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모양성 답성놀이로 유명한 고창 모양성 축제와
성곽을 둘러보다
고창읍성은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높이 3.6m. 모양성이라고도 한다.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과, 1453년(단종 1)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벽에 "濟州始", "和順始", "羅州始", "癸酉所築宋芝政"이라고 새겨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계유년에
전라도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창읍성의 개요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으로 짐작된다. 동쪽으로 반등산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3문(門)과 6치(雉), 2군데의 수구문과 옹성 등이 있다.
1976년 발굴에서 서문터의 기둥 주춧돌과 문짝 달던 위치, 동문터의 기둥 주춧돌을 확인했다. 성벽은 제법 잘
남아 있는데,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쓰거나 초석·당간지주를 깨어서 쓴 것도 있다. 이와 같은 읍성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군사 시설로 이용되었다. 고창에서는 여자들의 성벽밟기 풍습이 전해내려오는데,
이는 한 해의 재앙·질병을 막는 의식으로 여겨진다.
얘전 고창읍성을 지키는 수문장 재현
둘레1.67km 고창읍성 모양성 성곽길을 걷다
모양성 주변으로 펼쳐진 고창읍내 전경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은 국내 읍성 중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읍내리에는 판소리 대가 신재효 선생의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39호)이 있다. 행정구역은 교촌리·읍내리·월곡리·월암리·석정리·월산리·노동리·화산리·내동리·덕산리·주곡리·도산리·죽림리·신월리·덕정리·율계리·석교리·성두리 등 18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93개리). 읍사무소 소재지는 고창읍 모양성로 26이다. 면적 42.50㎢, 인구 22,184(2017)로 군소재 읍내로서는 상당이 큰편
고창 전체 인구는 59,285 (2016)명이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성곽 답성길을 따라서
모양성 주변의 시골마을 풍경
원형의 성곽길의 가을
고창 모양성 축제 현장 스케치
공군 의장대 시범
고창읍성 모양성의 답성놀이
고창 모양성의 답성 민속(踏城民俗)은 여자들이 성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발로 밟으면서 도는 의식이다. 성밟기는 달리 ‘성돌이’라고도 부르는데, 불교 의식의 탑돌이에서 비롯되었다. 답성민속은 4년에 한 번 윤3월에 모양성을 찾아가 성을 밟으면서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의식으로,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탑돌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불교 신앙의 탑돌이와 정월 세시 풍속의 다리밟기가 조합이 되어 모양성 성 밟기가 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녀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 밟기를 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은 「오누이 힘내기 설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다. 고창 모양성의 답성민속이 태동하던 조선 후기에 「오누이 힘내기 설화」로 인해 부녀자들이 돌을 들고 성 밟기에 나서게 된 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탑돌이는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면서 서원하는 마음으로 탑을 도는 불교 의식이며,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를 하면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속이었다. 그런데 1678년(숙종 4) 윤삼월에 고창현감 이항이 모양성 개축을 주도하면서 성곽의 축조를 기원하고 고을을 보호하는 방편으로서 불교의 탑돌이와 다리밟기를 차용하여 주민들에게 성돌이를 권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성놀이와 함께 진행되는 집단으로 부녀자들의 강강 수월래
모양성 주변의 고창 한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