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관계회절현상 외 4편
부드러운 솜털로 위장하고 있다 바짝 달궈진 어제가 모래언덕을 가로질러 현재에게 왔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질긴 부끄러움을 살뜰하게 밝혀주는 어제의 뒷모습이 두렵다고 느낄 무렵
적절한 간섭이 없는 사막에서
어제와 현재는
불가침 경계를 지키자는 약속
아주 쉬운 다짐을 매우 어렵게
각자의 방식으로만 고집했다
어제는 강을 품고 있다 퇴적한 의심 때문에 길어진 강줄기를 현재 몰래 품고 있다 아스라이 멀어질 궁리만 하는 현재는 퇴적층을 들춰내어 관계를 푸르게 재생하는 공정을 일부러 가동하지 않는다 현재와 어제는 상대의 어깨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손바닥을 가졌으나
상대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의도를 영리하게 실행하는 손톱을 키운다 커다란 손바닥은 그냥 무심한 자세로 탁자 위에 올라가 있다 손톱들은 의도를 숨기기에 적합한 방법을 재바르게 찾아낸다 탁자 위에서 손톱들이 군무를 하는 동안, 현재와 어제는 서로에게 파동을 진지하게 감지하라고 제발, 강요한다 의자가 간간히 허리를 꺾으며 이런 현상을 웃어준다 신기루다
사막의 신기루는 잡히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계산하고 실행하는 공정제어시스템을 가졌다 어제는 햇살의 밀도와 농도를 주입하지만, 현재는 해질성의 자기장을 버리지 않는다
저 모래알갱이 때문이야
모래알갱이 좁디좁은 틈을 간과한
확신이 불안을 생산하는 거야
휘어지고 끊기는 불연속무늬가 복제되다 결국,
오해는 강화되고 불가침 경계는 소멸되는 거라고
현재가 옷을 짓는 작업실에 어제가 왔다 크게 만들어 입으라고 여러 번 강조하는 어제를 따르느라 줄자는 자꾸 헐렁해졌다 현재는 줄자의 나른함을 원망했다 거침없는 사막에서 무언가가 간섭한다는 걸 알아챈 현재와 어제가 장애물을 탐색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럴 때마다 어제의 물길은 현재의 발목을 감았다가 풀어 주는 걸 반복했다 현재와 어제는 따로 살기로 한다 솜털이 곤두서는 오후 두 시였다
편서풍이 불 때마다
태양은 자부룩이 흩어지네
오늘 피어난 들꽃에게 편두통이 유전되고
새 주소를 받지 못한 그대는
세상의 허무를 다 읽어야
내게 닿을 수 있네,
방황으로 늙는 것도 축복이라는
옷깃이 웃다웃다 글썽거리네
그대의 먼 곳이 일어서네
마부는
아직 어린 남자아이였네
직류를 꿈꾸다
지평선을 유산으로 받았다면
매매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지평선 한 필을 뚝 끊어다가
장마당에 내다판다면
세기의 지평을 열겠다는 정치인들은
대를 이은 노동이 완성한 지평선의 값을
얼마나 놓을까?
건물을 높이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쓸모없는 질경이나 길러내는
지평선을 얼마나 견디어 줄까
나는 이제 자라는 나이가 아니다
오늘도 산만큼 죽음을 길러냈다
말문에 빗장을 지른 저 지평선이
가슴 깊이 품어 키우는 문장을
또박또박 받아쓰는 필경사이고 싶다
수많은 사유의 고랑을 헤매며
지평선의 푸른 입술을
단숨에 열어젖히는 시인이고 싶다
후슈르 Khuushuur
끓는 기름 솥에서
초승달이 떠오르네
사막 사람들은 끼니마다 달게 먹네
모래바람은 냄새만 맡고도
천릿길을 너끈히 달리네
기울고 이지러지는 삶이 명확해서
채우고 차오르는 생이 야단법석이라
조용히 떨어져 나온 행자
세상 어디에도 태그되지 않은 채
구글맵을 검색하는 유랑자들의
손톱 아래서 때를 기다리네
세상 어느 누구도
제 손톱 아래 숨어든 초승달을
쉬이 발견하지 못한다네
떨어지는 별을 본 어린 당나귀가
투레질 하는 그 때를 기다려
초승달 하나가 희미하게 떠오르네
늦게서야 허기를 느낀 저녁이
따뜻한 밥 한 술 뜨는 그 때를 기다려
단단한 사구가 부드럽게 익어가네
모든 물상이 일기장을 펼치는 그 때
초승달은 제 모국어로 말문을 여네
카페 시집
닫힌 표지 앞에서
자음과 모음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나도 기다란 줄 끝에
하나의 홀소리로 서 있다
표지가 열리면 향기가 피어난다
탁자마다 빼곡하게 들어앉은
자음과 모음들이
화두 한 잔 씩 들고 있다
같은 음료를 앞에 두고,
같은 표정으로 음미하는 자모子母들을
의자가 삐걱대며 나무라기도 한다
목차에서 고른 화두를
두 모금쯤 남겨두고
시집의 좁은 계단을 휘휘 돌아
다음 페이지로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손차양을 하고 멀리 바라보면
허공을 가로질러 백로 한 마리 날아온다
미처 챙기지 못한 행간을 물고 내게 온다
시집 밖에서 여치울음이 익는 내내
표지 귀퉁이는 야상곡을 걸어놓는다
하얀 변곡점 외 4편
유랑의 발꿈치가
드문드문 박아 놓는 저걸
정박의 광두정이라 부를까
승진을 꿈꾸지 않는 풀밭의 양어깨에
계급장을 쳐주는 저걸
문진文鎭이라 하면 어떨까
바깥으로 나앉은 어제를
톡 톡 쳐서 귀틀을 맞추는 저걸
마침표라고 호명하면 어떨까
모래언덕이 익어가는 소리에
수굿하게 살굿빛 귀를 내주는 저걸
발효되는 이승이라고 할까
탈색한 사상을 낙타 등에 실려 보내고
띄엄띄엄 초원 위에 앉아
동그랗게 졸고 있는 구릉들
직진의 모서리를 다듬어 곡류로 변환하는
저 게르들을
무어라고 부를까
저녁이 만지작거리는 기억들
발목에 감기던 풀잎
등하굣길에 흘겨보던 공동묘지
떠돌이 여인이 아비 없는 딸을 기르던 헛간
두근거리며 엿보던 상엿집
여공의 자살 소문이 맹렬하게 번식하던 버섯공장
이끼에 몸을 다 내어준 암자
욱신거리는 치통 너머로 바라보던 노을
찬바람을 둘둘 감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자전거
등피를 닦아 놓으면 이드거니 물러나 앉던 어둠
동행
어미를 따라다니던 새끼 기러기가
오늘은 혼자서 왔다
새끼의 맨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농부가
나락 몇 포기를 그냥 둔다
팽팽한 귓등
계수나무마다 빵 굽는 냄새가 살뜰한
저녁 어스름이었다
금방 올게 잠깐만 기다려
컴컴하게 닫힌 구멍가게 앞에서
비단 치마를 휘감은 바람은
보름달을 어린 손에 쥐어준다
바람은 두어 번 주춤거렸으나
무너지는 기침 소리를 외면한 채
바짝 졸인 가래나무를 떠난다
보름달을 받쳐 든 조막만한 손이
가래나무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떠나는 바람을 어찌해보지 못하는
가래나무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을 뿐이다
금방 온다는 말의 온기를
명치에 쟁여 넣으며
빠르게 줄어드는 보름달 빵을
안타까이 아껴 먹는
어린 손에게
속이 훤히 비치는 빵 봉지처럼
속이 뻔히 보이는 금방 온다는 말
잠깐만 뿔을 빌려달라는 사슴의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린 낙타가
자손 대대로 뿔을 잊어야 했던 것처럼
곰곰 엄마를 잊어야 한다고
줄어드는 보름달이 속삭인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커다란 눈망울에
자꾸만 검어지는 가래나무의 마른 등에
간지러운 귓속말처럼 눈이 내린다
속은 비었어도 향기는 오래가는 꽃처럼
속이려 한 약속조차도 오래 힘이 되는
바람이 넘어간 산의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진다
내 몸을 환산하면
비누 일곱 개
- 씻어 내고 복원하는 기억보다 더 무거운 거품
- 모든 구멍은 거품의 자생지
- 거품 내는 일에 골몰하는 비누들
못 한 개
- 예각의 사명보다 예리한 사색에 충실한 신경
- 모든 오해를 처절하게 잡아 두려는 습관
- 멍청하거나 달관한 못대가리
연필심 이천 자루
- 그림자를 그리다가 스스로 전복되는 달빛
- 모든 허공을 채록하려는 야망으로 탕진하는 하루
- 끝내 부러지지 않겠다는 연필심
오남용되는 미소는 아직도 로딩 중
호박벌의 비행
시인이 되고 싶은 꿈도, 시에 대한 목마름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심리학자, 사학자 이런 것들이 근사해 보이던 고3 시절, 은사님께서 ‘너는 국문과에 가라, 국어 선생은 한 학교에 여러 명이 있고, 없는 학교가 없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학과들은 희소성이 있어서 졸업 이후 취업하기가 힘들다. 우선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고 말씀하셨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시골 사립고등학교의 국어 선생이 되었다. 시골이라서 아이들은 영특하고 순박했지만, 학습능력은 인근 도시 아이들에 비해 뒤졌다.
‘아이들 앞에서 똑똑한 선생은 되지 말자, 너무 많이 설명하지 말자, 단 한 가지라도 확실히 알려주자’를 교사 생활의 신조로 삼고, 고등학교 교과서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함께 동화 읽기를 시작했다. 이어서 동시, 수필, 그리고 단편소설들과 시를 읽어나갔다. 자연스럽게 문학작품을 많이 대하게 되고, 재야에 숨은 고수가 수두룩한 이 조직에 겁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냥 이렇게 별 고민이나 사색 없이 시인이란 문패를 덜컥 달았다. 아직 시에 대한 나름의 정의 하나 갖지 못한 어설픈 시인이다. 그래서인지 거대 담론이나 사회혁명 이런 것들이 내 시에는 없다. 그러나 문학에는 독주도 없고 완성형도 없다는 믿음은 여일하다.
호박벌이 날 수 있는 것은 조물주의 실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조물주가 호박벌을 만들 때 깜빡 잊고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없는 구조의 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날개를 가진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당연히 날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호박벌처럼 국어 선생은 당연히 문학 활동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뚱뚱한 몸에 보잘것없는 작은 날개를 가진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없다는 신체적 구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꿀을 모아야겠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날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며 날개에 근육을 만들었을 것이다. 드디어 날아올라 꿀을 따는 기적이 일상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작가든 호박벌과 같이 부단한 노력으로 글을 쓰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인간은 꿈을 꿀 때만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시인도 시를 쓰는 시간이 진정 자유로운 시간이다.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시를 생육하겠다. 그리고 이 길을 끝까지 걷겠다. 미처 다 걷지 못한 길은 다음 생에 이어서 걷겠다.
들꽃은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향기를 거두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는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향기를 위해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