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반영 안한 공공 인쇄물 입찰… EBS교재 등 잇단 유찰
[종이값 급등 쇼크]
정부사업 17년전 기준 예산 책정… 출혈에도 대어잡기 나섰던 업체들
최근엔 제살 깎아먹기식 입찰 포기 “새 요금제 마련 등 정부 관심 필요”
EBS 교재 자료사진. 동아일보 DB
#1. 올 초 조달청이 공고한 국회 제출 결산보고서 제작사업은 응찰자가 전무해 2차례나 유찰됐다. 당초 2억 원대였던 사업금액을 3000만 원 올린 뒤에야 겨우 입찰자가 나타났다. 지역인쇄조합 관계자는 “정부 사업 90% 이상이 여전히 2005년 단가표를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한다”며 “물가 상승을 반영해 입찰가를 지금보다 3배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2. ‘인쇄업계 대어’로 꼽히는 EBS 교재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유찰이 나왔다.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발주하면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아 인쇄사들이 입찰을 포기한 것. 결국 수의계약으로 사업자를 찾아 교재를 제작했다.
최근 공공조달 인쇄물 계약에서 유찰이 되풀이되는 것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입찰 구조 영향이 크다. 통상 인쇄사가 관공서 예정가의 80%대인 낙찰하한율을 기준으로 낙찰 받으면 그 낙찰가를 기준으로 다음 해 예정가가 정해진다. 낙찰 기준선이 매년 전년도의 80∼90% 수준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국가결산보고서의 경우 2013년 3만3000면에 4억4000만 원에서 올해 5만1000면에 2억2000만 원으로 인쇄 면 수는 늘었는데 예산은 오히려 50% 감소했다.
조달청이 매년 원가 변동 폭 등을 감안해 공시했던 ‘인쇄기준요금’은 2011년 폐지됐다. 인쇄기준요금은 1977년부터 공공기관 인쇄물 계약의 납품단가 역할을 했지만 2006년 조달청과 업계 의견 차로 갱신되지 못한 뒤 따로 발표되지 않았다.
원래 공공 인쇄물 입찰은 중소 인쇄업체들에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인기가 많았다. 대형 업체가 독식하는 민간 계약과 달리 중소기업만 입찰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낙찰 기준선이 있어 적정 가격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쇄기준요금 폐지 이후 업체 간 제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이 심화됐다. 김남수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한계 상황에 몰려 인건비만 벌면 입찰하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한 인쇄사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에 물가 변동 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산정하고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영세업체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납품단가연동제는 공공기관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인쇄업계는 동반성장위원회와 새로운 인쇄기준요금 마련에 나섰다. 종이 값 부담을 덜기 위해 제지사들과 인쇄용지 공동구매에 나서는 게 대표적이다. 김장경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기준요금이 나오면 공공계약에 적용하고 가격 담합을 하지 않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