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과 우울함
오래 전에 혹시나 싶어서 걷기모임 카페에(이곳 여혼여) 가입을 했었고
해외거주자인 내가 카페를 이용할 일이 뭐있겠나 하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컸다.
그동안 허겁지겁 다녀가던 한국나들이와 달리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있고 그 덕에 카페에다 광고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함께 걸을 사람을 찾는 광고였다. 근처에 사는 몇 분에게서 연락이 왔고 마침내 지리산 산행이 잡혔다. 시외버스를 타고 지리산 입구 모처에서 만나는 당일치기 산행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노고단 산행은 이름만으로도 나를 설레게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렸던 아름다운 여인, 그녀와 함께 올랐던 지리산 노고단 산행에서 발아래의 온갖 것들은 운무로 제 모습을 꽁꽁 숨겼다. 노고단을 처음 찾은 나를 내외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딱 내 스탈!
운무로 가려진 모습은 훗날 내가 다시 오리라는 예감을 품게 했고,
노고단의 고단수 작전이라해도 되겠다.
그녀가 준비해 온 어묵과 라면, 이들의 조합은 나와 그녀만큼이나 찰떡궁합이었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상상이었을 수도 있다. 정량을 초과한 위장이 노고단을 오르는 내 걸음을 더디게 했지만 지고는 못가도 담고는 간다는 사실을 완전 입증한 산행이었다.
아름다웠다는 말 말고는 더이상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녀도 노고단도 그리고 나도, 우리와 함께 흐르는 순간순간이 모두 아름답고 소중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녀의 베품에 찐한 감사를 보낸다.
우울한 이야기 하나,
함께 걸을 분을 찾는 광고를 내느라 수년 만에 찾은 카페 안에는
한국 농산물을 파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지금 제한적 와이파이(엄마집에 인터넷연결이 안 되어 있다)를 쓰는 처지라
특히 카페접속은 자주 못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해서 카페접속을 했는데
농산물 파는 분들 중에서 호박고구마를 파는 분의 판매글을 읽었다. 호박고구마 이름만 들었지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나는 흥분해서 판매자의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카톡으로 연락을 곧바로 했다.
혹시 다 팔렸으면 어떡하나하는 염려의 마음과 함께 말이다.
마침내 호박고구마가 엄마집으로 왔다.
평생을 한국에서 사신 엄마도 호박고구마를 처음 먹어 본 나와 다를 게 없었다. 호박고구마가 처음이라는 내 엄마는 우리들이 흔히 쓰는 나이셈으로 9학년 1반이시다. 여태 그 유명짜한 호박고구마를 한 번도 안 드셨다는 엄마, 나는 또 죄인이 되고 말더라는…
둘이 생으로 깎아도 먹고보고 쪄서도 먹어봤다.
고구마의 질은 다른 여타 고구마와의 비교대상이 이미 아니었다. 둘이 나누는 즐거움에 마냥 취했을 뿐.
고구마가 좀 잘아서 생으로 깎아먹기는 좀 힘들겠구나.
익힌 고구마 껍질이 다른 고구마처럼 잘 안 벗겨지네, 호박고구마는 원래 이런갑다.
이건 울엄마 표현들이다.
엄마를 찾아오신 분들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이 고구마를 삶아 대접을 했다.
고구마를 드신 손님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이런 고구마를 어디서 샸느냐고. 고구마가 살짝 얼었던 모양이다라고 고구마에 대한 평을 하셨다.
이를 어쩌나, 나는 이미 호박고구마의 가격과 존재에 반해 있던 터라(내가 사는 동네의 고구마 값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판매자에게 한 박스 더 주문하는 카톡문자를 이미 넣어놓은 상태였다. 이건 지인에게 보내는 선물용이었다.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배송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고구마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카톡을 넣었다. 판매자는 돈을 받지 않고(나를 믿었다는 부분은 지금도 감동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미 배송을 했다는 대답을 했다.
이런저런 핑계(하얀 거짓말)가 통하지 않아서 결국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내가 이미 사서 먹은 것은 불만이 없노라고(이건 순전히 내 탓이고 책임이니까), 그런데 선물로 보내기에는 좀 그렇다고.. 엄마 지인께서 얼었던 고구마 같다고 했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판매자의 강경함에 어쩔 수 없이 솔직해지고 만 것이다.
내 솔직함에 판매자의 반응은 이러했다.
‘더 이상 톡은 읽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미 입금 상황이니, 주문한 고구마 부분은 입금 확인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후 나도 더이상 톡을 보내지 않았다.
고구마를 배송받은 나의 지인이 판매자와 통화를 해서 반품하고 싶다고 했다했다.
판매자는 이것도 거부했다고 들었다.
긴 이야기 짧게 하자면 이 정도가 주요 내용이다. 나는 어쨌든 고구마 값을 지불할 작정이다.
내가 은행에 직접 가서 입금을 해야하는 불편함은 판매자도 알고 있다.
돈 2만 6천원에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다는 염려와
이렇게 발생하는 일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쉬움 때문이다.
판매자의 프로정신이 조금 안타깝지만 소비자인 나의 무지가 더 안타깝다.
우리 모두가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결론을 맺는다면,
인생길에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 거처럼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교훈을 다시 상기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얼굴은 더욱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을 만난 나의 행운은
고구마로인해 상처 받은 마음을 상쇄하게 했다.
생면부지에게 선행을 베푼 님, 복 많이 지으셨고
내가 고구마를 구매해서 벌어진 일로 마음이 울퉁불퉁해졌을 판매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 받으시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28 20:26
첫댓글 네
그랬군요
가격대비 물건이 좋으면 신뢰와 감사한 마음이 남고.... 쩝
그럼에도
서로의 울퉁불퉁했던 마음도
공감합니다
그또한 지나가리니
맘에 두지마시고
좋은날 좋은시간되세요~^^
상대를 배려하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시간 되시고
또 시간이 되어 지리산이나 설악산 가게되면
같이 동해해 보시지요~
이글을읽고 한박스가 보름후 다 썩어버린 고구마를 팔았던 그사람이 아직도 이러고있을까?싶네요ㅜㅜ그녀는 농사짓는 사람이 아닌 사다가 파는 장사꾼이었습니다.
제품 이상을 설명하고 반품ㆍ환불을 요구했을때 그녀의 비상식적인 처세가 오버랩되고 그이후 카페에선 농산물 특히 고구마 절대 사지 않습니다ㆍ네*버 치면 좋은 최상품ㆍ 솔직한 못난이 선택구분해서 아주 잘 살수있습니다
결국엔 좋은품질 파는 다른 생산자도 두번다시 믿지 못하게 만든 구매였어요ㅜㅜ
지난일은 잊어주시면
건강에좋아요~
카페지기님도 관리한다고는 열심이시지만
판매자와소비자의부딪힘은 상황에따라
강도가 조절이안되는 불가항력적요인이
있을수있어요~
쿠팡ㅇ네이버 에서
믿을만한 고구마도 박스채두니
금방썩어서 물컹해지더라구요
고구마는
받는즉시 신문지에펼쳐서
건조시키되
따뜻한 실내에서
공기통하게 보관해야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28 14:04
저도 구입한 호박고구마 한박스를 그대로 다 버렸어요 ㅜㅜ
귀찮음에 그냥 지나쳤는데..
님처럼 이렇게 글을 올려주심에 전 반성하며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잘하셨어요~ ^^
모처럼 호녀노릇 하신다고
한국오셨셔 그런일을겪으셨네요
그런고구마를 판매하시는분도 고객이 불만이있을시 반품을해줘야 맞는게 아닐까요?
고국에오셨셔 싫망만하신듯요
기분푸시고 좋은그녀랑.지리산한번 더다녀오셔요
남은시간 멋진추억 만들고 귀국하셔요
그런 판매자는 퇴출시켜야되는겅아닌가요. 참내
고구마는 사람하고 같이 산다 했어요 냉장고 넣으면 안되고 부엌바닥에 신문지 깔고 그위에 띄워 놓으세요 특히 호박고구마는 물러서 더 잘 상합니다
아........😭
제 댓글 조회 함 해주시길예...ㅠ
어제 도착한 호박 고구마🥵
생전 처음 구경?하는 자잘한 호바고구마
문자로 사진보내고 통화해도 꿋꿋 하셨던 판매자분.
카페 올라온 사진이란 확연히 다름에도 너무 당당하신 판매자분!!
팬 도 다르건만
같은거라 말씀 하셨던...
도저히 나눠 먹기도 불편한
저의 마음에 위로를 주시는 글입니다
두번다시!!!
카페서 무엇이든 구입 하지않으리라ㅡ
첫구매가 마지막이 되어버린ㅡ
그럼에도 님 마음따라
판매자분께 축복합니다
행복했던 추억으로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
지금은 고구마가 썩기 쉬운 때입니다
예전엔 아예 고구마가 없던 기간이지요
택배로 받으면 바로 모두쪄서 냉동보관해서 조금씩 꺼내 드셔야해요
그나마 저온저장 기술이 발달해서 봉에도 해지난 고구마를 맛보는 거지요
쿠팡에서 구매하고 이상이 있으면 사진찍어 보내세요
당일에 다시보내줍니다
다음날받을수있어요
애고 너무 맘이상하섰겠요
남은시간좋은추억많이 담으시고 행복힐림하세요
저희 딸은 뉴저지살고있어
작년에다녀왔네요
고구마 ㅠㅠ, 저도 경험있어서 그맘 알지요.
오래만의 귀국이신 듯한데, 그런 일로 소중한 시간이 망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에휴.
글 읽는 내내 내 얼굴이 더 화끈거림은 고국에 대한 좋은 기억만 해도 벅찰텐데...나쁜 기억으로 가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물론 고구마 썩는 것 다 이해하지만...팩트는 소비자가 불만족스럽다면 반품내지는 환불해야 마땅한 기본 중의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 판매자분이 이 방에 계시다는 사실이 화가 납니다...
저는 참외를 한박스 샀는데 냉장고에 넣어둔게 일주일만에 딱 반이 썩더라구요. 냉해 입은 참외 섞어서 팔은거랍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몇해 시골에 살아서 호박고구마를 접했지요.
호박고구마는 구워먹어야 더 맛나죠
고구마는 관리가 쉽진 않아서 많이사도 걱정이랍니다.
비싼고구마 맛있게 드신걸로 퉁치세요.
좋은추억, 지리산의 아름다움안고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