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8:11]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 - 이는 압제자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앗수르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조 계통의 언어이지만, 그 어휘와 문법 체계가 크게 달라서 유대인에게는 그것이 다른 지방의 방언처럼 들린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
[사 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참된 안식의 길이 이미 그들에게 지시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다.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약속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아니하였다.
[사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 잡히게 하시리라 -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부드러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조소했으므로, 저들은 경험이라는 한층 더 무서운 교사로부터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된다). '경계에 경계를 ... 저기서도 조금'은 10절의 반복이며, 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이전에 저들이 역겨운 소리라고 비난했던 그 소리를 이제는 앗수르인의 생소한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 28: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경만한 자여 - 이는 문자적으로 '비웃음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스스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이탈시키기를 즐겨 한다. 이런 사람들이 권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사 28:15]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찌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우리는 ... 숨겼음이라 -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저하다는 저들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초하는 것인가? 그것은 애굽과의 동맹이다. 애굽으로 피난처를 삼고 그곳에 숨는 한, 앗수라의 위협도 무서워할 게 없다고 저들은 자만하였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애굽은 결코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 경만한 유다 지도자들의 말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대조되어 나온다. 여기에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짓과 허위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다 시온의 돌로 기초를 삼은 건물 그림이다. 전자는 홍수와 채찍이 어우러진 혹독한 재앙이 닥쳐올 때 흔적 조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요동하지 않으며 견고함을 잃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견고성은 그 건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온의 모퉁잇돌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돌은 '시험한 돌' 곧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이다. 이 돌로써 건물의 기초를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에 대해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었다 :
율법), 상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다윗 왕국, 히스기야, 참된 신자들, 시온, 남은 자 하나님의 약속, 신앙 그 자체 하나님 자신, 예루살렘은 불가침이라는 하나님의 확신, 메시야의 구원 등등.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신약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이것이 메시야를 미리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