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가 만난 다섯 번째 교육감은 경상남도교육청 박종훈 교육감이다. 2015년 6월 4일에 교육감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최창의 : 전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비 지원을 중단하여 소용돌이를 일으켰지요. 사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무상급식을 시작한 곳이 경상남도 아닌가요?
박종훈 : 그렇습니다. 무상급식은 2007년도에 거창군에서 전국 처음으로 시작됐습니다. 그 뒤 합천군을 비롯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경남 전체에 시행되었지요. 의무교육의 요소인 수업료, 교과서 대금, 학습준비물 같은 지원은 중앙정부 결정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무상급식만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작되었어요. 경남 자치단체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모범적인 복지 사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상남도만 무상급식비 지원이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깝게도 명예가 수치로 바뀌어 버린 것이지요.
최창의 : 경상남도 홍준표 도지사가 교육청이 쓴 학교 급식비를 감사하겠다고 해서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지요. 어떤 까닭으로 그런 발상을 하게 되었다고 보세요.
박종훈 : 지난 김두관 경남지사 때 급식비를 지원했는데, 도청이 70퍼센트, 교육청이 30퍼센트 재원을 부담해서 진행했어요. 그런데 경상남도가 분담하는 비율이 차츰 낮아지더니 2014년도 가을에는 50퍼센트 밖에 못 주겠다고 공문이 왔더라고요. 그 뒤 홍준표 도지사가 학교에 급식비 감사를 하겠다고 공격을 해 왔지요. 그러나 학교는 도청 관할이 아니에요. 그러니 학교를 감사한다는 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 행위입니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감사를 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 뒤 경상남도가 급식비 지원 중단을 일방으로 선언했어요. 홍지사가 연초 기자회견에서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바도 있고, 도민들은 대체로 정치적 전략 차원에서 그런 조치를 감행한 것이 아닌가 해석하고 있습니다.
최창의 : 홍준표 도지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무상급식비 지원을 중단했다지만 막상 학교와 학부모들은 상당한 혼란이 생겼을 텐데요.
박종훈 : 경상남도가 부담하는 학교급식 지원 예산 500억 원 가량을 안 주겠다 해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급식이 중단되면서 도내 950개 학교가 겪는 혼란과 학부모가 가지는 불안, 행정 불신 이런 것들을 따지면 교육력 손실은 500억 원이 아니라 5조 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도내 학교급식비 미납율이 평균 10퍼센트 정도 됩니다만, 하동군 같은 곳은 급식비 납부 거부 운동이 일어나 미납율이 30퍼센트가 넘습니다. 이러다 보면 급식이 파행으로 이루어지고, 연간 급식비 미납액이 200억 원 넘게 발생하게 되어 교육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홍준표 도지사에 대해 주민소환까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고요. 그만큼 학부모님들 분노가 커져 간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최창의 : 앞으로 무상급식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박종훈 : 경상남도에서는 여전히 일정한 하위 계층을 대상으로 선별 급식과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도의회에서 중재안이라고 내놓은 게 있어요. 초등학교는 하위 70퍼센트, 중학교는 하위 50퍼센트 학생들만 무상으로 하고 나머지는 급식비를 받자는 것입니다. 이 중재안은 교육감으로서 학교급식에 대한 철학이나 교육적 요소를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어요. 대신 교육청이 160억 원을 더 내놓아 도청과 교육청이 50 대 50으로 분담해서 전체 무상급식을 진행하고, 내년부터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합의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수정 제안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협상이 중단된 상태라 해결 기미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최창의 : 급식문제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교육감 임기 1년이 되어 갑니다. 지금까지 가장 집중해서 추진해 온 정책은 무엇인가요?
박종훈 : 교육감 임기 4년 동안 집중해 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을 아이들 곁으로 돌려보내는 일’입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고 보살피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잡무를 줄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을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일 자체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교육청부터 작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교육청 인력을 70명 정도 줄였습니다. 그 인력으로 지역교육청 학교지원팀으로 만들어서 학교 교무실에서 맡던 방과후학교 강사 채용, 기간제 교사 충원 같은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도교육청 공문도 25퍼센트 정도 줄였는데, 아직은 현장에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창의 : 효율성 없는 행정 관행이나 학교 업무 가운데 과감하게 없애거나 고친 것들도 있겠지요.
박종훈 : 도교육청 연구시범학교를 모두 없앴습니다. 학교평가도 도 주관 평가에서 학교 자체 평가로 바꾸었고요. 고입 선발고사는 그다지 당위성이 없어 폐지했습니다. 고교평준화지역에는 고입 배정 방법도 개선했어요. 선지원 방식이 왜곡되어서 특정 사립고교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거든요. 이와 달리 공립학교는 더 침체되면서 힘이 빠져 버리고요. 그래서 중학생 내신 성적 등급별로 추첨 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더니, 성적이 높은 학생들과 낮은 학생들이 학교마다 고르게 배정되더군요. 모든 학교가 고르게 학생을 배정 받아 선의의 경쟁을 펼쳐 보자는 취지입니다. 출발점이 불평등하면 학교가 의욕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렵거든요.
최창의 : 교육감 임기 동안 학교 교육을 이렇게 바꾸겠다는 목표를 구체로 밝혀 주시겠어요.
박종훈 : 가르치는 법, 배우는 법, 수업 내용과 방식 들처럼 선생님들 노력으로 교실을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가르침 중심에서 배움 중심으로 방향을 바꿔, 공부가 즐겁고 학교가 행복한 곳이 되게 할 겁니다.
얼마 전에는 양산 지역 수학 선생님들과 수학체험센터를 만들었어요. 아이들한테 수학이 즐겁고 재미있는 과목이라는 걸 느끼게 하려는 것이지요. 또 여기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학교 교육에 적용하고 일반화시키면 교실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겠어요?
과학 수업도 좋은 기자재와 시스템, 프로그램, 콘텐츠를 만들면 달라지거든요. 이런 일은 연구정보원과 학교 현장의 협업을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창의 : 전국에서 혁신학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나요?
박종훈 : 올해 행복학교는 열한 곳을 지정했습니다. 또 행복맞이학교라고 해서, 행복학교 방식으로 수업을 꾸려 가거나 공부하려는 학교, 학년, 동아리 들도 70곳 지정했습니다. 행복학교는 교육청이 특정한 모델을 규정하거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어요. 행복학교를 꾸려 가는 선생님들이 합의해서 만들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학교 특수성과 지역 특성을 반영해 학교 자체에서 모델을 찾아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 욕심으로는 열한 곳 행복학교가 모두 저마다 다른 목표와 방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부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만들어진 목표라면 결코 비교육적일 수 없고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 아니겠습니까?
최창의 : 혁신학교 정책이 다양성은 살리되 철학과 목표, 주요 과제 들을 정해 일정한 모델로 추진하는 것 아닙니까?
박종훈 : 물론 도교육청에서 정한 목표와 큰 틀에서 지향점은 있지요. 다만 혁신학교의 가치는 추구하되 그 방법까지 너무 구체화해 제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경기도의 사례나 앞선 나간 다른 혁신학교를 본보기는 삼되 그 틀에 너무 갇히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지요.
최창의 : 교육감 집무실에 책이 많이 있네요. 행복한 책읽기를 경남교육의 중점 과제로 강조하고 있던데요.
박종훈 : 희망하는 학교에 ‘한 학교 한 책 읽기’ 운동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학교 공동체가 한 가지 책을 정해 학생과 교직원들이 함께 읽는 운동이지요. 그러면 책 속 상황과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어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가 생기겠지요. 또 다른 정책 과제로 삼은 ‘행복한 책읽기’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서에 바탕을 둔 학습, 도서관 활용 수업 들은 교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즐겁게 읽고 그것이 생활 속에 습관이 되는 독서 문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최창의 :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 교육청이 운영하는 특수교육원을 개설하였지요?
박종훈 : 네. 경남 밀양에 있는데, 관심이 많은지 개원할 때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여러 분들이 오셨더군요. 특수교육은 체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특수교육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장애 학생들이 실제 체험을 하는 가운데 장애를 이겨 내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사실 장애 학생에게 가장 바람직한 배려는 도움보다는 자활 능력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지금 특수교육원에서는 장애 학생들의 체험학습과 진로탐색 두 가지를 주로 합니다. 앞으로 특수교육분야 연수를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최창의 : 시군교육청 교육장 공모제에 주민추천제를 덧붙인 건 경남에서만 하는 독특한 인사 방식입니다. 지역 주민 참여를 북돋우고 교육 자치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박종훈 : 주민추천제는 교육장 공모할 때 주민 30명 이상의 추천을 받는 제도입니다. 교육장 공모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검증하는 형태까지는 안 되고 있지요. 그래서 애초에는 인사 공청회까지 생각해 보았는데, 부담스러워 아무도 응모하지 않을 것 같아 미뤄두었습니다. 이번에 두 지역에서 교육장 주민추천제를 시행했는데,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시도 자체에 의미가 컸습니다. 앞으로 이 제도를 다섯 개 시군 교육청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최창의 : 학교급식 문제로 걱정이 많은 경상남도 학부모와 도민들께 마무리 인사를 해 주시지요.
박종훈 : 그동안 무상급식 중단 사태로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급식 문제에 발목이 잡혀 교육 현안과 미래 설계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급식은 급식대로 풀어가면서 교육의 본질을 되찾고 미래 희망을 일구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힘든 일을 견뎌 주셨듯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행복한 배움이 활기차게 일어나는 학교를 꼭 만들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