 21:27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이랍니다..

  • 11.06.30 22:10

    적군의 피해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군요.일방적이군요.굳이 언급 안할만 하네요;;

  • 작성자 11.06.30 23:48

    그런데 6사단의 피해도 대부분 2연대에서 나온거죠 2연대 부왘ㅋㅋ
    3개 사단 덤벼 오랑캐넘들아

  • 11.07.01 18:02

    으아니.. 정말 읽고있으면서도 믿기힘드네요.. 피해정도가 으아아.. 일방적인 대승이네

  • 11.06.30 21:28

    역시....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옛날이나 근-현대나 고지가 중요...

  • 11.07.01 00:04

    용문산전투가 포위되기만 하면 군자체가 와해되던 국군의 단점(?)을 극복한 건데다가 열악한 보급능력때문에 공세한계가 3일밖에 되지 않는 중공군의 단점도 여지없이 드러난 전투죠. 저때 밴플리트에게 쿠사리를 먹은 장도영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우리국토를 침략한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일장의 연설로 사병들을 고무시켜 포위상황에서도 이전과는 달리 결사적으로 싸웠던게 중공군이 오판하게 만든거랍니다 (저때는 장교가 사병을 탈영못하게 감시하는게 아니라, 패닉에 빠져 도망가려는 장교를 사병들이 잡아(?)와서 싸우게 했다고 하더군요).

  • 11.06.30 22:11

    우리 군은 6.25를 기점으로 고질적인 모랄빵을 뒤집었군요.정신교육의 위력이란...

  • 11.07.01 00:32

    글을 읽고 마지막 사진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군요. 저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겠죠.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07.01 13:35

    오히려 읽느라 수고하셨슴다

  • 11.07.01 00:50

    경험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대단한 성과를 거뒀군요. 역시 정신력의 힘이 대단하네요..

  • 11.07.01 04:44

    정말...가슴이 뭉클하다고 밖에..ㅠ..ㅠ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김정일 찬양하는 인간들은..참...ㅡㅡ

  • 11.07.01 18:12

    하지만 당시 김일성의 조선인민군 휘하에 인민군 수뇌부들 상당수가 항일무장투쟁세력이었단것만은 잊지않아주셨으면 ㅜ.ㅜ

  • 작성자 11.07.01 22:41

    그러므로 김일성 개객기

  • 11.07.03 15:36

    그 항일무장투쟁하던 장교단 모조리 숙청크리...김원봉, 방호산, 무정...싸그리 숙청ㄷㄷ;;김일성 개객기야~~~!!(진짜 개객끼임 애비놈이나 아들놈이나 손자놈이나)거기다 그 항일무장투쟁이란것도 죽어~라 일본놈들하고만 싸운것도 아니고...팔로군계열에 속해서 모택동이가 말했듯이 우리의 전력의 10%는 일본군, 30%는 국부군, 60%는 우리세력확장의 앞잡이성격을 띈경우가 많았으니 진정한 의미의 항일 투쟁이라고는;;;(물론 숙청된 인사들이야 화려한 항일 전과를 증명하지만...)

  • 11.07.01 18:11

    당시한국군 수뇌부들 대부분이 친일인사였단게..그래서 그런 모랄빵이 가능했는지도..

  • 11.07.01 19:28

    22미군들이 병사들은 사기가 높고 용감하나 훈련이 부족하고,장교들은 모랄빵이라고 기록돼 있다더군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7.01 21:17

    박정희가 일으킨 5.16때, 처음에는 박정희의 추대를 받아서 국가재건회의 최고 의장에까지 올랐다가 나중에는 박정희한테 숙청당했죠.

  • 11.07.01 21:43

    중공군의 피해가 컸던건 공격하다가 탄약과 식량을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재보급을 받지 못하고 패주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당했기 때문이죠. 미군의 제공권때문에 중공군은 개인이 소지한 탄약과 식량만으로 싸워야 했으므로 3일이상 공세를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즉, 3일이내에 국군을 공격해서 보급물자를 뺏던지 후퇴해서 재보급을 받아야 했는데, 2연대의 선전으로 전황을 오판하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거죠.

  • 11.07.01 22:03

    저때는 사병이나 장교들 모두 젊다보니 경험이 부족한데다가 북한이나 중공군에 비하면 장교단이 사병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크다보니, 평시에는 그런대로 싸우다가도 포위되거나 하면 패닉에 빠져 금방 와해되는 경향이 많았죠. 지금생각해보면 저때의 정신무장이라는게 지금보면 별게 아니죠. 따지고보면 6사단이 직전에 겪었던 사창리전투나 현리전투와 용문산전투의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 이유는 별게 아니죠.

    유재흥이 작전지휘후 포위망밖의 군단본부로 비행기를 타고 복귀한건 일상적인 업무라고 생각하겠지만, 위기시에 사병을 버려두고 장교단이 먼저 도망가던걸 겪어오던 사병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뻔하죠.

  • 11.07.01 22:13

    현리전투때의 유재흥과 용문산전투때의 장도영의 차이는 작전을 잘짜고 병사를 잘 지휘하는 것보다는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었고, 이런 어찌보면 사소한 차이가 승패를 바꾼 계기가 된거죠.

  • 11.07.05 15:49

    풀군단 하나로 적군 12개 군단 길막으로 막고 있었던 거임 ㄷㄷㄷㄷ

  • 11.07.05 21:22

    우와 진짜 대단하다

  • 11.10.21 20:33

    [청원] 다른 부대에 대한 것도 올려주세요.

  • 작성자 11.10.21 20:35

    어느부대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나요? 고갱님 이번주로 작성해서 올리겠나이다

  • 11.10.21 21:02

    소위 메이커 사단이 오래되고 유명하지 않나요? 청성도 메이커 사단이고요. 백골이나 노도사단등이 가장 궁금하네요. ^^

  • 작성자 11.10.21 21:11

    메이커 사단이라고 해서 다 무시무시한 전과를 세우게 아니라서 문제죠;; 소위 말하는 메이커 사단이 1,2,3,5,6,7,8, 수도경비사령부인데 이들 중에서 1,6,8 사단을 제외한 사단이 모두 전쟁 기간중 해체와 재창설이라는 불명예가 있습니다;; 노도가 2사단 백골이 3사단인데 개전초기때 서부전선에서 박살나는 바람에;; 전쟁후반에 가서 힘좀 쓰게 되죠;;

  • 11.10.21 21:51

    헐... 뭔가 무시무시해 보이는데 개전 초기 박살이라니... 환상이 무너지네요. 그냥 작성 하고 싶으신 사단이나 부대를 올려 주시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

  • 11.10.22 18:39

    글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ㅎㅎㅎㅎ..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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