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쓰면 너무 거창한가. 아니면 불경죄에 해당하진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만끔 행동하고, 행동하는 만끔 누리고 산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늘 억울하다는 생각에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만끔 미리 받았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뭐가 어찌됐던 어린시절 나는 참 많은걸 누려왔다. 감사하지도 않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당연하게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세상의 민낫과 대면했을때, 비로서 황당하고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와, 그때의 심정이란! 온갖 불평과 불만은 그때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때는 불평이나 불만을 갖거나 할 여유도 없었다. 급류에 떠내려가는 작은 벌래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어쩌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매달려 있을수밖에 없지않았을까. 어쩌면 지금 내게 갈급함도 간절함도 없는 이유가 그때 격었던 위기 의식이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리고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사실은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그분이 내 등뒤에 계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연화리 가족들을 주셔서 감사하다. 내게 아들 딸을 주셔서 더욱 감사하다. 부족하고 별볼일없는 내게 너무도 과분한 가족들이다. 잘나기는 켜녕 못나고 무능한 나를 사랑해주신 것도 감사하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도,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말씀도 감사하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향량한 빈들에 홀로서서 석양을 바라보는 나그네에 불과한 인생들을 값없이 사랑해주시는 분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커텐 봉 하나만 떨어저도, 문풍지로 븥여놓은 뽁뽁이가 내려오기만 해도 잠들지 못하고 고민하는 참 무능한 내가 기댈데라고는 하나님 한분이다. 교회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아서 일까. 외롭고 기댈곳이 필요해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것일까. 45년에 달하는 오랜 세월동안 교회문턱을 밟았지만 믿음은 자란것 같지않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내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말씀에만 귀기울이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내가 주께 뭘 드리겠다는 신앙이 아니다. 부끄럽고 민망한 믿음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여기저기가 아프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은근 불편하다. 늙어가는게 이런 것인가.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셨다. 많이 힘드셨을테데도 힘들다는 말씀도 안하셨고, 그런 어머니께 나는 아무련 도움도 못드렸다. 도움은 커녕 오히려 어머니가 도와주신 덕분에 굶주리지 않고 살수 있었으니 참 형편없는 딸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어쩔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정말 어쩔수가 없었다. 그때 하나님 원망했을까. 아니,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셨고, 남편이 한심하고 이해불가였다. 나는, 40이 넘으면 모든일에 책임을 저야한다는 어떤 위인의 말씀을 굳게 믿었기에 더욱 남편이, 내가 한심했다. ㅎㅎㅎ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사기를 당한 것이다. 40은 커녕 80에 이르러고서도 책임은 커녕 아무것도 아니라는 교훈을 얻고 있다. 사실 대다수는 별볼일 없는 한심한 인간밖에는 못된다. 내가 나 된것으로 만족하거나 행복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일수도 있다. 무능하고 연약한 내가 나를 위로하고 싶다. 힘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