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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숲 읽기] 학동 느티나무 이야기 |
<광주 명목(名木) 찾아가기> |
사람들은 거대하고 오래 된 생명체에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믿고 그것에 의지하여 화를 없애고 복을 구하려는 습성이 있다. 특히 오래 된 거목(巨木)은 종종 그러한 믿음의 대상이 되곤 하였는데, 느티나무는 소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등과 함께 그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대개 한 마을에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나무가 펼친 수관(樹冠)의 정제함에 예절의 덕목을 부여했고, 봄의 신록, 여름의 성록, 가을의 단풍, 겨울의 나목(裸木) 등 사철 변해가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어떤 신앙 비슷한 정서를 가져왔다. 특히 느티나무는 마을의 정자나무로서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 여름의 느티나무는 짙은 녹음을 제공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자연스런 집합처가 되었는데, 여기서 오고 가는 대화는 공동체의 삶을 꾸려 가는 지혜를 제공했고, 마을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민주적 광장의 기능을 발휘했다. 또한 이 나무는 신목(新木) 또는 당산목(堂山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목(守護木)이 되어 우리들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문헌에 의하면 광주는 무등산의 광주천과 추월산의 봉산천이 합류하여 극락강을 이루어 영산강으로 흘러가는 주변에 숲이 많아 숲의 고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동림, 덕림, 유림, 양림, 신림, 운림 등의 지명만 보더라도 수백년 된 숲과 나무가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1960년대 도시개발 과정에서 많은 숲과 나무가 없어져 역사성과 풍토성을 잃었다. 옛날에는 임동에서 금남로, 남동을 거쳐 화순으로 통하는 길가에 큰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었는데 이곳과 서석동에 있는 느티나무도 그 일부이다. 그러나 서석동 느티나무는 1970년대 도시개발로 없어지고 학동 느티나무만 남았다. 학동 느티나무는 동강 신익전(東江 申翊全)의 선정비인 천년완골석비(千年頑骨石碑)와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크기는 높이 20여m, 둘레 6여m 정도로, 수관(樹冠) 너비는 28여m, 동서 23여m이다. 이 나무는 줄기둘레(幹周)의 크기나 역사적 유래를 살펴볼 때 300~350년 전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에 약간의 손실이 있었으나 치유 보호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김양근(<사> 광주·전남 숲 해설가협회 이사 / 광산중학교 교감) |