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01]“여행은 걸어서 하는 독서”
그 이름 석 자, <박노해>를 아시리라.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 그의 필명이다. 그는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름없는 노동자시인이자 혁명가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1984년 27살에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말 그대로 쇼킹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에서 당연히 금서였지만, 알음알음 100만부가 팔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기억하시는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영광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던 운동가도 있었다. 7년 6개월만에 독방에서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됐으나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결연히 선언한 후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비영리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한 이후, 20여년간 오래된 만년필과 흑백필름 카메라를 메고 국경 너머 아프리카, 아프카니스탄 등 제3국가들의 마을과 마을들의 사람을 만나는 등 ‘다른 길’을 찾으며 지금껏 묵묵히 걸어오고 있다.
시인이 추구하는 ‘다른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나는) 이 지상에/비밀히 던져진 씨앗 하나>이고 그 씨앗이 <(우리, 내) 안에서 무엇으로 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고, <삶은 어디서나 저마다 최선을 다해가는 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길이 ‘다른 길’이 아닐까? 매일 아침, 한 장의 사진과 문장으로, 고맙게 우리들의 ‘다른 오늘’을 열어준 <박노해의 걷는 독서> 10주년을 맞아, <나눔문화>의 본산인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 아주 특별한 사진전을 열고 있다(2025년 3월 2일까지). 엽서 크기의 안내문 문구도 정겹다. “햇살보다 먼저 나의 아침을 깨우는 빛나는 사진” “한 권의 책보다 깊은 통찰의 한 줄” “10년간 한결같이 받아온 선물”인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에서도 울림이 긴 90점의 작품을 새롭게 구성한 「다른 오늘」사진전을 다녀왔다. 시인의 사진에세이집 『다른 길』(351쪽) 한 권도 서슴없이 샀다. 구입한 이 책은 2014년 ‘느린걸음’에서 펴내 2020년 20쇄를 발행했으며 올해 10월 개정판 6쇄이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여행하며 쓴 이야기가 있는 사진집으로, 스테디셀러인 셈.
시인의 시와 흑백사진을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되고, 아무리 뒤틀리고 엉망인 세상이어도 한 줄기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좋다. 시인이 원고지에 만년필로 아주 정갈하고 반듯하게 써 메일로 보내주는 한 편의 시는, 나의 삶을 기름지게(윤택하게) 해주는 것만 같아 마냥 좋다. 또 그렇게 세월은 10년이 흘렀다. 세월이 유수같다더니, 참 빠르다. ‘찰나刹那’니 ‘순식간瞬息間’이니 하는 말들이 맞다. 그중에서 고른 90점의 짧은 글(경구警句같은 시)과 우리의 원초적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뭉클한 흑백과 색색깔의 사진을 굽어보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시인이 변치 않는 듯한 현실 속에서도 <단순하고/단단하게/단아하게> 우리 모두 ‘다른 오늘(A New Day)’을 열어가자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깔끔하게 정리한 <3단> 앞에 ‘자기 앞의 생生’을 눈물겹게 생각해 보자. 그렇게 살고 싶다. 단순하고, 단단하며 그리고 단아端雅하게 말이다. 그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다른 것들은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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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꾼’(책 읽는 사람)이 될래야 될 수 없는 ‘프로 일꾼’선배가 어제밤에도 한 마디 어록을 토해내 깜짝 놀랐다. 불쑥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요, 여행은 걸어서 하는 독서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디에서 읽은 잠언箴言이냐고 묻자, 어디에서 보거나 들은 적은 없고 당신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읽었든지 들었든지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앉아서 하는 여행, 걸어서 하는 독서,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지 않는가. 아항-, 그래서 박노해 시인이 “걷는 독서”라는 제목으로 사진에세이집을 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갖고 있는 그 시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걷는 독서』(2021년 펴냄, 23000원)는 “단 한 줄로도 충분한”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박노해 시인의 문장 423편이 880쪽에 촘촘하게 담겨 있다. 나를, 우리를 나아가게 해주는 지혜와 영감靈感의 책. 오죽했으면 3권을 구입, 두 아들내외에게 한 권씩 선물했을까. 편편히 세련되게 번역해놓은 영문英文을 읽는 것도 큰 재미다. 인간은 걷는 존재이자 읽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도 해주는 필독서必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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