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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흰 얼들의 대합창 김 룡 운 1. 세우는 말 지금 내 앞에 38수의 시와 수필 한편이 놓여있다.(그중 중국 조선족 작품 26수, 한국 작품 13수) 작품들을 보노라니 마음이 사뭇 숭엄해지고 경건해진다. 파운드는 독자가 시작품을 대한다는 것은 곧 어떤 신과 대화하는 순간처럼 엄숙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아마도 시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시인의 두번째 생명을 감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시가 신성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또 시작품을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또 자신을 법의 심판자가 아니고 꿈의 해석자 요셉이라고 말한바 있다. 까딱하면 오도(誤道)에 들어서기 쉬운 해석, 좋은 시를 만날 경우 엄숙성은 한결 더 해진다. 39수의 작품들이 하나의 념주로 꿰여져 우리 민족의 비희고락을 념불하고 그 뒤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찬란한 원광(圓光)이 무지개로 일어선다. 39수의 작품들은 또 갈래갈래의 내물이요 그것들이 한데 뭉치여 마침내 <<민족의 얼>>이라는 커다란 호수를 이룬다. 중한 조선족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가슴을 허비는 것도 어쩔수 없었다. 가령 이번 작품집에 조선 시인들의 작품도 함께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만약 그들까지 참여 하였더라면《한글시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중한문학세미나》가 아니라《한글시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중한조문학세미나》로 되여 짜장 보다 어울리고 보다 완정한 세미나로 되지 않았겠는가. 그 놈의 이데올르기가 저주롭기만 하다. 중국 조선족의 문학을 점검해 보면 중국(한족)의 문학보다 한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음을 보아내게 된다. 중국문학은 통속문학, 주류의식문학, 정예문학이라는 3위일체의 삼두마차를 타고 전진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선봉파 시인(혹은 제3세대)들이 전통에 반기를 들고 《의식환원》(意識還原),《감각환원》(感覺還原),《언어환원》(語言還原)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창조환원》(創造還原)을 부르짖었으며 복잡한 아귀다툼속에서 진보의 일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의 시문학은 중국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아주 조용히 흘러왔으며 대신 한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혈통이라는데 있고 같은 문자를 사용한다는데 있을것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보이지만 오직 같은 민족이라는 까닭 하나로 관심사도 함께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중국조선족의 삶, 남북통일 등을 주제로 한 시들이 그러하다. 한국과의 문이 열리게 전에 우리 조선족의 시들은 기본상 이데올르기의 노예로 충당된 가짜 이얼리즘시들이였다. 용속사회학과 공리성, 권력언어에 얽매인 시는 발전할래야 발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한국 문이 열리고 한글서적이 대량 밀려들고 문인들의 내왕이 빈번해지자 비로소 세계 여러가지 문학사조와 접할수 있게 되었고 기교상에서 알게 모르게 한국시들을 답습했으며 지금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와 적지 않은 중국조선족시인들의 작품이 한국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수준급에 이르고 있다. 본 글에서는 주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살펴 보고자 한다. 시간의 촉박과 그리고 수준 미달로 하여 일일의 작품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음과 기마관화(騎馬觀花)식으로 지나쳤음을 우선 밝히며 양태를 구하는 바이다. 2. 형식고찰 이번에 나가게 되는 시집은 그 어떤 시집에 비해 틀의 다양함을 체현했다는점에서 특히 괄목이 요청된다. 석줄짜리 단시가 있는가 하면 84행에 달하 는 장시도 있고 시조가 있는가 하면 민요체도 있고 한문격률시도 있어 과시 그 틀이 다양하다 하겠다. ㄱ)단시: 이번 시집에서 단시로써 재기를 보여준 이들로는 원공 시인과 김철학 시인이다. 이들은 작은 형식에 큰 내용을 담음으로써 단시의 묘미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가지마다에 보슬비 내려오니 맺인 물방울 —원공《온정의 손길》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였지만 파고들 수록 긴 이야기가 묻어나온다. 맺힌 물방울인즉 《온정의 손길》바로 그 것일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일 수도 있고 부처님의 애무일 수도 있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도 나무가지에 맺힌 한 방울의 물방울을 보면서 결코 그저 지나칠 수는 없으리라. 많은 생각들을 해야 하리라. 계곡에 남아있는 눈 빛이 안 닿아 —원공《온정의 손길》 우의 시와 같은 맥락으로 읽어야 할 시이다. 소외된 자, 헐 벗고 굶주리는 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감동을 타고 조용히 흐른다. 모든 인간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모든 이들에게 차별없이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소망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이 시가 형식상 대단히 짧은 서정단시 라는 그 것 외에 결말이 표제로 되였다는 점이 또한 특이하다. 표제를 결말에 놓으면 아래와 같이 될것이다. 가지마다에 계곡에 보슬비 내려오니 남아있는 눈 맺힌 물방울 빛이 안 닿아 그것은 온정의 손길 흔적으로 남았네 —원공《온정의 손길》 —원공《흔적》 김철학의《기다림》도 썩 잘된 단시라 하겠다. 산모퉁이 에돌아서면 외진 강나루 나루터엔 비인 그림자… … —김철학《기다림》 《외진 강나루》와 《비인 그림자》가 서로 겹쳐지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낳는다. 기다림은 영원과 통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봉우리에 도달할 수 없을진대 인생 자체가 곧 영원한 기다림이 아니겠는가. ㄴ). 장시: 이 시집에서 가장 긴것이 이은심의 《중국 조선족 노동자 한중비》이다. 모두 1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불법체류자》의 딱지들 쓰고 불우한 삶을 살아가는 중국조선족노동자의 처지를 관심하고 동정하고 그들한테 인간 이하의 학대를 하고 있는 일부 업주들을 통책하고 있다. 여지껏 한국 시인들 중 중국 조선족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처럼 여기고 시를 쓰는 시인이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중에 이은심 시인이 끼여서 민족의 양심으로 모든 겨레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고 웨치고 있으며 나중엔 민족의 통일을 호소하고 있다. 이 시는 기교상에서는 그저 수수하나 (장시에서 언어의 합축성, 집약성을 체현키가 아주 어렵다.) 중국조선족의 삶을 비롯해 전반 민족군체의 삶을 관심하는 그 마음 가짐이 심히 돋보인다. ㄷ).민요, 한문격률시: 이 시집에서 남기일 시인이 유일하게 민요체와 한문 7언률시를 내놓아 시집의 형식다양화에 기여를 하였다. 가슴이 뜨거우면 사연도 많을 터 초여름 시작부터 發情한 세월이 무언의 눈길 속에 情炎을 발산한다. 여왕의 입맞춤에 정신이 몽롱하야 서슴없이 더듬은 오월의 허튼수작 공연히 몸이 달아 헤 벌린 입술 —남기일《5월의 장미》 기본상 3.4조 구조로 짜여진 이 민요풍의 시는 노래처럼 입에 잘 오르며 우리 민요 틀유의 정답고 구수한 맛이 풍기며 거기다 해학도 넌짓이 던져 주고 있어 한편의 훌륭한 민요시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더운 여름을 《발정한 세월》로, 5월의 해빛을 《서슴없이 더듬는》《흐튼 수작》으로 장미꽃을 《공연히 몸이 달아/헤 벌린》입술로 의인화 한 것이 사뭇 감칠맛을 준다. 이 시집에는 유일하게 남기일 시인의 한시《회고망향탑》(懷古望鄉塔)이 올라 있다. 보건대 이 시인은 한시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 같다. 민요《오월의 장미》도 한시로 번역하면 7언률시가 된다. 지금 중국조선족들중에서 한자가 한족만의 점유물이냐를 두고 일부 쟁론이 있지만 필자의 견해는 한자는 한족만이 갖고 있는 점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예로부터 한자를 써왔고 자기식으로 발전시켜 왔으니 우리도 주인중의 한 사람인 셈이다. 우리 중국 조선족시인들 중 남영전과 김학천 등 극 소수의 시인들이 한어시를 창작하고 있지만 한어격률시를 쓰는 사람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이렇다고 볼 때 조상들이 쓰던 한문률시를 되살리는 작업은 문화전통의 맥을 이어 놓는것으로 되기에 의의가 있다. 이 시의 핵으로 되고 있는 마지막 두 구절만 보자.《駱客堆前希祝手/久怨不吝水道流》(诗人이 망향탑 앞에서 두 손 모아 비노니/오랜 원망일랑 묻길 따라 흐르게 하소서.) 이 시는 압운이 정제하고 함의가 깊어 한족들의 7언율시에 크지 짝지지 않을것 같다. ㄹ). 시조: 중국 조선족 시단의 경우 시조의 위상은 하강 추세다. 시조가 크게 중시를 받지 못하며 쓰는 이도 적다. 특히 젊은 층에는 시조를 쓰는 시인이 극히 희소하다. 시조의 복구와 위상 수립을 위해 《연변시조사》가 섰고 이상각, 김응준, 조룡남, 김철학 등 시인들이 큰 힘을 들이고 있다. 이번에 나가게 되는 시집에는 4수의 시조가 들어있다. 그중에서 한상철 시인의 《주전(鑄錢)골의 단풍》만 보기로 하자. 새빨간 단풍 한 잎 십이담(十二潭)에 떨어져 시어(詩語)는 찰랑대며 종이배로 흘러간다. 멱 감던 선녀가슴에 연심(戀心)불을 당기네. 하나의 단풍잎에서 출렁대며 흘러가는 시의 쪽배를 발견하고 연심을 촉촉히 적셔내는 시적상상이 아주 묘하다. 3. 내용 고찰 중한시인들의 시작품은 형식상 다채로와 《흰 얼들의 합창》으로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상에서도 다종다양하다. 자연찬미, 추억, 그리움, 순수, 사회참여, 통일, 사랑과 생명 등 많은 내용들을 포섭하고 있어 역시《흰 얼들의 합창》이라고 할만 하다. 중국 조선족시인들의 경우 이상각 시인은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의 존재가치에 질문을 던지고 초탈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으며 김응준시인은 인간의 평등을 노래하고 김응룡시인은 인간존재의 허무를 말하고 있고 조룡남 시인은 사랑의 무한한 힘을 읊조리고 있다. 그리고 전춘매처럼 비움의 미학을 쓰는 시인도 있고 허련화처럼 현실 삶에 초점을 두는 시인도 있고 이순옥처럼 모성의 위대한 힘을 구가하는 시인도 있고 김경희처럼 자연의 신성함을 읊는 시인도 있고 이미화처럼 자연을 한폭의 초상화처럼 그려내는 시인도 있다. 한국 시인들의 경우 이시환 시인은 하나의 작디작은 섬에다 커다란 사랑의 법당을 짓고 있고 이효녕시인은 빈 집안에 홀로 앉아서 기다란 추억을 맛스레 씹고 있고 박정진, 이은실, 김태은 시인들은 통일에다 시의 화살을 날리고 있고 최원택시인은 포근한 그리움의 집을 짓고 있다. 이 시집에서 6명의 시인이 통일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중 한국시인이 4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통일문제가 중국조선족들보다 한국인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임을 보아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시집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통일주제와 사람과 생명주제만을 치중하여 취급하려고 한다. ㄱ). 통일주제:7천만 백의 동포에게 있어서 통일위업보다 더 큰 일은 없다. 그래서 남북이 분단된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통일을 두고 쓴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번 시집만 봐도 한국 시인들과 중국조선족 시인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통일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통일주제는 남북이 통일 되기 전까지 계속 될것이다. 박정진시인은 신라의 휘황찬란했던 천년사직을 그리워 하면서 오늘의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 이견대(利見薹)에 올라 용을 찾지만 도무지 하늘로 나는 용을 볼 수 없고 감은사 육중한 탑 그림자만 무심하네 통일의 힘을 온 몸에 서리게 하던 기상은 어딜 갔나 오늘의 통일도 그때와 같으니 천년을 뛰여넘어 여의주를 물고 힘차게 날아다오 -박정진 《신라여,일어나라》일부 애절한 하소연이다. 육중한 탑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에 《힘차게 날아다오》라는 구절이 있어 얼마간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순옥은 배달족속의 혼백의 노래《아리랑》을 부르면서 통일을 갈망한다. 이 세상 방방곡곡의 7천만 동포를 한품에 껴안아 5천년 세월 겨레의 가슴에 한으로 물든 분단의 장벽 허물어 다시 5천년 세월 온 세상 어데라 없는 백의 겨레의 목청 다 합쳐 부르는 배달족속의 혼백의 노래 -이순옥《아리랑》 사실 백성들에게 있어서 통일에 대한 부르짖음은 한낱 임시 스트레스에 불과하다. 어떤 정치가들은 백성이 역사를 창조했다고 하지만 자고로 역사가 백성들의 뜻대로 만들어진것이 없었고 반대로 권력층의 의지에 따라 좌우지 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갈망은 갈망인 것을, 그래서 박정진 시인은 신라의 혼을 불러 통일을 호소하는 것이요. 이순옥시인은 《아리랑》에 매달려 통일을 넉두리 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대표작과 신작을 모두 통일주제로 다른 시인이 이은심이다. 시인은 장시《중국 조선족 노동자 한중이》에서 중국 조선족 노동자의 불우한 처지를 동정하면서 곁들어 통일념원을 썼고 《고구려의 기도》에서는 고구려 고분 석실에 맺힌 이슬을 보면서 남복 통일을 기도한다. 그런데 이 시인에게 있어서 통일은 묘망한 꿈이 아니라 실현가능성을 많이 띠고 있어 시의 색채가 결코 어둡지는 않다. 이제 석실 내부에 맺힌 검은 눈물은 금시라도 동북아의 높고 푸른 하늘을 금가게 할 듯 남북한 조선족 모두 먹여살릴 벼농사 지을 수 있다는 흑룡강성 삼중평원의 늪지대 위로 태평성우를 몰고 올 것만 같다. -이은심《고구려의 기도》일부 김태은시인은 통일 기다림에 너무 지치고 애탄 나머지 특권층과 위정자들한테 분노의 돌멩이를 던진다. 휴전선은 억지야. 남북통일은 가면이야 -김태은 《휴전선은 억지야》첫연. 시인의 말이자 우리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우리 민족은 재수없는 민족이고 너무나 순한 민족이다. 역대로 남한테 얻어맞은 역사는 있어도 남한테 귀쌈 한번 때린 적이 없다. 3.8선은 확실히 국제세력의 강박에 의해 그어진 것이다. 특권층과 위정자들을 향해 아무리 돌멩이를 던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3.8선은 지금도 눈을 펀들펀들 뜨고 가르 누워 있는것을 . 사실 그렇다.《휴전선은 억지야/남북통일은 가면이야.》 통일주제를 다룬 시들은 그 절절한 통일소망이 가슴에 뜨겁게 와 닿으나 기교상에서는 좀 평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참여시에서 가장 처리하기 바쁜 것이 언어의 함축성이다. ㄴ). 생명과 사랑 딜타이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시는 언제나 생명체험을 기점으로 한다. 생명에 대한 반사(反思)가 우리들의 생명체험을 구성한다. 체험은 무수한 미소한 사건들을 융합시켜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파악하게 한다. 》①생명은 순간적으로 반짝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소실되는 그런 영원한 모순과 황홀과 의혹의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생명의 휘황함은 생명의 불행이며 생명의 만족이며 또한 생명의 유감이기도 하다.기실 시라는 것은 생명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자가 그것을 예술화 한 것에 다름아니다. 딜타이의 생명체험은 우리들에게《시는 생명의 표현과 전달로서 체험을 표현하고 생명의 진실을 표현한다는것. 체험은 하나의 완전히 개인적이고 독특하고 내면화된 친력(親歷)이라는 것. 체험은 일반적인 인지, 감감, 인상, 경험이 아니라 순간적인 생명에 대한 반사식(反思式)직각②》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체의 진실한 체험속에서 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로 조룡남시인이 친히 겪은 아픈 사랑의 추억이 없었던들《내 마음의 돌틈에 와/움터 자란 꽃》이 있을 수가 있을소며 이시환시인이 절간에 갔다가 산을 내려왔던 하산(下山) 친력(親歷)이 없었던들《법당의 종소리도 차곡차곡 쌓이고》라는 명구가 나올수 있겠는가.생명과 사랑은 많은 경우 통하는 데가 많다.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의 말거리속에 함께 넣어 살피게 된다. 이 시집에는 생명과 사랑을 다룬 멋진 시들이 많지만 필자의 나름대로 몇수만 골라 살피기로 한다. 꽃이여 아무도 모르게 내 마음의 돌틈에 와 움터 자란 꽃이여 너의 뿌리 뚫고 내린 돌틈이 박통처럼 쪼개여진 뒤에야 나는 놀란 눈으로 너를 다시 발견한다. 가냘픈 몸매 담당한 향기 내 마음 두 동강 내어 놓고 미소하는 꽃이여 -조룡남《꽃이여-Y에게》전문 생명과 시인에게 있어서 꽃은 영원한 생명이고 영원한 사랑이다. 사랑의 힘이야 말로 얼마나 끈질기고 거대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시다. 돌틈까지 비집고 들어온 사랑, 돌까지 박통처럼 쪼개는 사랑, 마침내는 내 몸까지 두 동강이 내는 사랑, 시어의 조탁(造啄)이 훌륭하다. 시인에게 있어서 뭐니뭐니 해도 언어의 연금술이 첫째일 것이다. 어쩌다 내 무릎뼈를 쭉 펴면 밤새 흐르던 작은 내물소리 들린다. 더러 동자승의 머리꼭지를 찍고 돌아가는 동자승의 뒤모습도 보인다. 꼭두새벽마다 울리는 법당의 종소리도 차곡차곡 쌓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상의 꽃들이 피였다 진다. -이시환《하산기》전문 시에 내장된 함의가 무겁고 두텁다. 동자승과 꽃은 생명체의 상징일 것이고 내물소리, 법당의 종소리는 생명체에 속삭이는 사랑의 목소리일 것이고 바람은 생명체를 애무하는 사랑의 손길일 것이다. 특히 두터운 사랑을《법당의 종소리도 차곡차곡 쌓이고》란 시구는 조용하면서도 큰울림을 준다. 진실한 체험과 예술적 기량이 부딪쳐서 만들어지는 명구(名句)라고 보아진다. 시를 읽는 순간 소란스런 세상이 잠시 잊혀지고 그윽한 사랑향기에 심취된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치 땅 한줌 흙을 찾을 길 없는 이 아련한 생명들을 보내줄 곳은 어디? 폭신한 솜털속에 싸여 기대에 찬 까만 눈으로 쳐다보는 무수한 눈동자 눈동자 나는 그 작은 생명체들을 나의 떫은 눈물에 싸서 내 마음밭에 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최길록의 《나무씨의 숨소리》일부 인간세상은 따스함 보다 삭막함이 더 많다. 시인은 가련한 생명들을 키우고 싶어하지만 키울 흙이 없어 안타까워 한다. 《까만 눈》, 《무수한 눈동자》는 사랑을 갈구한다 할 수 없어 시인은 작은 생명체《씨앗》들을 자기의 눈물에 싸서 마음밭에 심는다. 《나무씨의 숨소리》는 바로 사랑의 숨소리요. 생명의 숨소리다. 하나의 작은 씨앗에다 사랑과 생명을 주는 시인의 정신이 갸륵하다. 원광 시인의《온정의 손길》, 《흔적》도 사랑과 생명을 다른 수작이지만 형식고찰에서 살폈으므로 더 언급치 않는다. 시집의 마지막에 장백일 평백의 수필《바람속에서》가 훈훈하게 불어들어와 과시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흰 얼들의 합창》에 기세를 돌구어 주었다. 작자는 해박한 학식으로 바람을 철리적으로 풀이한다. 인간들에게 《자연은 천의를 좇아 맑은 바람을 낳지만 사람은 인의에 좇아 인간사 요지경의 흑백풍우를 휘젓게 하지 않는가》하면서 자연을 배워 순수하게 살 것을 권유한다. 한편 인간의 무상함도 이야기 한다. 4. 눕히는 말 이상으로 중한시인들의 시를 가지고 형식고찰을 하였고 내용상에서는 통일주제와 사랑/생명을 위주로 기마관화식 살핌을 해보았다. 본고의 취지에 따라 통일, 사랑과 생명에 유관된 시들만을 취급하다 보니 여타의 좋은 시들이 논의 밖에 놓였음을 미안스레 생각한다. 시들을 보면서 필자는 이번에 내놓은 시들중 몇편은 세계에 내놓아도 별로 짝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한글 시는 그만큼 성숙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시들이 이런 저런 미흠점을 안고 있어 당당하게 세계에 내 놓기는 어렵다. 이 기회에 또 둬가지 곁들일 말이 있다. 첫째, 한글 시문학의 세계화를 실현하자면 세계에로의 한글문학의 알림이 우선이다. 세계가 우리 문학을 읽지 못하는데 어찌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운운 할 수 있겠는가.우선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민족인 한족세계에 우리를 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 작품을 한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둘째, 여러가지 통로를 모색해 앞으로 조선시인들과도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다. 《흰 얼들의 대합창》이 날이 갈수록 더 우렁차게 영원히 울릴 것을 기원한다. 2006년4월29일 연길에서 ①딜타이: 《체험과 시》《근대비평문학》53페지 1919년판. ②진초(陳超):《최신성봉파시론선》하북교육출판사.2003년. 약 력: 김룡운 (필명 김몽, 김흠) 1948년5월4일생. 소설, 수필 30여편 시 100여수 평론150여만자 저서로《함께 나누는 시의 맛과 향기》, 《청춘 표류의 고백》(편저), 《김운룡과 그의 소설세계》(편재) 5권의 평론집 탈고중. 각종 문학상 15차 수상. 현재 동북아 연구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 중국 조선족 아동문학학회 고문, 국제 P.E.N 한국 본부 회원.《문학과 예술》잡지 편집. 주 소:中国吉林省延吉市河南街22号《文學與藝術》编辑部 전 화: 0433-229-1381 0433-233-6863 Email:jly194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