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응복 (1923~2022)】「대학에 전재산 113억 기부하고 떠난 99세 의사」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서울에서 30년간 작은 진료실을 지키며 일했던 의사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13억원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장응복(99)씨 얘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자신의 생전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피란길에 올랐다. 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인 병원인 ‘장의원’을 열고 30년간 일했다. 유족들은 “개원할 때만 해도 한남동은 서울 변두리였는데, 그곳에서 아버지는 1991년 은퇴할 때까지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일하셨다”고 전했다.
장씨는 의사로 번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해 재산을 100억원 이상으로 불렸지만 늘 검소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옷도 아내인 김영선(93)씨가 손수 뜨개질한 것을 즐겨 입었다. 대신 재산은 미래 세대를 돕는 일에 쓰기로 했다. 2015년 35억7000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억~50억원가량을 한동대에 기부했다. 한동대 표어 ‘배워서 남 주자’에 감명받아 “벌어서 남 주자”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장씨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가 2015년 기부를 시작하기 직전에야 거액의 재산을 모은 사실을 알았다.
113억원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장씨는 그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한동대 학생 250여명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생전 그는 자기 재산을 남에게 알리거나 과시하지 않았고, 조용히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대학에 기부했다.
장씨는 원래 고향인 황해도에 학교와 교회를 짓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통일은 기약이 없어 보였고 결국 한동대에 기부를 결정했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학교 표어에 감명을 받았고, 학교에 찾아갔을 때 일면식도 없는 장씨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고인과 생전에 가깝게 지낸 강신익 한동대 교수는 “검소하게 살던 분이 어느 날 학교에 매년 1억원씩 기부하겠다고 해 놀랐는데, 며칠 뒤 100억원을 전부 기부하겠다고 하시고 결국 말씀을 지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