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인간의 몸이 낼 수 있는 극한의 능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10㎞ 수영 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첫선을 보였다. 마라톤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물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 다를 뿐 선수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힘든 레이스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20일 오전 베이징 �이 조정카누경기장에서 베이징올림픽 수영 마라톤 여자 10㎞ 경기가 열렸다. 물 위에 부표를 띄워 만든 긴 직사각형 모양의 2.5㎞ 코스를 네 바퀴 도는 레이스. 수영장에서 하는 최장거리 경기인 자유형 1500m보다 6배 넘게 긴 코스였다. 2006년부터 3년 연속 오픈워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라리사 일첸코(
러시아)가 1시간59분27초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얼굴엔 뿌듯함이 넘쳤다. 35세로 25명의 출전자 중 최고령인 에디트 판 다이크(
네덜란드)는 14위에 그쳤지만 "결승선에 도달한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42.195㎞를 완주한 마라톤 선수의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 ▲ 10㎞ 여자 수영 마라톤에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 도중 팀 관계자들이 장대에 걸어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아 마시고 있다. 선수들이 쉽 게 식별할 수 있도록 장대 끝에는 국기를 달았다. AP 연합뉴스
신설 종목인 만큼 과거 올림픽에선 볼 수 없던 장면들이 많이 연출됐다. 장기 레이스인 까닭에 선수들은 경기 도중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마라톤이나 도로 사이클에서나 볼 수 있던 급수대가 두 군데 만들어졌다. 기록 손실을 최소로 하기 위해 각 팀 코칭스태프들은 모두 긴 장대를 준비했다. 장대 끝에 컵이나 물병을 꽂아 길게 늘어뜨리면 경기 중인 선수들이 낚아채서 물에 뜬 상태로 마시는 것. 자기 물병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장대 끝엔 작은 국기가 달려 있었다. 물을 마시는 동안 1m라도 더 앞으로 나가려고 배영으로 자세를 바꾸는 선수도 있었다. 선수들이 지나가면 경기 진행요원이 긴 뜰채를 이용해 버려진 컵과 물병을 회수했다.
수영장처럼 레인 구분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메달을 딴 일첸코는 "두 명의 브라질 선수들이 비신사적인 방식으로 레이스를 방해했다. 수영과 복싱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며 투덜댔다. 그의 코치는 "급수대 구간에선 다른 선수에 떠밀려 컵을 놓쳤다"고 거들었다.
선수들이 마지막 바퀴를 도는 동안 골인 지점엔 수면에서 50㎝쯤 뜬 높이로 간이 터치패드가 세워졌다. 선수들은 결승선에서 손을 위로 뻗어 터치패드를 찍는 것으로 10㎞의 레이스를 끝냈다. 방송 중계와 사진 촬영,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9척의 소형 배와 고무 보트 두 대가 동원돼 선수들을 따라다녔다.
수영 마라톤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된 일첸코는 중반까지는 3, 4위권에 머물다가 전체 레이스의 4분의 3 지점인 7.5㎞를 넘어서면서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려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30㎞대 전후의 '마의 구간'에서 승부가 자주 갈리는 마라톤의 경기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광 대한수영연맹 부회장은 "자유형 1500m 경기도 1100m쯤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수영 마라톤도 마찬가지"라며 "엄청난 지구력에 스피드까지 갖춰야 하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종목이라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과학연구원(KISS) 송홍선 박사는 "운동 강도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달리기보다 수영이 에너지 소비가 많다"고 했다. 송 박사는 "2시간 가까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추진력보다 부력이 좋은 선수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야외 경기니까 경기장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영법을 갖추는 것도 승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