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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김정희) 1844년, 23 cm * 69.2 cm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
세한도는 간단한 그림입니다. 아무런 장식이 없이 소박한 집이 한 채, 나무 네 그루가 전부입니다. 사람은커녕 그림자 하나도 없고, 나무 이외에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물기가 없는 붓질은 건조하고 삭막합니다. 마당과 하늘은 텅 비어 있고, 집은 겨우 몇 개의 선으로 윤곽만 그렸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쓸쓸한 풍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림 오른쪽 위 빈 공간에는 가로로 이 그림의 제목에 해당되는 세한도(歲寒圖)라는 글이 있습니다. 세한은 추운 시절을 말합니다. 세한도란 그러므로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목 옆에는 세로 글씨로,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선이, 이 그림을 보게.’라는 뜻이지요. 마지막으로 ‘완당(阮堂)’이라고 적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완당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던 김정희(1786년~1856년)의 호입니다. 독특한 글씨체인 추사체의 장본인이지요. 추사나 완당은 그가 즐겨 쓴 여러 가지 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들입니다.
그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높은 벼슬을 지냈던 아버지를 따라 젊은 시절부터 중국을 왕래하며 그곳의 학자들과 교류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유명한 학자들은 김정희의 학문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였고, 특히 그의 글씨와 문장을 칭찬하였습니다.
김정희는 30대 초반에 과거에 급제한 후로 순탄한 벼슬살이가 이어지는 듯했으나,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먼 섬과 변방에서 유배 생활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무려 8 년을 지내는 동안 몹시 쓸쓸하고 외로운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고 그림 그리는 일로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벼슬이 높은 시절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대개는 등을 돌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배객을 가까이하게 되면, 자신도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늘 김정희를 가까이한 사람은 제자인 이상적(李尙迪, 1804년~1865년)이었습니다. 그는 공무로 중국을 드나들며 어렵게 구한 책을 두 번씩이나 보내 오곤 하였습니다. 김정희는 제자의 그 따뜻한 마음과 변함 없는 의리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어느 날은 이 제자를 위해 그림을 한 점 그렸습니다. 세한도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림 속의 ‘우선’은 바로 이상적의 호입니다. 세한도의 쓸쓸한 풍경은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 김정희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집 오른쪽에는 소나무가 두 그루, 왼쪽에는 잣나무가 두 그루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의 비슷하게 생긴 잣나무와 달리, 오른쪽 소나무 두 그루는 그 모양이 좀 다릅니다. 한 그루는 둥치가 굵고 가지가 굽었습니다. 그 곁에 반듯하게 선 나무가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늙은 스승 김정희를 곁에서 지키는 젊은 제자 이상적 말입니다.
김정희는 이 사연을 글로 써서 그림에 이어 붙였습니다. 추운 날에 소나무와 잣나무을 그린 까닭도 적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둘 다 늘 푸른 나무입니다. 날이 좋고 따뜻할 때는 늘 푸른 나무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모든 나무들이 푸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돼서 뭇 나무들의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때면 비로소 소나무나 잣나무가 얼마나 의연한지 알 수 있습니다. 김정희는 소나무의 의연함을 빌어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잣나무를 통해, 어려움 속에도 희망이 가까이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상적은 멀리 유배지에서 인편으로 보낸 스승의 그림과 글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그림을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중국에 갈 때도 이 그림을 가져갔습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 그림에 깃든 사연을 읽고 모두 감동하였습니다. 다투어 그림 끝에 시를 써서 붙이니, 그림은 한없이 길어졌습니다. 10 m가 넘는 두루마리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세한도의 그림 부분은 간단하지만, 그림에 깃든 마음은 깊고 따뜻합니다. 그림을 보고 느낌을 이어?쓴 뮌?사람들의 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edu/culture_symbo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