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출신의 완벽한(?) 남편에게 두부한모 사 오라고 했다.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떤 것? 찌개용, 부침용 , 큰 거 , 중간 거 , 작은 거 , 부드러운 거, 단단한 거? 유기농?
남편은 두부 고르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성격 급한 내가 곧장 여전사처럼 마트로 돌진했다.
아차, 독립군 가슴속 태극기처럼, 이 시대의 필수 품이자 타인의 멸시와 혐오감의 방어막이자 기본 예의의 상징인 마스크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마트입구에서 알았다.
참을성이라곤 전혀 없는 성인 ADHD환자인 나로선 뭔가 성취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나폴레옹 군대 패잔병의 길과 같은 것이었다.
난 잔머리 10단 영재이다. 조금 전 마트를 향해오는 길에 보았던 계단 위 검정 마스크가 떠올랐다. 화단옆에 있던 흰 마스크도 생각났다. 전봇대옆 분명 새것처럼 보였던 마스크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초등학교 소풍날, 담임선생님 뒤를 몰래 쫓아 가 알아낸 보물찾기 종이쪽지 같은 마스크들이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서 행인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도 모르게 주워 대충 뒤집어쓰고 장이나 봐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만이 남아있었다.
스위스 산정 꼭대기에서 열흘정도 굶으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곰팡이핀 김치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그런 순간엔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절박함을 합리화시켜 대의명분을 만들었다.
"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이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주역 계사전’에 보면 “극에 이르면 바뀌게 되고 바뀌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고 했다. 궁하면 통하리라.
일단 나왔으니까 대충 아무거나 주워서 뒤집어써야겠다. 손을 뻗어 마스크를 주으려는 순간, 떡집 사장님의 매의 눈 같은 레이다망에 나의 추잡한 행동이 포착되었다. 계단 위에서 "하나 줄게"라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소리보다 더 당혹스러운 소리!
<하얀 마스크>를 하나 건네어주셨다. 아! 감사합니다. 마스크 훔치다 걸린 거보다 더 창피했다. 감시용 카메라에도 아마 주위를 배회하고 망설이는 내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
요리에 진심인 남편이 있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남편에게 요리를 가르쳐야 할 시간! 비장하고도 장엄한 시간이 왔다. 두 가지 명분이 생겼다.
첫째, 운이 안 좋아서 내가 먼저죽고 남편이 혼자 살아남았을 때 적어도 쉬운 요리정도는 할 수 있어야 밥 해주는 아줌마에게 쉽게 마음 주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남편이 백세가지 장수하면 대재앙이 생길 수도 있다.
솔직히 꽃뱀에게 넘어갈 일이 적을 것 같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안 들게 길들여야 했는데 야생마 같은 남편을 가르치기엔 너무 늦었을까? 살짝 회의감도 든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꼬실 때에도 요리는 중요한 개인기일수도 있다.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둘째, 내가 아플 때 남편이 김치찌개나 죽정도는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라면 너무 싫다) 그가 어설프게 해와도 맛있는 척 먹어줄 수 있을 만큼 나도 이제 내 삶의 무대 위, 인생연기경력 50년 넘은 베테랑 배우이다.
< 브랙퍼스트 인 베드> 해주는 오로지 앞치마만 두른 남자가 매우 쎅쉬할 거라 처음 상상해 본 오늘! (19금)
일상이 오래된 회전목마처럼 날마다 어설프게 삐걱이며 돌아가긴 한다. 서걱거리기 시작한 골다공증 걸린 뼈들의 연주노래가 들려온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비너스의 탄생처럼 아름답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줄 아는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