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6: 10-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아브람과 그의 택하신 후손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는 분이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에게 허락되어진 일반적인 혜택과 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1. 본문 10절은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입니다.
그 범죄를 삭감할 목적으로 그리고 그 말씀 가운데서 혹심하였던 것을 경감시키는 목적을 위하여 그 사자는 몇 가지 위로로 그녀가 갖게 될 아이에 대하여 복을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권위로 옳은 것을 엄격하게 부과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러나 하갈이 해야 될 것을 더욱 더 기쁘게 수행하게 하려고 달콤한 말로 순종하도록 달랩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하여 이 단계에서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약속으로 하나님의 사자는 우리 모두가 자원해서 복종하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억지로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온화하고 부성애적인 부르심을 그분의 명령들과 배합하여 우리를 마치 아이들을 다루듯이 관대하게 다루십니다. 여기서 사라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국한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애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들에게는 그분 자신의 특성을 부여해 주십니다. 그것으로 그 사역자들의 말의 권리가 더욱 더 위대하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 그 분에게는 너무나도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고대인들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는 언제나 모든 말씀에 임재해 계시다고 했습니다. 또 이 사실은 하나님의 엄위가 천사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본문 11절은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입니다.
1) 본문 11절 상반은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입니다.
그 사자는 자신이 그녀의 자손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했던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수효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도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사자는 이스마엘로부터 시작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장차 그 지파의 머리와 기원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버림 받은 자라는 사실을 후에 보게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그에게 명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아브람의 아들이 되어 그 자격으로서 그가 받게 되는 잠정적인 복을 나타내 주는 표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브람의 모든 가족을 포용하셨던 부성애적인 은총에 대한 기념이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뻗어가서 그들에 대하여 참고 견디어 주시는 것을 의도하셨습니다. 비록 영생의 언약이 이스마엘에게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조금이라도 받고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크고 유명한 백성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생활에 관련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이 육신에 의한 아브람의 자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베풀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이스마엘의 이름을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는 뜻으로 주셨다면, 또 그 분의 잠정적인 혜택들에 대한 항구적인 기념이 되게 하시려 했다면 우리가 그분의 거룩하고 영원한 긍휼을 기념하지 않을 경우에 절대로 우리의 배은망덕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2) 본문 1절 끝은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갈이 자기 어려움 가운데서 기도에 의지했다고는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는 말에 근거하여 우리는 오히려 하갈이 자기 고통으로 정신을 잃고 멍하게 되었을 때에 사자가 자기 뜻을 따라서 내려왔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도와주시는 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간구로써 그분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기도로서 그분에게 구원해 주시도록 부를 때에 그들을 들어 주신 구원자로서 특별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들이 아무런 간구도 하지 않고 벙어리처럼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자로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감각한 상태 때문에 그분에게 자기들의 소원을 알리지 않고 있는 때에 그들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보시고 구원해 주신 분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신 경우가 바로 하갈에게 실현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정처 없이 방황하는 그녀를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이 끈질긴 질병으로 그들이 기진맥진하거나 그들이 갑작스럽게 멸망에 처할 때까지는 그들에게 흔히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사람도 우리의 나태에 빠져서 버둥대는 자가 없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악들에 대한 의식(意識)으로 충고를 받고 있는 우리는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여호와에 의하여 전혀 멸시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우리 신앙 확증에 적지 않은 효력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태한 자와 어리석은 자들도 선수를 써서 예방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찾지 않은 자들에게도 긍휼을 나타내신다면 그분의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의 경건한 소원에는 훨씬 더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본문 12절은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입니다.
1) 12절 처음과 중반은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마엘의 인격이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에 대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간단한 의미는 그가 호전가(好戰家)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적군들에게 몹시 무서운 존재가 되어 그를 해치는 자는 아무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자들은 히브리어 (페레흐) 곧 우리 말의 ‘들나귀’ 라는 말을 산 속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해합니다. 그리고 들짐승들을 사냥하는 데에 몰두된 자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설명은 본문의 문맥에서 보다는 다른 곳에서 참작하여 제공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뒤에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즉, 그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력으로 해야 되었던 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내려 주신 혜택들 가운데 속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 자체로는 사실상 평화이상 더 바람직한 일이 없는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마엘의 이웃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그를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사방에서 그를 멸망시키려고 음모를 꾸밀지라도 그는 혼자이지만 충분한 세력으로 그들을 버티어 내며 모든 그들의 공격에 반격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자가 완전한 호의를 약속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주요한 복들 가운데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먼저 화평을 갖도록 갈망해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이스마엘에게는 부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서적인 면에서 차서적인 복이 그들에게 내려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용감하고 강력하여 그는 그의 적군들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고 그들의 세력을 대항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사자는 이스마엘의 인격에 대하여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자손들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 엄격하게 한 사람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단순하거나 혼합되지 않은 복이 약속된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며 온건한 상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약속된 것은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자기들의 조상 아브람의 덕택으로 자기들에게 특별한 것이 하나님에 의하여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해석이 인정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한편으로는 이스마엘이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원수로 알고 배척할 것이며 그들 모두를 폭력으로 배척할 것이라는 말씀이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혜택들 가운데 속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많은 원수들을 갖게 된 그가 그들을 대항하고 배척할 만한 동등한 세력을 갖게 하신 것은 일반적으로 악을 치료하고 그것을 경감시키는 방법으로서 추가된 것입니다.
2) 12절 끝 부분은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입니다.
이것이 당연히 단지 한 민족에게 적용시킬 때 우리는 이 사실에서 이 구절을 이스마엘 개인에게만 국한시키는 자들은 기만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쉽사리 간파하게 됩니다. 그 사자는 오히려 이 백성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면서 마치 ‘그들은 한 파당이나 한 민족을 형성하지 못할 것이며 특이하고 특별한 명칭을 지닌 완전한 한 기구가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혜택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일반적인 은혜의 혜택 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까지 미치는 은혜의 혜택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심지어는 다윗의 표현대로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들에게 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의 혜택에 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참된 지식이 기도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