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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불변(indeclinable)사
봄봄 추천 0 조회 129 19.12.27 14:44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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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12.27 14:45

    첫댓글 문법 공부 하기는 해야 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 19.12.27 15:28

    前五境이라는 <단수형의 '위사야(境)'>가 ........ 미래에[=미래분사의 표현이므로] ....... <복수형의 '위사야(境)'>가 된다면..........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가정법일 수도 있는데요......... 그러면 ....... 그것이 '오욕락'이고, <그 '오욕락'으로부터> '바히다(바으로)'라고 부르는 영역이 시작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오욕락>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 19.12.27 15:30

    한 가지 분명한 점은.......... 色과 관련한 ...... 그 어떠한 <즐거움>이라고 여겨 집니다.
    말하자면 ...... 名身이 아니라 色身과 관련된............ <그 무엇>일 것이라는 지적.

  • 19.12.27 15:33

    @아위자 '아위자'도 처음에는 ........ <아자땅 바히다>라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면........... '오욕락'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리라..........고 .........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오욕락'을 먼저 이해하여야만 <아자땅 바히다>라는 '구분'과 '두 겹(dvaya)'을 이해하게 되는 순서더라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 ......... 완전히 반대로 여기고 있었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9.12.27 15:37

    @아위자 그래서......그 후부터는 ....... '오욕락'에 대하여 <문법적으로> ....... 엄청나게 질문을 해 보았는데....... 설명을 들으면 들을 수록....... 더 몰라지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다른 분들이..... <'아위자'놈의 설명을 들으면 '알던 것도 몰라진다'>고 불평하시던 상황을 ...... 제가 직접 겪게 될 줄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에효~~ <엄청 답답합디다.>요. 답답해. '오욕락'이 뭐죠? <문법적> 이론은....... 상상 불허하게 복잡하고 난해합디다. .............에효~~~.

  • 19.12.27 15:39

    @아위자 '이론적'으로는 ........... <識과 愛의 '장난'>이 개입해서 ....... '오욕락'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 같은데요........... 막상 간단하지 않은 것이 ....... <무명과 치(moha)>가 개입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 '오욕락'!

  • 19.12.27 15:42

    @아위자 아직............ 연구 중(='육촉입처'와 관련이 있다고 봄.)이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 (생략)...........

  • 19.12.27 15:45

    @아위자 한 가지 참고로.......... 어떤 분은........ "빠알리는 <불변사>와 <불변사가 '아닌 것'>으로 크게 나누어 볼수도 있다." ........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보니....... "빠알리가 쉬워지더라."........라고. 미쳐.

  • 작성자 19.12.27 15:59

    前五境이라는 <단수형의 '위사야(境)'>가 <복수형의 '위사야(境)'>로 되기 前
    제6근인 意根과 <단수형의 '제6境'인 法境> 사이에서 <알고서>가 <분별하고서> 바뀌고 나서
    그리고 <복수형의 '제6境'인 法境들>로 바뀌고 나서, 그 이후
    前五境이라는 <단수형의 '위사야(境)'>가 <복수형의 '위사야(境)'>로 바뀐다. 라는 취지로 .....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 작성자 19.12.27 16:01

    그러면 또 다시
    제6근인 意根과 <단수형의 '제6境'인 法境> 사이에서 <알고서>가 <분별하고서> 바뀌기 前
    內(ajjhattaṃ)에서 즉 心쪽에서 모종의 흔들림[무명과 어리석음]이 먼저 작동하고 나서 그리고
    [사띠가 사라지고 - 비 여리작의가 일어나고] 그리고서 [의-법]사이에서 사건(意識)이 일어나고
    그리고 전5근과 전5경으로 파급되어
    <단수형의 '위사야(境)'>가 <복수형의 '위사야(境)'>로 전환 = 즉 5욕락이 일어남.
    .....으로 생각되어집니다.

  • 작성자 19.12.27 16:13

    욕계 중생들의 [貪喜愛]의 대상은 <거친 물질>과 관련된 욕망이 욕(까마)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食慾과 性慾이고 그 나머지는 여기에서 파생된 부수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食慾과 性慾]을 완전히 해결하신 분은 최소한 <불환자>입니다.

  • 작성자 19.12.27 16:45

    katamo ca, bhikkhave, anusotagāmī puggalo?
    비구들이여, 그러면 누가 흐름을 따르는 사람인가?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kāme ca paṭisevati, pāpañca kammaṃ karoti.
    ayaṃ vuccati, bhikkhave, anusotagāmī puggalo.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고 악한 업을 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라 한다.

  • 작성자 19.12.27 16:45

    @봄봄 ♦ “ye keci kāmesu asaññatā janā,
    ♦ avītarāgā idha kāmabhogino.
    2. “여기 어떤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을 즐긴다.
    ♦ punappunaṃ jātijarūpagāmi te VAR,
    ♦ taṇhādhipannā anusotagāmino.
    그들은 갈애에 얽매여서 거듭거듭 태어나고 늙으리니
    흐름을 따르는 자들이다.

  • 작성자 19.12.27 16:32

    본문 [531.
    ‘‘Dubhayāni viceyya paṇḍarāni,
    ajjhattaṃ bahiddhā ca suddhipañño;
    29. 안으로 밖으로
    밝은 것을 식별하여 <* Dubhaya(num.adj.)both (see ubhaya) >
    청정한 지혜가 있고, ]

    내에 대해서 그리고 외에 대해서 (내에서 & 외에서) 지혜가 청정한 자
    兩面(쌍=내&외)의 밝은 것들을 알고서....

  • 19.12.27 22:28

    //'안으로 알지 못한다. 밖으로 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이 이해되십니까? '안다.' 혹은 '본다.'라는 단어는 목적어 '~을' 요구하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바꾸면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ajjhattaṃ]과 [bahiddhā]는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가 아니라 목적어가 될 [명사의 역할]을 하는 단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정직한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합니다. 우리가 우리말 어법에 맞지도 않는.... 남들이 들으면 알기도 어려운....... 안으로, 밖으로 본다는 너무나 말을 쉽게 합니다.

  • 19.12.27 22:29

    안으로 밖으로가 부사든, 형용사든 어쨌든 각각 안과 밖의 개념은 내재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형용사라면 (대상의) 안과 밖일 것이고, 부사라면 (대상을) 안에서 보든지 밖에서 보든지 하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 19.12.27 22:34

    결국, 안과 밖을 형용사로 보든 부사로 보든 안과 밖에 대한 의미확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기 궁금한 것은 오욕락부터 밖이라면.....무엇을 기준으로 오욕락부터가 밖인가 하는 점입니다.

  • 작성자 19.12.28 11:23

    별도로 의견을 드려 보겠습니다.

  • 19.12.27 22:50

    제가 보기엔 불교의 안으로 밖으로 개념은 형용사든 부사든 상관없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안과 밖의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불교특유의 이중적 시각으로 안을 본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탐진치를 본다는 것이고, 밖을 본다는 것은 ......이건 잘 모르겠네요. 분명 명색이나 오욕락과 관련된 시각같은데...

  • 19.12.28 00:47

    이크벨님... 제 생각에는

    <안으로>는 심의 대경이 단수인 법으로서 心일경성이 생기는 상황
    => 心이 불선법과 심일경성이 되면 삿된 삼매...
    心이 선법과 심일경성이되면 바른 삼매...
    즉 안으로는 단수인 법들과 심의 관계가 일어나는 삼매의 영역

    <밖으로>는 심의 대경이 복수인 법들이라서
    이때는 心의 작용보다 識의 분별작용이 활발한 상황, 이유는 에깍가따(一境性)가 될 수 없기 때문에
    => 심일경성은 불가능하고, 識에 의한 분별이 왕성하여... 연기(苦)의 흐름을 멈출 수 없는 상황
    識의 분별에 의해 법들이 多界가 되고 그 界들이 觸을 일으키고 ... 受 愛 取 ... 苦를 완성!

  • 19.12.28 01:15

    @해맑은 그래서 저는
    <안으로>에 무명이나 탐진치라는 법이 있어서... 그 법이 心에 욕탐으로 쌍요자나 되어 있다면 당연히
    안으로는 심의식 중에서 心이 그 순간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王이 되고
    밖으로는 심의식 중에서 識이 그 순간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王이 됩니다.

    이렇게 안의 心과 意, 그리고 밖의 識이 협동작전으로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색법들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고... 오직 名色으로만 봅니다....
    누가? 識이...
    웃타니파타에서 <볼 때는 오직 명색만 봅니다.>라고 하죠~^^

  • 19.12.28 01:05

    @해맑은 숫타니파타 제4품 - 13. 큰 전열의 경
    15. 보는 사람은 名色만을 보는 것인데, 보고 나서는 바로 그것들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많든 적든 원하는 대로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통한 청정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 19.12.28 01:12

    @해맑은 그러나 만약 ...
    <안으로>에 明과 빤냐(眼, 智, 慧, 明, 光)라는 법이 있으면... 心은 그 법을 욕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밖으로>의 명색을 <법들>로 보고... 그 법들에 대해서도 心이 욕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밖으로의 법들에 대하여 이탐(離貪)이나 염오, 이욕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안으로의 상황은 밖으로의 상황을 죄지우지 합니다.
    즉 안으로의 明이 밖으로의 名色에 대한 욕탐을 소멸, 쌍요자나를 풀어버립니다.
    그러면 밖으로의 어떤 법들(오욕락, 오온, 자신의 까야, 육육법들, 세간)에 대해서도 해탈의 자유를 ~^^
    안으로 明을 갖춘 心은 意와 識을 연기시키지 못하고 밖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볼 뿐입니다.

  • 19.12.28 14:32

    KN 8.225 는 무슨 니까야를 말하는가요?

  • 작성자 19.12.28 15:30

    본문 바로 위에 [Khuddaka Nikāya].. 대문자^^
    small 雜, 小 - 흔히들 [소부 니까야]

  • 19.12.28 15:49

    @봄봄 그러면 8은요? 소부니까야 8번째 책이라는 뜻인가요? 그 책이 뭐지요?

  • 작성자 19.12.28 16:50

    @이크벨 소부에 7개 부류, 혹은 14부류로 모아 둔 것 같습니다.
    기본은
    숫따니빠따(經集,Suttanipāta), 법구경(法句經, Dhammapāda),
    자설경(自說經, Udāna), 여시어경(如是語經, Itivuttaka),
    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장로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본생담(本生譚, Jātaka)이며

    네띠나 밀린다팡하 등은 포함되기도 되지 않기도
    하여튼 봄봄이 보는 6차 결집본에서는
    Theragāthā가 그 순서에 나옵니다.
    인터넷에 자료가 많이 나오니 참고 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 19.12.28 15:36

    불변화사인 아자땅과 바히다는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역할을 한다...^^ 이제는 저절로 외워집니다. ㅋㅋㅋ
    불변화사는 우리 언어에는 없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렵네요...

    저는 간단하게 몸과 마음 중에서 비색인 마음은 심의식으로 한 몸인데,
    역할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봅니다.
    마음(심의식)은...
    집안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心]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아들[意]이기도 하면서...
    밖에 나가면 일해서 돈을 벌어오는 노동자[識]이기도 합니다.
    이 세 명은 사실 한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 19.12.28 15:39

    여기서 心과 意는 안으로에 있으면서 行을 하는데...
    [심행인 想과 受, 의행인 작의]라는 行에 의해 識이 緣起됨..

    識은 심행과 의행의 명령을 받고 밖에 나가 까야[身]의 재료가 될 법들을 연기시킵니다.
    전오근과 전오경 사이에 識이 개입하면 <識주. 識食, 촉食, 의사食, 물질食]을 하고
    거기서 까야의 재료인 名身과 色身을 확보합니다....

    결론은 한 대상을
    心과 意가 요리한다면 = 고짜라[內]에서 심행과 의행이 일어난 것이므로 '안으로'이고
    니밋따를 쫒아 밖으로 나간 識이 요리한다면 = 오욕락의 영역[外]이므로 '밖으로'입니다.

  • 19.12.28 15:42

    @해맑은 이 과정에서 心은 意와 識을 통해서 새로운 명신과 색신의 원료를 조달받고 자신의 거주처를 확보합니다. .
    그래야 心은 편하게 그 집에서 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이고 나의 것이고 나의 자아라고> 소유권을 등기합니다. .

    무명으로 덮인 심에 의해 안으로 심행과 의행이 일어나 식을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에
    識에 의해 연기된 연이생법들은 바로 오온(명신과 색신)을 재생산하는데...
    이는 內의 心과 意... 그리고 外의 識의 합작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와 밖으로는 한 몸이지만... 영역이 분명히 다른 두 겹이고 ...
    이 두 겹의 다른 영역은 서로를 의존하면서 유지하는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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